'태양'으로 보는 3대 세습
안녕하세요.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황인성입니다. 얼마전 고려대학교에서 콜로키움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날 여러분들에게 조금은 흥미로울수 있는 주제로 진행되었는데요, 정교진(고려대학교 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교수)교수의 '지도자상징정치'로 본 김정은 정권의 취약성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콜로키움을 시작했습니다.
(콜로키움: ①전문가회의. ②어떤 주제를 놓고 여러 사람이 공동 토의하는 형식. / 네이버 사전)
(제 1회 신진학자 초청 콜로키움)
'지도자 상징 정치'라는 말은 저도 처음 들어본 말이라서 굉장히 흥미로웠는데요. 쉽게 설명드리자면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각각의 이미지를 생성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고착화, 정형화하여 그들 스스로를 어떤 상징에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가지고 정교진 교수는 '이미지의 상징화'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태양', '수령', '어버이' 등과 같은 이미지를 생성하고 이를 가지고 상징성을 확보하여 이들의 정치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지요.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과 상징성을 확보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요. 이미지를 부여하고 계속적인 반복을 통해 자연스럽게 상징적 사고로 연결하여 결과적으로 상징성을 갖게 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정교진 교수는 이러한 이미지들 중 '태양'과 '수령'이라는 두 가지의 공통된 이미지 가지고 김일성, 김정일을 살펴봄과 동시에 현재 김정은 정권의 취약성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제가 느낀 점이 참 많은 '태양'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태양이라고 칭합니다. 따라서 김일성의 생일은 '태양절'이 되는 것이지요. 이 '태양'이라는 이미지가 처음 부여된 것은 1958년 1월 1일자 로동신문입니다. 로동신문에 실린 시 한편에서 처음 이미지가 부여되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김일성이 태양이라고 암시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이후 1961년 1월 1일에는 로동신문에서 정확히 태양을 김일성으로 가르키는 내용을 담았는데요. 신년맞이 모임 축하를 주제로 하는 기사에서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것들 외에도 김일성을 태양이라고 볼 수 있는 여러 문학작품들도 등장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해볼 때 1958~1959년 쯤을 시작으로 김일성이 ‘태양’이라는 이미지 생성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 동상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주민들/출처 : 미주 중앙일보)
그렇다면 김일성의 태양이미지의 상징성 확보는 언제쯤 이뤄졌을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1967년 김일성이 갑산파를 완전히 제거하게 되었을 때쯤 김일성의 본격적인 일인독재체제가 열렸습니다. 이때부터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개인숭배가 본격화되었는데 사실 이때는 ‘수령’이라는 상징을 부여하는데 더 큰 힘을 쏟았습니다. 간간히 문학예술부문에서 김일성을 태양으로 지칭하거나 “민족의 태양”이라고 지칭하긴 했으나 자주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74년을 앞뒤로 해서 여러 공식적인 정치부문 문건에서 “우리 민족의 태양”으로 쓰이기도 하고 문학작품 중에서 중편소설 ‘해빛아래’, ‘빛을 따라’등이 쓰이면서 김일성을 태양으로 지칭합니다. 따라서 김일성의 태양의 이미지가 상징성을 얻게 된 시기는 1974년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김정일의 태양이미지 생성과 상징화 과정인데요.
먼저 김정일의 태양이미지 생성은 결과적으로 김일성의 사망이전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로동신문에서 찾아본다면 김정일의 태양과 관련된 내용은 1990년 전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90년 8월 17일자에는 김정일을 ‘민족의 태양’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김정일의 태양이미지 생성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내부에서 먼저 태양으로 상징화 한 것이 아닌 외부에서 김정일이 태양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북한내부에서 김정일이 태양이다 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태양은 오직 김일성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북한주민들에게 김정일의 태양이미지 생성에 있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태양’이라고 하지 않고 ‘태양의 위업’이라고 돌려가며 묘사했고, 김정일 이름에 직접 붙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굉장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한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북한 건물에 붙어 있는 문구/출처:미디어오늘)
다음은 김정일의 태양이미지 상징화 작업입니다.
김일성이 사망(1994.7.8.)한지 4 개월이 채 안된 10월 28일자 노동신문에 하나의 장시가 실렸습니다. 이 장시에는 “태양 김정일장군님과 함께”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요. 이 시는 김정일의 이름에 직접 태양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북한 내부에서는 처음이며, 본격적인 내부작업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로동신문 등을 통해서 김정일의 태양 이미지를 더욱 구축해 나갔습니다. 1995년 1월 1일 로동신문은 “세기의 태양이시여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이시여!”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이후에도 로동신문은 해마다 김정일의 태양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켜 나갔습니다. 2003년부터는 로동신문에 김정일 관련 태양의 새로운 용어인 “선군태양”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새로운 용어인 “선군태양”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김정일의 태양의 이미지가 확실하게 상징성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현재 김정은의 태양이미지 생성과 상징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김정은은 김정일이 사망(2011.12.17.)한 다음해인 2012년에 명실공이 북한 최고지도자가 됐습니다. 그보다 앞서서 김정은에게 태양의 이미지가 생성된 것은 김정일이 사망한 바로 직후였습니다.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김정은도 외부에서 먼저 이미지 생성이 시작됐는데요. 하지만 로동신문을 살펴보면 김정일과는 다르게 바로 ‘향도의 태양’이라고 지칭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와 동시에 ‘운명의 태양’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2011년 12월 23일자 로동신문에서 처음으로 ‘찬란한 향도의 태양’이라고 표현되는데 이후에도 여러 발간물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이는 김정은의 태양의 이미지 생성이 김정일보다 빠르게 진행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볼 때, 김정은의 태양 이미지 생성시점은 2011년 12월로 김정일이 사망한 직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김정은의 태양이미지 상징성인데요.
김정은의 태양이미지가 상징성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2013년 로동신문에서 언급된 ‘태양’은 거의 대부분 김일성을 지칭하는 것 이였고 2014년에는 김정은과 관련되어 언급된 것이 10건 이내로 나타났지만 이는 로동신문 기자들이 사설형식으로 쓴 게 몇 개 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김정은은 이미지를 상징화하는 것에는 부족함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2014년에 ‘태양조선의 선언’을 보면 “김정은 원수님은 우리 군대와 인민이 새로운 주체 100년대 조선의 태양으로 받들어 모신분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내용만을 본다면 2014년쯤이 상징성을 확보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태양아래‘ 다큐멘터리에서도 북한의 공공건물에는 ’김정은 원수님은 21세기 태양이시다.‘라는 구호가 걸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태양의 지도자이미지 상징화의 과정에서 특이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지도자이미지의 상징화 시기와 독재자들의 리더십 확보시기가 서로 맞물린다는 점이다. 김일성은 1947년, ‘혁명적 수령관’이라는 주체사상이 확립된 시기에 상징성을 확보했으며, 김정일은 자신이 내세운 선군정치가 선군사상이라는 새로운 지도이념이 되는 2003년에 태양이라는 상징성을 확보합니다. 김정은은 장성택을 즉결처형한 2013년 12월 이후 2014년에 ‘세계의 태양’이라고 불렸습니다.
(평양 금수산 태양궁전/출처:연합뉴스)
여기서 부터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저는 유일무이한 북한의 3대 세습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인정하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도 여러분들만의 태양이라고 믿는 사람이 생긴다면 똑같을 겁니다. 북한의 독재자들은 주민들에게 자신을 태양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과정들을 통해서 여태까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3대 세습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을 계기로 ‘태양’이라는 이미지의 생성과 상징화를 통해서 김일성보다는 김정일, 김정일 보다는 김정은의 정권이 불안하다는 것을 증명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김정은의 태양이미지 생성의 과정이 김정일보다도 빨랐고 심지어 등장과 함께 동시에 이뤄졌다는 것은 그만큼 김정은에게는 정권을 장악할 시간이 부족했고 오랜 시간을 가지고 이미지를 만드는 동안 권력을 유지할 힘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태양의 빛이 강하게 내리쬘수록 그늘도 깊게 드리우기 마련이죠. 또 너무 오랫동안 빛을 쬐면 무엇이든 말라비틀어지기 마련이죠. 햇빛을 너무 많이 쬐어 말라비틀어진 북한 주민들에게 세상엔 비도 내릴 수 있고 눈도 내릴 수 있으며 해가 있으면 달도 있다는 것을 하루빨리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내에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출처 : 정교진(고려대학교 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교수) '지도자상징정치'로 본 북한 통치자들의 지도자 성격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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