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역대 통일 정책
- ② 제 5공화국~현재 -
안녕하세요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노도희기자입니다!
지난 기사에 이어서 이번에는 현재 한국 정부에 이르기까지의 통일 정책 및 대북 정책의 변화에 대해서 시대순으로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기사에는 제 5공화국 전두환 정부까지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처음 이승만 정부 및 박정희 제 3공화국까지는 북진통일, 멸공통일, 강력한 반공의식 등을 전제로한 대북 정책을 펼쳐왔지만, 국제적인 냉전 체제 완화 분위기에 따라 평화 통일이 거론되어 전두환 정권까지 평화 통일 기조가 계속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 이후의 통일 정책 및 대북 정책에 대해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 제 6공화국 노태우 정부 - '7.7 선언',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 확정되던 1989년 9월 11일의 신문기사 1면', 출처: 구글코리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노태우 정부는 기존의 평화 통일, 대화와 협상의 단계에서 더욱 진전하여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1988년, 7월 7일 발표한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7.7선언)'에서 북한을 더 이상 대결과 전쟁의 상대가 아닌, 동반자로 인정하고 남과 북이 함께 민족 번영을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목표를 명료히 밝혔습니다. 또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1989년 9월 11월에 발표함으로써, 교류와 협력을 통해 민족공동체를 발전시킬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또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이 바로 통일원칙을 자주, 평화, 민주의 3원칙을 명료히 한 점이 매우 돋보였습니다. 그리고 기존 정부보다 더 확실하게 북한을 인정하고, 함께 나아가야할 동반자로서 인정하고 협력, 합의의 대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노태우 정부의 노력으로 제 1차 남북고위급 회담이 1990년 9월 서울에서 개최 될 수 있었고, 1992년 2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 6차 회담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공동선언'이 발효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사항 이행은 남북대화를 북측이 갑작스럽게 중단함으로써 실행되지 못하였습니다.
2. 김영삼 정부 -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김영삼 정부 역시 기존의 기조에 따라 더욱 적극적인 대북 정책 및 통일 정책을 펼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한 것입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의 실험은 끝났고, 남한과 북한의 체제 경쟁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인식을 깔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통일 방법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방법은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 방안'입니다.
'남한이 제시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북한이 제시한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비교', 출처: 구글코리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구체적으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으로 간략히 살펴보면,
첫째, 통일은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통일은 민족 전체가 다 함께 잘살기 위함이며, 민족공동체 건설을 통해 통일 국가를 건설한다.
셋째, 통일의 주체는 민족구성원 모두이다.
넷째, 북한내 급변상황 등에도 대처할 수 있는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야한다.
다섯째,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의 포기와 개혁, 개방을 촉구한다.
여섯째, 민족 분단의 종식에 우리가 앞장을 서야한다.
일곱째, 통일의 부담과 고통일 분담해야 한다는 국민의 자세를 가진다.
자세히 보면, 김영삼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과거의 7.7선언, 그리고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조금씩 구체화, 발전시켜온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정부가 달라지기는 했으나, 전체적인 대북 정책 및 통일 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통일 준비 및 대북 외교를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3. 김대중 정부 - '6.15 남북공동선언'
'6.15공동선언을 위해 만난 김정일과 전 김대중 대통령', 출처: 구글코리아 '6.15공동선언'
김대중 정부의 핵심적인 통일 정책의 결과라고 하면 바로 6.15 남북공동선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한의 정상이 만나 회담한 것으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끊임없는 북한에게의 대화와 협상, 평화 통일에 대한 갈망이 이루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그 이후 역대적으로 평화로웠던 한반도의 분위기로 개성공단 추진, 금강산 육로관광, 이산가족 상봉 등의 인적, 물적교류가 활발해졌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2년 2차 북핵 위기의 발발로 남북한의 평화 무드는 심각한 상황에 달하게 되었고, 동북아의 정세 역시 불안정해졌습니다.
4. 노무현 정부 -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
'10.4공동선언을 위해 만난 김정일과 전 노무현 대통령', 출처: 구글코리아 '10.4공동선언'
2003년에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역시 기존의 한반도 평화유지 및 남북한 공동번영,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평화 유지 등을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2007년에 10.4 선언을 통해 지난 2차 북핵위기의 남북 갈등을 해소하는 듯해 보였으나, 또 다시 북핵문제로 남북한의 갈등이 발생하면서 더 이상의 북한 변화, 비핵화의 진전이 이루어지기 힘들어지게 되었습니다.
5. 이명박 정부 - '상생, 공영의 대북정책', '비핵, 개방, 3000'
'기존과 새로운 통일 정책 기조로 들어선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구상', 출처: 구글코리아 '비핵 개방 3000'
이명박 정부는 기존의 평화 통일을 기조로하는 대북 정책 및 통일 정책에서 약간 방향을 틀었습니다. 정상적인 남북관계 정립 및 실질적으로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비핵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으며, 철저한 원리, 원칙주의를 고수하여 비정상적인 행위를 제재 및 단호한 대응을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되, 북한의 무력도발에는 강력하게 대응하는, 그러면서 끊임없이 북한에게 평화적인 대화를 요구하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2012년까지 이루어져왔고, 최근의 박근혜 정부 역시 이명박 정부의 기조와 비슷하게 이어져왔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북한의 여러 무력도발, 미사일 발사, 핵실험 강행, 개성공단 철회 등으로 남북관계는 살얼음을 걷는 듯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듯이 항상 똑같은 상황만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에는 화기애애하다가도 어떤 때에는 딱딱한 분위기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북한과 남한의 관계도 다시 평화롭고 한반도 공영을 위한 분위기로 돌아가는 날을 고대합니다.
지금까지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노도희기자였습니다.
#자료 출처 및 참고
1. 통일문제 이해2016, '통일부 통일교육원'
2. 구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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