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고려대 통일아카데미 '김정은 시대의 파워엘리트'

 2013년 고려대학교 통일아카데미는 고려대학교 공공정책연구소가 주최하고 통일부 및 전국대학통일문제연구소협의회에서 후원하는 세미나입니다. 총 4회의 강연과 1회의 체험학습으로 이루어지는 통일아카데미 제3회가 '김정은 시대의 파워엘리트 : 북한의 엘리트 계보'라는 주제로 2013년 9월 9일에 열렸습니다.

 

 

현성일 박사(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가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북한의 엘리트 개념과 범주에 대해, 김일성 시대의 파워엘리트, 김정일 시대의 파워엘리트, 김정은 시대의 파워엘리트 순으로 강의를 진행하였습니다.

 북한의 엘리트에는 간부, 민족간부, 인텔리(지식인)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간부는 당, 국가, 정부, 단체 등 각 분야에서 일정한 직책을 가진 일꾼으로 당 정책을 조직집행하는 혁명의 지휘성원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민족간부란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복무할 수 있게 교육, 교양되고 준비된 그 민족출신 간부, 즉, 일정한 직책을 가진 일꾼뿐만 아니라 앞으로 간부가 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갖춘 간부 후보군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입니다. 인텔리란 일정한 교육수준과 학력을 소유하고 자신의 지식과 기술로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사회계층을 일컫습니다.

 현 박사는 북한에서의 파워엘리트 개념은 조금 더 세분화해서 들어 갈 수 있다며 정치엘리트, 기술전문엘리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였습니다. 정치엘리트는 당과 국가, 정부, 근로단체, 군, 공안, 외교 분야에 종사하는 엘리트입니다. 기술전문엘리트란 경제와 행정, 사회, 과학기술, 교육, 문화 등 분야에 종사하는 엘리트로서 기존 체제의 수혜자인 인텔리 중 새 체제에 충성함으로써 포섭, 등용된 자들을 말합니다.

 

 

 당이 국가와 정부 위에 군림하거나 선군정치를 표방하는 북한 체제에서는 결국 당과 군 등 실질적 권력과 정책적 영향력을 가진 엘리트가 곧 정치엘리트이자 파워엘리트를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뒤이어 김일성 시대의 파워엘리트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광복 후 북한은 국내 공산주의세력(국내파), 만주 빨치산세력(만주파), 중국공산당 출신(연안파), 소련공산당 출신(소련파), 남로당 출신(남로당파) 등 여러 정파들이 연합하여 정권을 수립했습니다. 그러나 건국과정과 사회주의혁명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만주파를 제외한 대부분 정파를 숙청하여 김일성 유일 세력으로 단일화 하였습니다.

 현 박사는 김일성 시대 간부정책과 파워엘리트를 간부 충원(맑스-레닌주의 공산주의이념과 당성, 노동계급 출신 위주의 원칙)과 신진엘리트 양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대신 기존에 포섭되었던 낡은 인텔리들은 혁명화 과정을 거치면서 숙청되었다고 했습니다.

김정일 시대의 파워엘리트에 대한 강의는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왜냐하면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이 북한 내의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후반 김일성 유일지배체제 확립은 김일성의 신격화를 통해 북한사회 전반에 가계 족벌정치와 권력 세습이 가능한 정치적 토양을 제공했습니다. 이미 1970년대에 김정일은 권력 2인자에 올라갔으며 김일성의 유일한 후계자로 정식 내정된 상태였습니다.

 김정일은 1974년 후계자 내정 직후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원칙을 발표하면서 간부정책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김정일은 파벌차단 원칙, 원로우대 원칙, 전문성 중시, 간부충원 원칙을 내세우며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 4대원칙 (신격화, 절대화, 신조화, 무조건성)을 공론화 했습니다. 또한 현 박사는 김정일의 특이한 정치형태로서 측근정치가 행해졌다고 했습니다. 후계체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김정일의 권력기반 확대 및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목적으로 주로 정치엘리트에 국한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정은 시대의 파워엘리트를 소개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2009년 1월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한다는 지시를 전당, 전군에 공식 하달하면서 김정은 시대가 서막을 알렸고, 2012년 7월 중대방송을 통해 김정은을 공화국 원수로 추대하며 공식 권력승계 절차를 완료했습니다.

 다음은 김정일과 김정의 권력세습 비교표입니다.

 

김정일(1942~2011)

김정은(1984~) 

 세습기간

- 후계수업 10년 후 33세에 후계자 내정
- 김일성·김정일 공동통치 20년
- 부친 사망 3년 후 56세에 승계 완료

- 26세에 후계자 내정 후 후계수업 2년
- 김정일·김정은 공동통치 1년
- 부친 사망 6개월 후 29세에 승계 완료

 세습환경

- 대내외 환경 전반적으로 양호
- 치적 확보와 리더십 발휘에 유리 

- 대내외 온갖 악재가 산적
- 치적 확보와 리더십 발휘에 불리 

 출신배경

- 부모의 항일빨치산 정통성
- 백두산 출생설 날조 및 우상화 

- 출생지, 생모의 출신과 첩의 위치 핸디캡
- 우상화에 엄청난 왜곡 필요 

 학력·경력

- 김일성대학 졸업 후 당 경력 10년 

- 스위스 유학, 김일성군사대학 

 

 현 박사는 김정은 시대에는 노동당의 위상과 역할이 강화되었다면서 노동당의 영도적 위상과 역할이 복원되었다고 했습니다.  김정은은 공식서열 위주의 권력구조를 복원했습니다. 김정일 시대에 북한의 파워엘리트는 공식서열이 아니라 측근서열로 결정되었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이러한 측근서열이 와해되고 대다수 측근들이 공식서열 상위로 진입했습니다. 김정일 시대에 측근정치에서 배제되었던 기술전문엘리트들도 파워엘리트로 부상한 것입니다.

 김정일의 급사는 미숙한 후계자에 대한 후견인의 정치적 보호와 정책적 보좌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김경희, 장성택, 최룡해 등 김정일 핵심측근들이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이들 후견그룹은 김정은의 조속한 권력 승계와 안정적 후계체제 구축을 주도하였습니다.

 현 박사는 김정은 체제의 특징은 친정체제의 구축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지속적인 권력층 세대교체를 통해 김정일 시대를 대표하던 70-80대 권력 엘리트 대부분이 40-60대 신진엘리트로 교체되었고 김정은 친정체제가 구축되었습니다.

 특히 당료출신 최룡해의 군 총정치국장 임명 이후 군부의 비정상적인 잦은 인사변동과 인사교체는 친정체제 구축에 대한 군의 불만과 당-군 갈등의 심각성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 박사는 강의를 마무리 하면서 "김정은 친정체제 구축은 김정은의 권력 및 정책 장악력 강화, 아버지 유산으로부터의 탈피와 자체의 노선 및 정책 추진력 확보, 후견세력의 영향력 약화를 의미합니다. 김정은 친정체제 구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그 성패 여부가 향후 북한의 체제 내구력과 노선 및 정책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라고 하면서 세미나가 끝났습니다.

 사회를 맡은 고려대 북한학과 임재천 교수는 '김정은 시대를 맞이하여 북한 엘리트 정치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뜻깊었으며, 특히 김정은 시대의 파워엘리트를 이해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