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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건축, 남북교류협력을 말하다

 지난 기사 '건축, 북한을 말하다' 에서는 '건축'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북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일반역사가 건축역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북한의 사상이나 정책이 건축을 통해서도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아직 지난 기사를 보지 못하신 분들은 '건축, 북한을 말하다'를 참고해주세요.) 이번 기사에서는 '건축'을 통해 남북교류협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남북의 스포츠, 예술, 문화 등의 교류는 많이 접해왔지만 남북의 건축교류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건축으로 통하는 남과 북", 과연 어떤 교류들이 진행되어왔을까요? 또한 앞으로 어떻게 이 교류들을 발전시켜갈 수 있을까요?

 먼저 남북교류협력이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요인들을 살펴보자면, 2000년 남북공동선언이 남북교류협력의 본격적인 장을 마련하는 역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남북은 이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남북장관급회담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공동보도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07년에는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제1차 남북총리회담합의서가 채택되면서 남북관계는 한 층 더 진전된 수준으로 나아갔습니다. 합의에 따라 구성된 '남북 사회문화협력 추진위원회'는 보다 적극적인 협력사업을 가능하게 했고, 이를 토대로 역사교류와 관련하여 역사유적·사료발굴 및 보존사업을 추진하는 내용이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건축분야의 남북교류협력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났을까요. 아래에서는 남북건축교류협력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건축'이라는 개념(구조물을 그 목적에 따라 설계하여 세우거나 쌓아 만드는 일)을 보다 확장하여 역사적 건축물이나, 문화재 등의 발굴과 보존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건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남북의 교류협력은 '문화재의 공동 발굴·조사와 복원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5년에는 민간학술재단인 고구려연구재단과 북한의 사회과학원이 평양일대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학술조사를 진행했는데, 이를 통해 남북 간의 신뢰를 쌓고 함께 연구를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사진1). 2006년에는 고구려연구재단과 북한의 김일성대학이 공동으로 평양 안학궁터[각주:1]를 발굴했으며, 이를 통해 우수한 고구려의 건축과 토목기술을 세계적으로 알려 국제적인 위상을 제고했습니다. 또한 국내외에 고구려 역사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국립문화재연구소를 통하여 평양과 주변지역 고건축물에 대한 실측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사진1. 고구려유적 남북공동 학술조사

 2000년에는 북한이 개성 영통사[각주:2] 복원에 대한 지원을 요청해 옴에 따라, 천태종이 북한의 개성영통사복원위원회와 함께 영통사 복원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천태종은 2003년부터 5차례에 걸쳐 약 40만 장의 기와와 단청재료 3천 세트, 묘목 1만 그루 등을 북한에 지원했습니다. 영통사에는 모두 29채의 전각이 세워졌으며 2005년에 준공식과 함께 남북 학자들이 영통사 복원의 역사적 의의 등에 관한 학술토론회를 가지기도 했습니다(사진2). 이와 유사하게 조계종은 1998년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이후, 현대아산이 금강산 신계사의 복원을 요청하면서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과 꾸준히 복원 협의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그 후 2003년부터 신계사 복원이 시작되었으며, 2007년 14동의 전각을 갖춘 사찰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사진3). 

▲사진2. 개성 영통사 복원 기와 지원     ▲그림3. 금강산 신계사 복원

 이 외에도 개성역사지구 남북공동발굴조사사업, 세계유산 등재 및 관리지원 사업 등 남북이 함께 역사적 궁터나 건축물을 발굴하고 보존하기 위한 작업을 많이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남북의 교류는 다른 분야에 비해 비정치적이고 상호 부담이 적기 때문에 교류의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으며, 민족의 이질성을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의 여파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경제적 교류는 물론이고 이와 같은 문화적 건축분야의 교류도 대폭 축소되거나 중단되었습니다. 여전히 북한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알지 못하는 많은 역사적 터전과 건축물들이 많으며, 분단되어 있다는 이유로 고구려를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역사적 건축'을 통한 남북교류는 이념적 갈등이 없던 분단 이전의 공통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함께 발굴하고 보호해 간다는 '동행'의 의미가 강조될 수 있습니다. 정치·군사적 갈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된 이 때, 과거로 돌아가 함께 공유했던 건축물을 통해 남북의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남북의 교류협력이 하루빨리 회복되길 바라며, 이상으로 이숙미 기자였습니다.

 

 

  1. 고구려시대의 건축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고구려 장수왕이 국내성에서 평양으올 수도를 옮긴 427년에 건립되었으며, 장안성으로 천도(567년)하기까지 140년간 사용된 궁성이다. 가로, 세로 각 600여m에 전체 면적이 약 38만㎡에 달하는 고구려 최대의 궁성지이다. [본문으로]
  2. 개성시 용흥리 오관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고려 현종 18년인 1027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고려 11대 문종의 넷째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이 이곳에서 출가한 후 공부를 하며 천태종을 창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