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탕!'
1949년 6월 26일... 평온했던 일상을 한 순간에 깨트려버린 총성. 총을 쏜 이는 대한민국 육군소위 안두희. 그리고 그가 쏜 총탄에 맞은 이는 백범 김구.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창가에 서서 붓글씨를 쓰며 조국의 분열을 걱정하던 지도자는 그렇게 조국이 통일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마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까지 조국통일을 걱정하며 머물렀던 경교장 역시 역사 속에 묻히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 2일, 김구 선생이 서거한 지 64년 만에 집무실이었던 경교장이 복원작업을 거쳐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통일운동이 추진되었던 그 역사적인 현장에서 김구 선생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상생기자단이 경교장을 찾았는데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경교장(京橋莊)
경교장은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 김구 선생의 집무실 겸 사저로 사용되었던 건물입니다. 1938년 친일금광업자 최창학의 저택으로 처음 지어졌을 때의 이름은 '죽첨장(竹添莊)'이었는데요, 1945년 임시정부의 요인들이 환국하자 마땅히 머물 곳이 없었던 이들을 위해 건물주 최창학이 건물을 제공함으로써, 그때부터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이자 청사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죽첨장이라는 이름은 인근 개울에 놓인 다리 이름인 경교(京橋)에서 따와 경교장(京橋莊)으로 바뀌어 불리기 시작했답니다.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서거할 때까지 이 건물에서 머무르며, 신탁통치 반대운동 및 남북통일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경교장은 단순히 김구 선생의 집무실이 아니라 남북통일을 위한 통일운동이 이루어지던 역사적인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교장의 수난사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 서거 이후, 이곳은 중화민국 대사 관저, 월남대사관 등으로 사용되었고, 6·25 전쟁 당시에는 미군 특수부대 및 임시의료진의 주둔지로 이용되는 등 건물의 주인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1967년에는 경교장 후면에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지어지면서 병원시설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그때부터 경교장은 원형이 변형 및 파괴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강북삼성병원의 부속건물로 사용되던 경교장의 모습 - 2009년 직접 촬영)
불행 중 다행으로 뜻 있는 시민들에 의해 경교장 보존의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면서, 경교장은 2001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5년에는 국가 사적으로 승격된 데 이어 2010년부터 복원작업이 시작되었는데요,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건축 당시의 설계도면과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되던 당시의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원형복원하여 마침내 2013년 3월 2일 개관하였습니다.
상생기자단, 경교장에 가다!
경교장은 현재 지하 전시실과 지상 1, 2층 전시실로 나뉘어져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지하 전시실을 둘러보실까요?
원래 경교장 지하 공간은 부엌과 보일러실로 사용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경교장 지하 공간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 원형 복원 대신 사료 및 유물전시실로 탈바꿈하였는데요, 경교장을 찾는 이들에게 경교장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의 생애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관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제1전시실에서는 경교장이 건립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사용되던 이야기, 각종 대사관저로 사용되면서부터 훼손되었던 수난의 역사 그리고 마침내 문화재로 지정된 뒤 복원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교장의 고단했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제2전시실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이라는 주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에 대해 간략하게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음을 강조하고 있어, 임시정부의 위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유물 중에는 북한 내 민족진영 비밀조직원들이 김구와 이승만 두 민족지도자에게 북한 내 동향을 보고하고, 두 지도자가 서로 협력해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탄원하는 내용이 담긴 '속옷 밀서'가 있어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 제3전시실에서는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이라는 주제로 김구 선생의 마지막 흔적에 대해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께서 서거 당시에 입고 있었던 혈의(血衣)와 서거 직후 얼굴 모양을 본떠 만든 데드마스크는 당시의 처참했던 광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붉히게 하였습니다. 또 한 켠에 위치한 모니터에서는 김구 선생을 직접 만나봤던 생존인사들이 고인에 대해 회고하는 영상을 상영하고 있었는데요, 김구 선생의 평소 성격 등 인간적인 면모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경호원이었던 원로 애국지사 윤경빈 선생의 인터뷰)
겨레의 큰 별이 지다
이제 지상으로 올라가 보실까요?
지상 1, 2층은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1층에는 국무위원회 등 임시정부의 각종 회의가 개최됐던 응접실과 임시정부의 대외홍보를 담당했던 '선전부 사무실' 그리고 임시정부 요인들의 식당이자 김구 선생 서거 당시 빈소로 사용되었던 '귀빈식당'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특히 응접실은 신탁통치 반대운동, 남북통일정부 수립운동 등 국내 민족지도자들이 모여 조국의 미래를 논의하던 역사적 장소였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응접실, 김구 선생의 침실과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 욕실 등이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곳은 역시 김구 선생의 집무실이었습니다. 집무실 앞에 서니 조국의 분열을 막고 남북통일정부를 수립하고자 늘 고심했던 선생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집무실 창가 앞에는 김구 선생께서 독서를 할 때 앉았던 의자와 책상이 위치하고 있었는데요, 서거 당시에도 이 책상 위에서 붓글씨를 쓰다가, 안두희의 총탄에 의해 서거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의자 뒤쪽 창문에는 총탄자국이 있는데, 이것은 서거 당시의 총탄자국을 재현해낸 것입니다. 총탄으로 인해 깨진 유리창을 보며, 남북통일에의 희망이 깨진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 가슴이 쓰라렸습니다. 그 깨진 유리창을 메꾸는 것이 결국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요?
올해는 6·25 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북한은 일방적으로 정전협정 및 남북 간 불가침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발표하여, 남북관계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남북관계가 험악한 이 때, 경교장을 방문하여 자주평화통일을 역설하던 백범 김구 선생을 생각하니 아직까지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현실이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따뜻한 봄이 온다'는 말처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련이 어서 지나가고, 한반도에 따뜻한 봄이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번 주말에는 경교장에 방문하여 김구 선생의 '자주평화통일' 정신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이상으로 경교장에서 상생기자단 5기 김경준 기자였습니다.
[참고] 경교장
◆ 관람시간: 화요일 ~ 일요일 오전 9시 ~ 오후 6시
- 오전: 자유관람 (9시 ~ 12시)
- 오후: 제한관람 (1시 30분/ 2시 30분/ 3시 30분/ 4시 30분)
◆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 관람료: 무료
◆ 오시는 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도보로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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