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서서히 피어나고 있죠! 꽃이 일찍 피는 제주도에는 매화가 져가고 개나리가 만개했었죠!

저희 통일부 기자단에서는 제주도에 느영나영이라는 팀 이름으로 3월 10~12일, 2박 3일 가게 되었습니다.

11일에는 우도 일정이 있었는데요. 그곳에서 '평화통일의 소'가 있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우도로 들어가는 배

 

'평화통일의 소'의 탄생은 21년 전으로 올라가야 하는데요.

 

 

▲'평화의 소'를 구출하는 장면과 유도 위치도

 

1996년 8월에 경기도 김포시 한강 하류에 있는 비무장지대 무인도인 유도라는 곳에서 발견 황소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북한에서 집중호우로 홍수가 발생해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합니다. 황소를 데려오고 싶었지만 습격으로 오해받아 충돌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다음 해 1월이 되어 결국 황소를 구출하러 갔는데요. 북한 황소가 겨울이 되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앙상하게 말라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구출하러 갔을 때 황소는 지뢰를 밟아 왼쪽 발목에서 고름이 흐르고 있었고 몸무게가 300kg가 되지 않아 보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구출된 황소는 '평화의 소 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남북 평화통일의 상징이 되라는 의미로 말이죠.

 

 

 

 

 

 

 

 

 

 

 

◀'평화의 소'와 '통일염원의 소'

(사진출처=인천연합뉴스)

 

 '평화의 소'는 많이 건강해져서 500kg을 넘었으며 1998년에는 제주도에서 기증한 암소인 '통일 염원의 소'와 결혼도 하였습니다. 김포농업기술센터 내 30평 크기의 축사에서 이 두 마리의 소는 7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1998년 11월에 태어난 첫 번째 소가 '평화통일의 소'입니다. 아빠인 '평화의 소', 엄마인 '통일 염원의 소'의 이름을 따 '평화통일의 소'가 된 것이죠.

 '평화통일의 소'는 김포에서 길러지다 2000년 어미의 고향 제주 우도에 옮겨져 새끼를 40마리 정도를 낳았습니다. '평화통일의 소'는 몸무게가 900kg가 넘었다고 하는데요. 얼마나 클까요! 첫 번째 소인 '평화통일의 소' 말고도 나머지 6마리의 소도 각각 분양되어 평화의 소의 자손이 몇 마리 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최소 100마리는 넘는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편 '평화의 소'는 2006년에 자연사하고 유골은 김포시 통진읍 두레문화센터에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평화통일의 소'는 국만 화합과 조국의 평화통일 염원은 물론 제주도의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는 상징성으로 큰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탐사 후에 좀 아쉬웠던 점이라면 저렇게 표지판 하나만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저희가 갔을 때만 허허벌판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도에 온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가는 만큼 관리와 보존이 잘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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