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영나영 제주탐사] 2017년 3월 12일,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이 제주도의 4.3평화공원을 찾았습니다. 이념과 사상, 의심과 분노로 벌어졌던 폭력적이고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처럼 날은 우중충하고 흐렸습니다. 참혹했던 제주 4.3사건을 생각하며, 평화와 통일이 얼마나 필요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4.3평화공원 스케치] [4.3평화공원 평화기념관] [관음사와 4.3사건]



제주 관음사를 알고 계시나요? 관음사는 제주도에 있는 조계종 소속의 절로, 정확한 관음사의 창건일이나 창건자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조선 숙종대에 제주도에 잡신이 많다는 이유로 사당과 사찰이 대규모로 허물어질 때 폐허가 되었다가, 1912년에 재건되었습니다. 관음사는 입구 양옆에 도열한 불상으로 유명하며, 왕벚나무의 자생지로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2017년 3월 12일, 통일부기자단의 김원희, 이태우, 추재훈 기자가 관음사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관음사가 단순히 아름다운 절이기 때문에 찾은 것은 아닙니다. 관음사의 아름다움 뒤에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관음사 또한 제주 4.3사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절조차 4.3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건, 4.3사건이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 알려줍니다.


"당시 산과 마을 중간에 있는 관음사의 지리적 위치로 보아 토벌대와 유격대 간의 치열한 공방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토벌대는 유격대를 공격하다가 마을로 후퇴하기 좋고, 유격대는 마을의 토벌대를 공격하다 유사시에 산속 깊이 잠적해버리기 좋다. 쌍방이 선점해야 할 공수전환의 교두보였다. 총탄이 빗발쳤을 유적지는 그 당시 적정을 파악하기 위한 경계참호였다. 폐허의 유적지는 사방주위로 낮은 돌담을 쌓는 제주도의 무덤 같았다. 총성도 새소리로 바뀐 그 무덤을 벚꽃과 불상들이 지켜보고 있다." - 이산하, <피었으므로, 진다> 中


1948년 제주도 3.1운동 기념식에서 시위대를 향한 발포사건이 일어난 이후 무장대가 조직되었습니다. 분단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 죽어나갈 때, 무장대는 1948년 군대와 맞서싸우기 위해 1948년 말에 관음사 인근으로 숨어들어 이곳을 본부로 삼습니다. 관음사는 무장대의 식량을 보급하는 길목으로, 전략적 중요성이 상당했습니다.


무장대를 토벌하기 위해 구성된 군대의 토벌대는 관음사 인근으로 접근해, 매복한 무장대와 피난입산한 주민들을 토벌했습니다. 이것이 '관음사 전투'입니다. 이들은 1949년 2월 12일 무장대를 쫓아내고 관음사를 전소시켰습니다. 이를 토대로 제주도의 다른 절들도 함께 전소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토벌대는 당시 식자층이었던 스님들 또한 빨갱이일 수 있다고 판단하여, 스님들에게 물고문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1949년 3월부터 관음사는 토벌대의 주둔지가 되었고, 이후로도 몇 번의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관음사 입구 우측의 초소. 이는 훼손된 것을 복원한 것입니다

http://jejuhistory.co.kr/bbs/view.php?id=local&no=988

http://jejuhistory.co.kr/bbs/view.php?id=local&no=988


<주한미육군사령부 정보일지. G-2보고서. 1949.4.1>에 의하면 1948년 12월 15일 경비대(토벌대)가 관음사 인근에서 8명의 무장대를 사살했고 1949년 5월에는 5명을 사살, 20명을 생포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식자료 이외에도 치열한 격전 간 사살당한 사람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관음사에는 아직도 당시 사용했던 군 주둔지의 참호가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직경 25m로 규모가 큰 중대급 숙영지나 그보다 작은 소대급 숙영지, 3~4명이 잠복할 수 있는 초소도 여러군데 남아있습니다. 대웅전 뒤편 숲속에 일제강점기에 닦은 작전도로가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100m 정도 들어가면 당시 숙영지와 초소를 볼 수 있습니다. 또 그 길을 따라 관음사 뒷산인 아미봉 정상에 이르면 작은 숙영지와 초소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참호와 초소는 총 27개에 이릅니다.


http://43archives.or.kr/mobile/viewHistoricSiteD.do?historicSiteSeq=28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내 이마에 ‘천형’처럼 낙인이 찍힌 제주4.3.

그 이후 끊임없이 '진실'만 말해야하는 고통과 압박감...

노란 유채꽃들은 여전히 피어났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제주는 우리 현대사의 상처 입은 ‘영혼의 구슬’이다."

- 이산하, <피었으므로, 진다> 中


관음사는 매년 4월 3일이 되면 4.3사건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과, 덩달아 빨갱이로 몰려 죽어나간 스님들을 위로하기 위해 천도재와 위령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4.3평화공원 평화기념관의 백비와 같이, 관음사의 유적은 '4.3유적'이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분단의 아픔이 여전히 씻겨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이 된 미래에, 관음사의 유적들도 명확한 이름으로 불려지길 기원해보았습니다. 혹시 제주에 들를 일이 있으시다면, 관음사에 가서 마음을 달래는 한편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입니다.


추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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