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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북한 영화 비평 - <한 녀학생의 일기> (1)


한 녀학생의 일기 비평

: ‘전형’과 ‘변주’


북한 문학예술의 특징은 한 마디로 표현해 ‘프로파간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모든 문학예술은 당의 노선에 철저히 의거하여 당의 정책을 정확하게 반영하며, 영화도 북한에서는 “문학예술”의 범주에 속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예술작품은 우선적으로 서사 중심적인 문학으로 창작된 후 다른 장르로 옮겨지는 형식으로 창작되기 때문이며, 북한은 이를 전 사회에 주입하고자 합니다. 그 핵심적인 매개채가 문학예술입니다.


<한 녀학생의 일기>(이하 <일기>)는 북한의 단편소설 모음집인 《그리운 마음》에 실린 김청남의 같은 이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2006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칸 국제 영화제에 소개되기도 하였는데, 북한의 영화가 새로운 경지로 발돋움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일기>는 사실상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관련기사: 중앙일보. “찾아라 19금 북한영화”)


다만 북한의 영화는 당의 철저한 검열 하에 이루어지므로, 북한적 특징들을 염두에 둔 채로 <일기>를 생각해야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여느 북한 영화와 마찬가지로, <일기>는 북한이 추구하는 가치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표현되는 수많은 상징들은 북한적 가치들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습니다. 본고에서는 북한의 문학예술의 특징에 기반을 두고 <일기>을 비평할 것이며, 이를 통해 북한 사회의 사유체계를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북한 문학예술의 실질적인 근간이자 핵심 이론은 “종자론”에 입각한 “사상성”의 고취입니다. 종자론에 비추어 봤을 때, <일기>의 주제는 훌륭한 종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교훈적 메시지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는 것이 옳고 바른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가족적, 국가적 결집을 공고히 다져 화목한 가정 내지는 과학강국이 될 수 있다는 사상성도 충분합니다. 또한 이러한 서사구조가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사춘기 소녀의 가정에서 펼쳐짐으로써, 인민의 삶 속에 잘 녹아들어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수작으로 평가받는 <일기>는 북한 문학예술이 품고 있는 전형적인 가치에 따르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위해 적절한 변주를 가합니다. <일기>를 ‘북한식 서사의 전형’과 ‘어버이 숭배’라는 두 가지 테마로 나누어 살펴보고, 전자를 통해서는 말 그대로 북한식 문학예술이 가지고 있는 전형성을 찾아보며, 후자에서는 <일기>가 어떤 변주를 가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북한식 서사의 전형


<일기>는 아버지로 표현되는 당의 지시를 어떻게 완수할 것인가에 대한 갈등을 그려내는데, 이는 전형적인 북한식 서사입니다. <일기>는 단편적으로 봤을 때 아버지의 지시에 불복종하고, 결국 아버지를 마음에서 지워버리기까지 하는, 어떻게 보면 파격적인 반항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항은 일반적인 가정에서 부모님에 대한 자식의 반항으로, 인민의 생활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따금씩 집에 찾아오면서도 연구에 열중하는 아버지


수련은 아버지가 집안에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본인 일에만 몰두하고, 가족들은 기약도 없이 아버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만은 어머니가 암으로 쓰러지고, 아버지의 직장을 찾아가면서 극대화됩니다. 수련은 어머니가 쓰러져서 수술을 받고 입원했음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는 아버지를 직접 찾아갑니다. 아버지가 공장에서 잡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수련은 아버지에게 크게 실망합니다.


수련은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아버지의 말을 듣고, 급한 회의를 끝내고 함께 병원으로 가자는 아버지의 말을 믿고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밤늦게 돌아온 아버지는 수련에게 먼저 가보라고 하고, 자신은 곧 뒤따라가리라고 말하며 다시 일에 열중합니다. 수련은 마음속에서 아버지를 지워버리기로 다짐합니다.


아버지에게 실망하여 이과대학 진학을 마음에서 접은 수련


수련은 결국 이과대학에 진학하길 희망하는 아버지의 바람을 꺾고, 허락을 받기 위해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직장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 때 마주한 아버지의 모습은 자신이 저번에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과학기술을 완성시키며, 동료 과학자들의 추앙을 받고 있었습니다. 수련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풀고, 이과대학에 진학합니다.


<일기>에서 드러나는 갈등구조는 ‘가장인 아버지의 말을 들을 것인가’, ‘볼품없는 아버지를 거역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것인가’ 간의 갈등이며, 나아가 그 갈등 속에서 성숙의 과정을 그려내는 북한식 예술작품의 전형을 나타냅니다. <일기>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을 마냥 부정적으로 그리지는 않으면서도, 결국 미성숙한 딸에서 성숙한 딸으로 성장한 수련이 아버지의 말을 듣는 결론을 내면서 갈등을 봉합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실망한 수련


이러한 갈등 봉합 과정을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이, 영화의 가장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종이비행기입니다. <일기> 첫 부분에서 수련은 아파트에서 날아온 종이비행기를 보며, 자신의 꿈이 아파트에 사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영화 중반부에서 수련이네 가족은 아파트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다른 가족에게 양보합니다. 수련은 “진짜 우리 아버지 맞나”고 물을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결국은 아버지의 말을 들음으로써, ‘새로 지은 제일 좋은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권위는 아버지가 능력있는 과학자라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온전히 세워졌다는 점입니다. 근거 없이 신성하고 절대적인 권위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 구조는 앞서 언급했듯 특이한 것으로, 북한의 문학예술에서 유의미한 부분이 된다고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서사 구조를 통해서, 북한이 과학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과학을 몰라가지고는 못 살아”라는 아버지의 대사 등, 과학을 중시하는 표현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일기> 속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을 긍정하는 듯한 플롯도 등장합니다. “최첨단 수준에 오르자는건데 그게 그리 쉽겠어요?”라며 아버지를 격려하는 어머니의 말, 이과대학 진학을 포기하고자 하는 수련에게 선생님이 말해주는 사자와 쥐 이야기, 현실을 외면하며 실현가능성이 낮은 과학을 비판하는 아버지의 말을 통해서 이러한 점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과학적 승리’가 다른 자잘한 과학적 승리보다 중요하다는 점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는데, 거대한 과학적 승리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핵개발을 떠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 영화 비평 - <한 녀학생의 일기> (2)"로 이어집니다)


추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