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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지난 날 남과 북의 경쟁은 아름다웠습니까?


경쟁이란 것은 부득이하게 남의 희망위에 내가 서는 것을 지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생산적인 이유는 승자에겐 기회를, 패자에겐 깨우침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쟁이 아름답고도 깨끗하려면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판가름을 할 수 있는 바른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 날 남과 북의 경쟁은 어땠나요.


    남과 북은 극동지역에서 수십 년 간 서로를 헐뜯으며 체제경쟁을 해왔습니다. '빨갱이', '괴뢰', '간나새끼', '배신자' 따위의 저열한 단어를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내뱉으며 지난 날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다 서로가 지치면 '한 번 만나서 이야기 하자'란 의미에서 회담을 갖고 몇 가지 협정문 등을 인민과 국민에 내걸어 보이며 소매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먼지를 툴툴 털어내기도 했지요.




    지난날 통일 인사들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뱉는 사람 따로 수습하는 사람 따로 왁자지껄 번잡스레 돌아가던 역사를 돌아 보자는 의미입니다.




 

 

 

지난 날 양국 간, 즉 남과 북의 경쟁은 아름다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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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에 '통일정책'이 좌우되지 않을 정도로 '독립'적이었습니까?

   

 

 

    최소한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자신의 역사 의식에 대한 뿌리를 두고 있다면 '아름다운 경쟁'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누구에겐 입에도 담기 힘든 말들일 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죽을 때까지 가슴에 담아야만 하는 두 가지의 슬픈 역사가 공존합니다.



    전쟁을 겪은 어르신께서 세월을 이겨내지 못해 하나 둘 쓰러질때 마다 우린 통일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야만 하는 어르신과 역사의식을 동시에 잃어 갑니다.


    전쟁의 상흔은 피부껍질을 벗기는 듯한 신체적 물리적 고통만 남기지 않았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들어보셨지요. 한반도 전역의 국민과 인민에게 심리적으로 전쟁에 대한 공포감. 그 공포감을 이겨내기 위해 내뱉는 무모함. 그로 인해 엄습하는 불안함을 떠 안겼습니다.


    근래 들어 우린 북한과 다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도발을 기억한다면, 또 다시 그런 참화가 일어나지 않게 방지하려면, 상호간 신뢰를 쌓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남북한이 통일을 원한다는 것은 지난 60년 간 역사가 증명했습니다. 때로는 진중한 선비의 언어로 서로를 대하기도 했고, 때로는 비열한 협잡꾼의 언어로 서로를 할퀴기도 했습니다. 허나 대한민국은 절대 통일앞에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의 띄엄띄엄한 어설픈 비행에도 언제나 통일이란 대승적 목표의식을 갖고 경제적으론 강소국의 지위를 잃지 않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적 지위를 잃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는 좋은 것만 남겨주지 않습니다. '자산'도 남겨주지만 '부채' 또한 어마어마하게 남겨주지요.


    그러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로서 이로운 것만 보고 탐하려 한다면, 부채 따위는 승계하지 않겠다고 뻗댄다면 우리는 후대에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요.

    통일은 권력자들의 입에서도 나오지만 보잘것 없어 봬는 시민의 손가락 끝에서도 나온다고 믿습니다. 우린 그 손가락 끝이 되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찬찬히 제 몫을 해내는 사람들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