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국가 베트남 여행기-하노이
안녕하세요. 제9기 통일부대학생기자단의 박근영입니다.
통일국가는 어떤 모습일지, 통일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지 궁금하여
베트남 여행을 떠난 저는 하이퐁과 하롱베이를 거쳐 하노이에 도착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베트남의 수도를 호치민(구 사이공)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베트남의 공식 수도는 하노이가 맞습니다.
호치민은 베트남 제일의 상업도시입니다.
옌뜨에서 하노이로 향하는 2시간 여정의 길목에선 우리나라의 시골 풍경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푸른 들판과 베트남 전통 모자인 '농'을 쓰고 가축을 돌보는 사람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아이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무리지어 하교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하노이는 프랑스의 식민 통치 기간인 1887년부터 1954년까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수도로
지정되었기에 베트남 행정의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베트남 교육의 중심지이기도 해 하노이에는 굉장히 많은 대학들이 모여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은 1945년도에 하노이는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1976년 통일 이후 이 곳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는데요.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곳, 바로 하노이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전에 거쳤던 지역들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고층 건물들과 아주 많은 수의 오토바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녀노소,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이동하는 모습이 '베트남의 모습'을 상징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노이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니 베트남 학생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띄였는데요.
하노이의 길거리를 거닐다보면 녹색 식물과 우거진 나무들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노란색, 빨간색 등 형형색색의 꽃들도 많이 심어져 있었는데요.
하이퐁에서처럼 베트남 사람들이 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알 수 있었습니다.
하노이광역시는 12개 구로 이뤄져있고 1개의 시, 그리고 17개의 시외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노이 인구는 1천만 명에 육박하는데요.
통일 이후 베트남의 총 인구가 약 9천5백만 명에 이르러 세계에서 15위를 기록한다는 점을 보면
베트남의 굉장히 많은 인구가 하노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통일 이후, 베트남이 계속해서 성장을 해가면서 하노이의 인구는 매년 3.5%씩 성장하고 있는데요.
이로 인해 사회간접자본 부족이라는 부작용도 나타나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고 합니다.
베트남은 현재 통일국가로 이전에 비해 눈에 띈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그로 인해 성장통도 겪고 있는 만큼
우리 또한 통일 이후 성장과 함께 일어날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동일한 모습의 체육복을 입고 하교하는 학생들의 모습과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정신 없어지는 도로 상황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옌뜨에서는 베트남 인구의 12%가 믿는 불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면
하노이의 중심가에서는 인구의 7%가 믿는다는 가톨릭교의 색채 또한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성당 주변에는 가톨릭교 신자가 많은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의 모습을 매우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베트남이 프랑스의 지배를 100여 년 받은 국가라는 이유에서인지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들이 눈에 자주 띄었습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인 바게트빵을 길거리에서 파는 베트남 상인들,
바게트빵을 들고 먹고 있는 프랑스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베트남에 식민지배를 받았던 프랑스의 일부분인 식문화가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노이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건축된 유럽 양식의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하노이 시내에는 '문묘(Temple of Literature)'라는 유교 사원이 있는데요.
이 곳은 공자의 사당으로 '공자묘'라고 불리곤 합니다.
문묘는 1076년에 개교한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며 베트남 학문의 전당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또, 이 곳 안엔 거북이 모양을 띤 대형 비석이 놓여 있는데요.
이 비석엔 15C~18C의 관리등용시험 합격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문묘의 거북이 형상 머리를 만지면 학문적으로도 행운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와
이 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거북이의 머리를 끊임없이 만지는 진귀한 광경도 펼쳐졌습니다.
날이 어둑해질수록 거리에는 오토바이 행렬은 더 끊이지 않았는데요.
거리에는 차보다 오토바이 숫자가 훨씬 많았으며 신호가 없는 곳이 대다수였음에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와 요령으로 아무런 사고 없이 오토바이를 운전하였습니다.
3일 동안 베트남을 다니며 그 곳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알았다고 생각하였지만
이는 제 오산이었다는 것을 수도 하노이에서 느꼈습니다.
하노이에서 보낸 베트남여행 3일차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다음 기사에선 하노이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베트남의 아버지 '호치민'에 대해서,
그리고 하노이에 진출한 한국 기업 등에 대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