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차별, 낯설게 하기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이하 미우새)’ 8회 中,
외로운 김건모 씨는 김종민 씨에게 소개팅을 해달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답으로 김종민 씨는 '탈북 여성은 어떠냐'는 질문을 합니다.
김종민 : 탈북 여성은 어때요?
김건모 : 아이씨... (절레절레)
김종민 : 저 프로그램을 같이 하는데 되게 잘해요.
이 대화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잘 모르시겠다구요?
그렇다면 김종민 씨의 말을 “흑인 여자는 어때요?”로 바꿔 생각해보면 어떤가요?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볼까요? 이번에는 한 언론사의 기사 헤드라인입니다.
자, 이 헤드라인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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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 두 사례에는 탈북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이 드러나있습니다.
먼저 '미우새'의 김종민 씨의 차별적 발언을 살펴봅시다.
김종민 씨는 김건모 씨에게 결혼할 사람이 그렇게 없다면 탈북여성은 어떠냐는 식으로 묻고 있는데요, 이는 일반 여성을 대신하는 차선으로서 탈북여성을 표현한 것에 해당됩니다.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는 말은 어떠한 기준에 비했을 때 열등함을 갖고 있다는 의식이 전제된 것이며, 일반 여성과 탈북 여성을 서로 다른 범주로 인식한 것에 기인합니다.
김종민 씨가 만약 '경상도 여자는 어때요?'라든지 '흑인 여자는 어때요?'라고 질문을 했다면 저 장면이 방송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특정 지역이나 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으로 문제가 되어 방송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탈북 여성은 어떠냐는 질문은 방송에 나올 수 있었을까요?
탈북여성이라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김건모 씨의 행동은 후에 본인의 어머니가 이북 출신이고 어려서 어머니께 많이 맞고 자라서 싫다는 말로 방송에서 설명이 되지만, 김종민 씨의 질문은 방송 내에서 아무런 문제 제기 또는 설명이 되지 않고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방송 출연자와 제작진 모두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차별적인 발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탓이지요.
탈북여성은 사회적인 프레임으로서의 '탈북여성'이 아닌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여성이자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이고 '개인'입니다. 그리고 차별은 타인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에서 비롯됩니다. '미우새'의 출연자와 제작진은 아마도 탈북여성에 대한 일정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와 다르다고 느끼고 더 나아가 '우리'와 다른 '그들'로 인식하고 구분지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차별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포스코 사회적 기업, 이번엔 경영책임자가 탈북여성 직원 성희롱" 이라는 기사 헤드라인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과연 이것이 단순한 직장내 성희롱 기사였다면 헤드라인에 [단독]이라고 강조하고, 여러 언론사가 앞다투어 보도했을까요? 슬픈 현실이지만 직장내 성희롱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그래서 기사화 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기사는 피해자가 '탈북여성'이었기 때문에 이처럼 보도되었습니다. 마치 탈북여성이라서 성희롱을 당한 것처럼 말이죠. 대한민국의 한 여성이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당한 기사가 '탈북여성'이라는 프레임에 덮어씌어서 특정한 사회적 맥락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북한이탈주민은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인 약자로 인식됩니다. 탈북민이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사회적 약자'라는 프레임이 만들어내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또 다른 프레임은 아이러니하게도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만들어내고 그들을 차별받게 하는 기제로 작용합니다. 이는 결국 탈북민이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으로 살아가는 데에 커다란 장애가 됩니다.
'미우새'에서 김종민 씨가 언급한 '탈북여성'과 기사 헤드라인의 '탈북여성'은 모두 일정한 프레임을 가진 단어였습니다. 편견과 차별을 낳는 이러한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그 프레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심코 접하고 지나치게 되는, 우리에게 익숙한 차별을 이제는 낯설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참고 자료>
윤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