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각 사건'은 무엇일까?
안녕하세요. 제9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김지훈입니다. 오늘은 형제의 난이라고 불리는 '우암각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사진 왼쪽)과 3남 김정은.
우암각 사건은 김정남과 김정은이 권력다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건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사건의 승리자는 김정은이었으며, 그 후 김정남은 망명설이 돌면서 후계자에서 완전히 탈락되어 권력을 놓쳐버린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사람들이 김정남과 김정은과의 권력투쟁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사건의 피해자인 김정남이 이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말 권력투쟁으로 인한 사건이었는지, 그리고 실제로 이 사건을 통해 김정은이 권력을 다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후계자의 대상이었던 장남 김정남과 차남 김정철, 후계자가 된 김정은에 대한 언론보도를 중심으로 우암각 사건을 둘러싼 몇 가지 설들을 알아 볼 것이다.
1. 끊임없던 김정은의 암살시도 중 하나의 사건
김정은이 시도한 이복형제 김정남을 암살하려는 시도는 언론에 공개된 것이 세 차례이다. 첫 번째는 2004년 10월, 당시 20세였던 김정은은 오스트리아의 이종사촌 누이 김옥순을 방문할 당시 김정남 암살을 시도했지만, 오스트리아 당국이 김정남에게 북한인의 암살계획 파악, 통보해 목숨을 건졌다. 두 번째는 2009년 4월 우암각 사건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2010년 9월 3대 세습 공식화 직전인, 2010년 6월 하순경,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해외반탐처 공작원 김영수(51)씨에게 김정남 암살을 지시했다. 이 사실은 2012년 9월 13일 김씨가 탈북자로 위장해 대한민국으로 잠입했다가 구속되어 알려졌다.
2. 권력을 손에 넣은 김정은의 권력을 보여주기 위한 사건
후계에서 밀려났지만 김정남은 최고 권력자인 김정일의 장남이었다. 그런 김정남과 그 추종세력의 근거지라 할 수 있는 우암각을 보위부가 짓밟는다는 건 북한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놀랍게도 보위부 병력을 동원토록 직접 지시를 내린 사람은 김정남의 이복동생인 김정은이었다. 한 때 김정남이 유력시 됐던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김정은이 잠재적 위협세력인 김정남 일파를 거세하기 위한 선제공격을 펼친 것이라는 관측이 북한 권력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김정은은 더 이상 이복형 김정남과 친형인 김정철의 그늘에 가려졌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우암각 사건은 이를 북한 권력 내부에 공공연하게 과시한 첫 시도였다는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후계자로 낙점된 그에게 평양의 절대 권력이 쏠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3. ‘곁가지’ 김정은의 콤플렉스 극복의 사건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는 김정일의 정혼대상자가 아니었고, 더군다나 탈북자 가족이 있는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한계점이 있다. 예컨대, 김정일은 이복동생 김평일 등을 ‘곁가지’라는 이유로 밀어냈었다. 김정일은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김정숙 우상화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김정일이 중시하는 정통성에 입각하면, 김정은 역시 스스로의 입지가 확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애초에 후계자의 선열에 있는 김정남 밀어버리기로 했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처럼 '우암각 사건'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북한의 권력 세습이 단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권력의 정당성이 점점 약해지는 과정 속에서 북한의 권력 세습이 과연 언제까지 이루어질 지 점점 기대가 됩니다.
참고 : 심은정(2013), 우암각 사건, 과연 그러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