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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세 아들 -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

제9기통일부대학생기자단 2016. 12. 12. 16:54

안녕하세요9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김지훈입니다. 오늘은 김정일의 세 아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김정일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김정남

출생 : 1971510

가족 : 아버지 김정일, 어머니 성혜림, 동생 김정철, 김정은

첫 번째 유력한 후계자로 부상

일본 밀입국 사건과 방탕한 생활로 후계구도에서 멀어짐

 

후계자 문제가 거론된 초기 김정일 후계자로 가장 유력했던 인물이다. 부자세습을 전제로 한 김정일 후계자 문제가 처음 세인들의 관심사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20015월부터이다. 이는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일본에 밀입국하다 나리타공항에서 적발되었기 때문이다. 승승장구하던 김정남은 20015월 일본 밀입국 사건이 불거지면서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이때까지 김정남은 정보기술(IT) 관련 책임자로 일한다는 설이 있었지만 실제 김정남의 직책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과장이라고 밝혀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방국가들의 언론은 김정남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거론하면서 북한의 후계체제에 대해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 당시 김정남이 후계자의 유력인물이라고 거론되었던 이유는, 20011월 김정일의 중국방문 때 김정남이 상하이 중국 IT업체 시찰에 동행했다는 설 때문이며, 김정남의 일본행 역시 자본주의 체제를 보고 견문을 넓히려는 후계자 수업의 하나라는 설도 있었다. 199911월에는 김정남이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위해 9월께 국가안전보위부 지도원 업무를 시작했다는 정보도 있었다.

 김정남이 일본에서 추방 형태로 중국으로 돌아온 뒤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북한체제와 평양 로열패밀리의 이미지에 먹칠을 함으로써 김정일의 눈 밖에 난 것이다. 20049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사무차장 이종석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남은 (후계자가) 아닐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 후 김정남의 탈락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김정남은 평소 방탕한 생활이 수차례 문제가 되었고 가짜여권 사건은 결정적으로 그를 후계자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처음에 김정남은 장성택과 오극렬의 후원을 받았었다. 장성택이 김정남을 지지한 것은 단순히 고모부이기 때문이 아니라, 장성택이 79년 월권혐의로 강선제강소 초급 당비서로 좌천되었을 때 성혜림이 김정일에게 건의해 복권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극렬의 후원은 그의 아들 오세욱이 김정남과 맺은 어릴 때부터의 우정에서 비롯되었다. 북한에는 중국의 태자당과 비슷한 봉화조라는 게 있는데 오세욱은 그 집단의 리더이며 평양의 왕발로 소문난 인물이다. 그러나 평양을 벗어난 김정남의 힘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그 공간을 김정은이 치고 들어갔다.

 

김정철

출생 : 1981

가족 : 아버지 김정일, 어머니 고영희, 동생 김정은, 형 김정남

김정남 추락 후 유력 후계자로 등극

여성호르몬 과다분비증, 내성적 성격으로 후계구도에서 멀어짐


 김정남이 후보에서 밀리면서 차남인 김정철이 유력한 후계자로 떠올랐다. 20028월 조선인민군출판사에서 대외비로 펴낸 자료에 고영희를 존경하는 어머님으로 표현한 것을 시작으로 한 고영희 우상화 작업은 김정철 대세론에 힘이 되었다. 2006615일 김정철의 독일 방문은 일본 TV방송사에 의해서 소상히 공개되었다. 그는 에릭 클랩튼의 연주를 보기위해 독일에 왔다고 했으며 서방에서의 공개활동에 거리낌 없는 모습을 보였다. 훗날 김정철이 후계구도에서 탈락하자 이때의 신변노출도 한 원인이 되었다는 관측이 있다. 하지만 고영희가 숨진 지 1년 반 정도 지난 시점에서 김정철은 승계 1순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김정철이 여성호르몬 과다분비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과 김정일이 김정철의 내성적인 성격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후 김정철의 행적은 한 번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김정은

출생 : 198418

소속 : 인민군 대장,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 가족 : 아버지 김정일, 어머니 고영희, 형 김정남, 김정철, 할아버지 김일성

김정남과 김정철의 추락 후 최종 후계자로 급부상

김정일과 닮은 성격과 외모, 정치적 야심

조직 장악력, 리더십을 보유하여 추종세력 구축에 적극적

후계작업 본격화 (샛별대장, 김정일 수행 등)

김정일 건강 문제로 후계자 계승 작업 가속화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과 차남 김정철이 모두 후보군에서 밀려나자 셋째 아들 김정은이 남게 되었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성격과 외모를 빼닮았으며 어릴 때부터 생모 고영희의 영향을 받아 후계자가 되겠다는 야심이 상당히 강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조직 장악력과 리더십을 갖춰 자신의 추종세력을 구축하는 데도 상당히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정일 앞에서 선군정치를 찬양하고 혁명 계승을 외치는 등의 정치 성향이 강한 행보를 자주 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정은은 2006년께 평양 음악대학 확장공사를 지휘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샛별대장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지난해 초부터 군과 특히 보위부 등의 안전기관 시찰 시 김정일은 김정은을 대동하며 당군 실세들의 충성맹세를 받아냄으로써 후계 작업을 본격화했다. 김정일과 실세들의 도움으로 군과 보위부를 장악한 김정은은 김정남 세력에 대해 본격적인 가지치기에 착수하는데 그 과정에서 우암각 사건이 터진 것이다. 당시 당의 무력이라고 부르는 최정예 특수부대를 보유한 작전부장 오극렬은 정찰총국 신설이라는 조직개편으로 거세당했다. 지난해 2월께 북한에선 대남공작기관이 개편되고 정찰총국이라는 거대 공작 기관이 탄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오극렬이 지휘하던 특수부대(3만 병력)가 정찰총국에 통합된다. 오극렬은 명목상 국방위 부위원장이긴 하지만 실제론 무력화된 것이다.

 한때 세습을 하면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된다3대 부자승계를 꺼리는 모습을 보이던 김정일이 후계결정을 서두르게 된 것은 건강문제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도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데다 체제유지를 위한 후계자 내정작업에 불안감까지 닥치자 결정을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자칫 잘못하다간 정권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절박감에서 결국 부자세습이란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이상 김정일의 세 아들이었습니다. 결국 셋 중 막내인 김정은이 권력을 잡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 과연 4대째 세습도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 있게 지켜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