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한국사회의 북한이탈주민 그리고 정책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5. 15. 18:00

안녕하세요.! 제7기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백승국입니다. 어느덧 7기 대학생기자단이 출범한지 2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20년째인 제가 오늘은 여러분들께 한국사회에 나타난 북한이탈주민과 지원정책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출발하겠습니다.!!!!

  

                                                                          <사진출저: 연합뉴스>

 

1. 1953 ~1989, 냉전시대

 

                                         <1955년 7월 8일, 귀순 환영식을 갖는 이운용과 이인석 / 출저: KTV 영상캡처>

 남북한이 비극의 전쟁을 치루고, 국제정세는 미국의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의 공산주의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시기에는 북한이탈주민을 '귀순(歸順)용사' 라고 불렀습니다. 귀순용사라는 표현은 냉전이 붕괴될 때 까지 우리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을 대신해서 쓰던 호칭입니다. 첫번째 귀순용사는 바로 북한의 공군장교 신분으로 귀순한 이운용 대위와 이인선 소위였습니다. 이들은 1955년 6월 20일, 소련제 야크-18기 전투기를 몰고 북한을 탈출해 서울 상공을 멤돌다 귀순의사를 밝히고, 서울 여의도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귀순 직후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지옥을 탈출해, 자유를 찾아왔다.'면서 북한의 실상에 대해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정부 요인들과 서울시장 및 서울시민들의 환호속에서 환영식을 가졌으며. 서울시민증을 받고, 부산에서 온 친척들과 극적인 상봉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귀순한 동포들이 많지 않았고, 군인신분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귀순용사에 관한 관리는 국방부에서 담당하였습니다. 또한 한국정부는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적 기반을 제정하기 위해 '국가유공자 및 월남귀순자 특별원호법(62.4~)'을 제정하였습니다. 이 법안은 귀순자에게 국가유공자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여 원호대상자로 우대하며, 최초의 체계적인 지원을 실시하는 제도였습니다. 더 나아가 한국정부는 월남귀순용사 특별보상법(79.1~)을 제정하여 귀순자를 사선을 넘어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귀순용사'로 간주하며, 이전보다 더욱 체계화된 지원을 실시하였습니다.

 

2. 1990년대, 탈냉전시대

 1990년 초기,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이 붕괴하고,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과 함께 북한은 고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을 겪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노태우정부는 북방정책을 추진하여 북한과 '남북공동합의서'라는 통일의 기초가 되는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한국사회에서 귀순자의 명칭은 '귀순용사'에서 '귀순동포'로 바뀌게 되고, 기존의 '국가유공자 및 월남귀순자 특별원호법'을 '귀순북한동포보호법(93.6~)으로 개정하였습니다. 이 개정은 귀순자를 국가유공자에서 생활능력이 결여된 생활보호대상자로 전환하며, 정착금 하향조정 등 지원규모를 대폭 축소한 것입니다. 또한, 기존의 국방부에서 담당하던 이 법안은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귀순자를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하는 것은 더 이상 귀순자가 정치적인 이유로 귀순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경제난으로 인한 생활고를 견디기 힘들어서 귀순한 사실에 대한 귀순자의 사회적, 경제적 배경을 반영한 것 입니다.

 

                                    <1994년 6월 14일 러시아벌목공 북한노동자들의 귀순기자회견, 출저: 동아일보>

 대표적인 사례로 1994년 5월 18일, 러시아벌목공 북한노동자 5명이 귀순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들은 영하 30-40도의 혹독한 추위속에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채 하루 16-22시간의 노동에 시달렸다고 증언하였습니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1990년대 중반에  들이닥친 자연재해와 극심한 경제난으로 북한주민들은 100만명 정도가 굶주림으로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귀순동포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당시 김영삼정부는 대량탈북사태를 대비하여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1997)'을 제정하여, 기존의 '귀순'의 개념을 '북한이탈'로 대체하였습니다. 또한 북한이탈자들의 자립과 자활능력 배양에 중점을 두는 정책일 마련하였습니다. 이 때 부터 북한이탈주민정책 담당은 통일부에서 맡게 되었습니다.

 

3. 2000년대 ~현재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의 발전과정, 출저: 통일부>

 

 

 

                                                             <북한이탈주민 입국현황, 출저: 통일부>

 2000년대에 들어서 귀순자를 법적용어로 새터민(새로운 터전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사람, 2005)으로 제정하다가 이명박정부 들어서는 '북한이탈주민'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은 안정적인 사회적응과 새로운 시작을 위해 통일부에서 여러가지 정착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정착지원금, 주택알선 및 주거지원금, 직업훈련 및 직업고용센터 알선, 의료보호, 대학 특례 신-편입학 등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북녘동포들과 더불어 살아가고픈 역대정부의 노력과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를 통해 북한이탈주민들은 우리의 이웃사촌, 선후배, 친구로 평범하게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최근 우리에게 비춰진 북한이탈주민은 어떨까요?

 

                                                                 <TV조선 모란봉클럽>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종합편성에서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북한에서 살았던 이야기, 탈북과정, 남한사회의 적응과정과 일상생활, 남한문화 충격 등에 대해 우리에게 생생히 전달해줍니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감동과 재미를 얻고 있습니다. 즉, 북한이탈주민은 멀기만하고, 낯선 존재가 아니라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한 2013년 탈북대학생이 서울대 로스쿨에 당당히 합격하여 우리에게 반성과 교훈을 주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은 우리와 반드시 한 공간에서 더불어 살아갔어야 할 이웃 혹은 가족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분단이라는 상황은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었습니다. 분단상황을 극복하고 북한이탈주민들의 고향방문이 이루어지는 것을 상상해 보셨나요? 그 상상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통일부와 통일부 대학생기자단이 열정히 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통일미래의 꿈을 많이 사랑해주세요. 여기까지 제7기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백승국입니다.!!!

 

 

<자료출저>

통일부 홈페이지 및 통일부 공식블로그(통일미래의 꿈)

2014년도 경남대학교 민족과 통일 수업_김성경 교수(북한대학원대) 수업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