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백범과 걷는 김구의 길 : 피스리더 아카데미
광복 후 한반도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으로 분열되어 이념 대립이 심했으며, 민족 지도자들도 이념에 따라 나뉘어 정부 수립 활동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을 뛰어넘어 남북한이 공통으로 존경하는 민족 지도자가 있는데요, 누구일까요? 바로 백범 김구 선생입니다. 평생을 독립운동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힘쓰신 김구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통일과 평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피스리더 아카데미(Peace Leader Academy)'가 경교장에서 열린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여러분도 저희와 함께 김구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러 가보실까요?
▲ 피스리더 아카데미 참가학생들
▲ 선생님의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경교장 앞에 모인 어린이들은 일일 평화 선생님인 청년백범(홍소연)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조용하던 아이들도 분단 현실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설명과 김구 선생의 어린시절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며 서로 손을 높이 들며 대답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후 다함께 경교장에 들어가서 역사의 흔적들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경교장 전경과 내부 모습
경교장이란?
2001년 4월 6일 서울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6월 13일에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었습나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에 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이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하였던 역사적 장소입니다. 원래 이름은 죽첨장(竹添莊)이었으나, 8·15광복 이후 건물을 소유하던 최창학이 김구 선생의 거처로 제공하였는데, 김구 선생이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는 경교[京橋;경구교(京口橋)의 약칭]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였습니다. 김구 선생이 반탁·건국·통일 운동을 주도할 때에는 흔히 '서대문 경교장'이라고 일컬었으며,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로 이용되었습니다. 또한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이 집무실에서 안두희(安斗熙)의 흉탄에 의해 서거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후 최창학에게 반환되었고 다시 타이완 대사관저로 사용되다가 6·25전쟁 때에는 미국 특수부대가 주둔하는 등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1967년 삼성재단에서 매입하여 강북삼성병원 본관으로 사용되어왔다가 이후 소유는 그대로 두되 전체 공간을 복원하기로 서울시와 합의해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당시의 모습대로 재현하였으며, 이는 2013년 3월 2일부터 시민에게 개방되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 경교장 [- 京橋莊] (두산백과)
▲ 경교장 견학을 하는 학생들
이러한 경교장을 구석구석 관람하면서 아이들이 집중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백범 김구 선생의 삶을 돌아보며 평화적인 마음가짐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미래의 꿈나무가 될 어린이들이 더 많이 평화를 배우고 익힌다면 우리에게 평화적인 통일은 머지않아 이뤄질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이상 6기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한솔,
이으뜸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