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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6ㆍ25 전쟁을 기록하는 <유엔기념공원>

 

 

안녕하세요,통일부 상생기자단 4기 이지명입니다 (^^) 어느 덧 뜨거운 8월도 중순을 향해가고 있는 요즘~! 여름방학과 막바지 휴가철을 맞아 여름하면 떠오르는 도시, 풀 냄새, 바다 냄새, 사람 냄새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 저의 고향이기도 한 '부산'을 찾으시거나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대한민국 부산에 자리한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유일의 성지, 교육의 장이자 관광명소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이 곳'에 대한 기사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패기와 젊음이 가득한 해운대와 광안리도 좋지만, 조금의 시간과 기회가 허락되신다면 고요한 푸름과 평온함이 가득한 이 곳 '유엔기념공원' 한 번 방문해보시는게 어떨까요?

 

 

 

한국전쟁 유엔기념공원대한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8ㆍ15 광복과 한국전쟁의 발발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한민국은 해방되었습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목적으로 진출한 소련군과 승전세력으로 한국에 도착한 미국에 의해 우리나라는 38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분단되었는데요. 유엔은 남한과 북한이 동시선거를 실시하여 정부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당시 소련(현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북한을 장악한 김일성은 거부하였습니다. 결국 1948년 5월 유엔의 감시 아래 남한만의 간접선거가 실시되었고, 8월 15일,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인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는데요. 그로부터 한달 뒤인 9월 9일 김일성은 북한에 공산정권을 수립하였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스탈린과 공모하여 김일성의 소련식 탱크와 전투기로 무장하고 물밀듯이 불법 기습 남침을 강행하였습니다. 남한은 전쟁이 일어난지 3일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당했는데요. 전쟁이 일어나자 안보리는 소련을 제외한 9개국의 찬성으로 6월 28일 유엔군의 참전을 결의하였습니다. 해방의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에게 UN군의 참전은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9월 15일 드디어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강행하였고 9월 28일 후퇴 3개월만에 서울을 수복하였습니다. 1950년 10월 19일, 평양까지 진격하였고 원산을 거쳐 압록강에 이르렀으며 11월 5일에는 두만강 일대까지 진격하였습니다. 그렇게 남북통일은 그리 멀지않은 현실로 다가오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 10월 25일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하면서 통일의 희망은 멀어지고 맙니다. 무려 26만명에 이르는 중공군의 끝없는 인해전술과 혹한 속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를 합니다. 서부전선은 월남하려는 피난민과 후퇴하는 군인들이 뒤엉켜 있었고, 마침내 1952년 1월 4일 다시 서울을 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52년 7월 10일 개성에서의 첫 휴전회담을 시작으로 1953년 7월 27일 휴전에 이르기까지 한국전 최대의 사상자를 내며 뺏고 뺏기는 고지전투는 계속 되었는데요. 일명 아이스크림 고지라고 불리는 백마고지(애록고지)는 한달에 25번이나 주인이 바뀌면서 수천, 수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수 많은 청년 병사들의 피로 땅을 물들이고서야 한반도 전역에 울려퍼지던 포성은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유엔군이 처음으로 파견된 전쟁이었던 한국전쟁

그것은 비단 '우리'만의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 1955년 12월 15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유엔 결의문 제 977(X)호 전문

 

 

길고도 짧았던 3년동안의 한국전쟁 기간 중, 유엔 25여개국 175만 4400여명이 참전하여 무려 약 4만 890여명이 희생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은 유엔 창설이래 자연수호라는 공동의 목적과 정의실현을 위해 유엔군을 파견한 최초의 전쟁이었는데요. 한국 전쟁의 와중에 유엔군 사령부는 인천, 개성 등 6곳의 임시묘지에 유해를 안장하였다가, 1951년 1월 18일 부산에 묘지를 조성하고  4월 5일 봉납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대한민국 정부는 그들의 값진 희생을 영구로 추모하기 위해 유엔본부에 이 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하고 유엔에 재한유엔기념묘지 설치를 제안하였고, 1959년 11월 유엔기념묘지 설치 및 유지겁립을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과의 협정이 체결되면서 유엔기념묘지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유엔기념공원은 11개국으로 구성된 국제관리위원회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2001년, 재한유엔기념공원에서 유엔기념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사람들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거듭나면서 2007년 근대문화제로 등록되기도 한 유엔기념공원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인류애의 상징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투지원 16개국(미국/영국/터키/캐나다/호주/프랑스/네덜란드/뉴질랜드/남아공/콜롬비아/그리스/태국/에티오피아/필리핀/벨기에/룩셈부르크), 의료지원 5개국(노르웨이/덴마크/인도/이탈리아/스웨덴), 유엔군 부대 파견 중 전사한 한국군을 포함하여 2300여명의 전사자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유엔기념공원을 향한 발걸음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 8월 12일 금요일 오후 유엔기념공원 모습

생각해보면 사방이 묘지임에도 불구하고, 차갑기보다는 따뜻하고 편안함이 전해지는 곳이었습니다.

 

 

 

유엔기념공원은 대한민국 역사의 가장 뼈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아름다운 보금자리입니다. 이 곳은 추모관과 기념관, 상징구역, 주묘역, 녹지구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계 주요 인사들은 물론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참배를 하기 위한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건축가 故 김중업씨가 설계한 추모관에서는 각종 참배행사와 함께 일반 참배객에게 개방하여 유엔기념공원을 알리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념관에는 전쟁당시 유엔군의 활약상을 담은 사진과 함께 기념유품 및 방문기념패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유엔기념공원의 전경과 한국전쟁 참전기념비를 비롯하여 각국에서 방문한 VIP들의 참배모습 등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고, 한국전쟁당시 최초로 사용되었던 유엔기도 직접 볼 수도 있습니다.

 

 

▲ 유엔기를 시작으로 줄지어 계양된 21개 참전국의 국기들,

푸른 하늘과 더불어 참 예쁘죠? ^^

 

 

상징구역에는 21개 참전국 대한민국, UN군을 상징하는 깃발을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게양됩니다.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굳은 의지와 신념의 상징인 셈이죠. 이 곳에는 터키, 그리스, 뉴질랜드, 노르웨이, 태국, 필리핀등 참전국의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주 묘역에는 호주 프랑스와 영국의 기념비와 함께 캐나다 기념동상 그리고 영연방국가중 유엔이 찾지 못한 전우장병들의 이름이 세겨진 영연방 위령탑이 빛을 잃은 그들의 영혼을 달래주고 있습니다.

 

 

 

묘역 옆의 녹지지역에는 1978년 한국정부가 건립한 유엔군 위렵탑과 2006년 한국정부의 지원으로 건립된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령비와 더불어 제 2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령비는 한국전쟁 중 전사한 4만여 명의 유엔군 장병들의 이름을 새겨 그들의 희생을 모든 이들의 마음에 담을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제 2 기념관은 과거 유엔군 전사자 명부를 보관 전시하던 곳으로 현재는 각국의 유가족이 제공한 안장자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안장자와 관련된 기념품 및 그림 등을 상설전시하고 있으며 또한 매 번 새로운 테마를 기획하여 특별전시도 이루어집니다.

 

▲ 1978년 한국정부가 건립한 유엔군 위령탑

    정면에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조각되어있고, 故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로 유엔군 위령탑'이 

   새겨져 있습니다. 왼쪽 뒤로 돌아들어가면 제 2 전시관이 나온답니다 :)

 

 

 

▲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비는 한국전쟁 중(1950.6.25~1953.7.27) 전사한 4만여명 유엔군 장병들의 이름을 모두 새긴 추모 조형물입니다. 나라별로 전사장병의 이름 새겨져있는데, 가장 많은 참전자와 전사자가 발생하기도 한 미국의 경우에는 주 별로 분류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답니다!

 

 

 

 
























▲도은트 수로의 헤엄치는 물고기들, 너무 예쁘죠?

 

 

유엔공원에 안장된 전사자 중 최연소 병사의 성에서 비롯되어 이름지어진 도은트 수로를 개설하였습니다, 이 수로는 묘역과 녹지지역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삶과 죽음사이의 경게라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11개의 물계단으로 이루어진 무명용사의 길을 조성하여 이름없이 사망한 무명용사들의 넋을 기리고 있는데요. 11개의 분수 수로 가에 늘어선 11그루의 소나무들은 이 곳에 안장된 11개 국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유엔공원은 발길이 닿는 곳곳에서 전사자의 아름다운 행고와 치열의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유엔기념공원은 전사자들의 안식의 장을 마련하고 위로하며 세계를 하나로 이뤄주는 평화의 터전입니다. 이에 따라 매년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크게는 세계 평화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작게는 전사자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실례로 매년 현충일, 6ㆍ25, 한국전쟁 휴전일 등 대한민국 역사를 되새기는 기념행사는 물론 매일 오전 10시에 유엔기 계양식과 오후 4시 유엔기 하강식을 거행하여 참배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한국전쟁에 참전한 나라의 알파벳 순으로 매년 둘째, 넷째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상징구역에 국기를 계양하는 의전행사가 열리는데요. 이와 더불어 삶의 마지막 길목에서 남편의 곁에 있고 싶다는 부인의 유언에 따라 전쟁 중 전사한 남편과 함께 안장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유엔공원에는 호주의 허스튼씨, 영국의 헨리씨, 한국의 홍옥봉씨를 포함하여 모두 네분의 합장묘가 있습니다. 유엔기념공원은 대내적으로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것은 물론 전사자 가족을 위한 따뜻한 손길을 이어가는 기회의 장이 되기 위해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 교통 및 찾아가는 길

 

 

 

 

지난 60년 대한민국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앞선 세대와 현재 우리들 모두의 노력의 결실임에 틀림없지만 그 전에 유엔군의 참전과 수많은 전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유엔기념공원은 그러한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그들의 마음에 보답하고 그들의 희생을 가슴 한 켠에 담아두고 잊지 않기 위한 우리 스스로와 국제사회의 노력의 결실이 만들어낸 평화의 터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는 시간과 함께 달리고 세월과 더불어 사라져갑니다. 그러나 지울 수 없고 지워지지 않는 그늘, 피와 눈물로 젖어야 했던 그날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세계 평화를 위한 그들의 우정이 아직 온기를 잃지 않게 우리는 여전히 세계 평화를 지키고 있는 우애와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하지만 같지만은 않은 모습으로 여전히 나뉘어 있는 있는 한반도이지만 하나를 꿈꾸며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희망의 오늘도, 내일도, 언제까지나 그대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참고자료 > http://www.unmck.or.kr 

*광복 및 한국전쟁 사진자료 > http://www.google.co.kr 

*유엔기념공원 및 그 외의 사진들은 직접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