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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북한 영화 비평 -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1)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영문 포스터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비평

: 상징의 향연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Comrade Kime Goes Flying)>(이하 <김동무>)는 영국과 벨기에의 지원 속에 촬영된 북한의 합작 영화입니다. <김동무>는 2012년 8월 제37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개봉하고, 북한에서는 동년 9월에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초 개봉했으며, 동년 10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개최되었습니다. 북한의 조선중앙TV는 2016년 새해를 맞이하여 본 영화를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벨기에 국적의 안야 다엘레만스, 고려여행사 사장 니콜라스 보너, 4.25영화촬영소 소속의 김광훈 등 감독 3명의 지휘로 제작됐습니다. 니콜라스 보너 감독은 과거 <천리마 축구단>,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을 제작한 경험도 있습니다. <김동무>는 이들의 단순한 구상에서 출발한 영화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자료센터를 방문해서 <김동무>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김동무>에 대한 비평입니다.


개략적인 줄거리



영화는 탄광의 노동자인 ‘김영미’(한정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김영미는 광부로 일하며서도 곡예사를 꿈꾸는데, 전차갱을 성공적으로 설치한 후 한 달 간 평양지역 건설현장에 투입됩니다. 김영미는 인부로 투입되는 날보다 3일 일찍 평양으로 이동해 곡예사 ‘박장필’(박충국)과 ‘리수연’을 만납니다. 박장필은 자신의 공중 곡예 파트너였던 리수연이 은퇴를 선언하자 새로운 파트너를 찾으려 합니다.


김영미는 곡예단 입단 심사에 지원해서 호기롭게 공중 곡예를 선보이고자 하지만, 공중공포증(고소공포증의 북한식 표현)으로 곡예를 제대로 선보이지도 못하고 실패합니다. 박장필은 탄광 노동자인 김영미에게 “탄광일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라며 조롱하고, 김영미는 울분을 토합니다. 평양 건설현장의 중대장(총책임자)은 곡예를 좋아하는 김영미가 곡예를 배울 수 있도록 곡예단 소속 단원을 초청하지만, 이는 공교롭게도 박장필이었습니다. 김영미는 박장필에게 건설현장의 업무를 두고 대결을 신청하고는 승리하여 박장필에게 창피를 주고,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을 데리고 노동자예술축전에 참가합니다. 박장필은 점점 김영미에게 파트너로의 희망인지 연인으로의 감정인지 모를 애매한 감정을 품기 시작합니다.


김영미는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고, 곡예에 필요한 각종 자재도 다른 노동현장의 노동자들에게 부탁해 마련합니다.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김영미의 지도 하에 노동자예술축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축전이 끝나고 김영미는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축전에서 김영미를 지켜본 박장필은 김영미를 새로운 파트너로 지정하고자 김영미의 고향으로 찾아갑니다. 김영미는 곡예를 취미로 하는 거라며 선을 긋지만, 곡예단이 전부 김영미를 찾아가고, 지역 주민들도 김영미에게 곡예를 하라 독촉합니다. 결국 김영미의 아버지도 김영미가 곡예를 하는 것을 허락하고, 김영미는 정식 단원이 되어 평양으로 향합니다. 한편, 박장필의 어머니는 지금껏 김영미를 생각하는 박장필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점차 김영미가 박장필의 배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내비칩니다.


김영미는 고된 훈련을 시작하지만, 공중 곡예의 꽃인 ‘공중 4회전’을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곡예를 그만둘까까지 심각하게 고민하지만 리수연의 응원과 어머니와의 기억으로 힘을 냅니다. 김영미는 곡예의 마지막 심사날에도 공중 4회전을 실패하지만, 김영미가 곡예 공연 심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서 찾아온 가족과 지인들의 응원에 힘입어 공중 4회전을 성공시킵니다. 이후 김영미는 세계 대회에 출전해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영화는 행복하게 끝이 납니다.


북한의 꿈: ‘비상飛上’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영화 속 공중곡예사들


<김동무>를 통해 북한 사회의 단면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북한 사회의 고유한 모습을 보다 자세히 생각해볼 수도 있고, 보다 새로운 모습을 발굴해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북한의 영화는 당의 철저한 검열 하에 이루어지므로, 북한적 특징들을 염두에 둔 채로 <김동무>를 생각해야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여느 북한 영화와 마찬가지로, <김동무>는 북한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표현되는 수많은 상징들은 북한적 가치들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공중 곡예’라는 테마입니다. 영화는 시작부에서 하늘을 날고싶은 김영미의 어린시절과, 자애로운 모습으로 이를 응원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깁니다. 바로 뒤이어서는 아버지 도시락을 챙겨가다 담을 넘기 위해 널뛰기를 하며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어린 김영미의 모습이 담깁니다.


비상(飛上)은 지상에 발붙인 사람들이 당면한 어려운 현실과 고통을 훌훌 털어버리고자 자유롭고 평화로운 상황으로 들어서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클리셰입니다. 이는 손에 잡히지도 않을 만큼 무한한 가능성과 신화적 희망을 은연중에 함유하는 ‘하늘’이라는 이미지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비슷한 코드를 <청연>, <천공의 성 라퓨타>, <옥토버 스카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행> 등에서 찾을 수 있으며,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이태백의 죽음 이야기에서의 달도 비슷한 코드를 품고 있습니다. 북한 영화 <한 여학생의 일기>에 수미상관적으로 임팩트있게 등장하는 종이비행기도 하늘을 향한 비상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공중공포증(고소공포증의 북한식 표현)을 이겨내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는 주인공 김영미


영화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지금은 어려운 현실에 처해있지만, 피나는 노력을 통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단순명료한 메시지이며, 이는 북한 당국이 영화를 통해 주민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교훈과 같습니다. 오늘날 조국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물론 이것은 미제의 봉쇄 책동에 의한 것으로 설명됩니다―수령과 당과 인민들의 피나는 노력을 통해 충분히 이겨내고 세계사회에서 훨훨 나는 조국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거나 주위의 도움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주인공, 그런 주인공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은 자연스레 인민들이 좇아야 할 이상적 인간상으로 자리잡습니다.


북한 예술의 핵심 이론인 ‘종자론’에 비추어 봤을 때, <김동무>가 잡은 공중 곡예라는 테마는 훌륭한 종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자'란 북한에서 예술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로, 김정일이 북한의 예술인들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종자는 사상성을 철저히 갖추어야 하며, 인민들의 입맛에 맞는 인민성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동무>의 기본 메시지는 노력을 통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이고, 사회주의적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세계에 떨쳐 조국을 빛낸다는 사상성도 충분하며, 이를 담는 플롯의 연속적인 전개 또한 광부라는 보편적인 인민의 삶 속에 녹아있습니다.


과한 해석일지도 모르나,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북한은 현재 자신의 상황이 시골의 광부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은연중에 시인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언제든지 공중 곡예사와 같이 화려하고 주목받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날개, 노동자


비상은 반드시 날개를 필요로 합니다. 비상이 북한적 꿈을 은유하는 상징인 것과 마찬가지로, 날개 또한 북한적 상징입니다. <김동무>에서는 날개의 의미를 비교적 직설적으로 드러내는데, 바로 동료들이 그것입니다.


다른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단지 '노동계급'이라는 이유로 생전 처음보는 여성 탄광노동자인 김영미를 도와준다


김영미는 곡예단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동료 인민-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영화 도입부에서는 탄광 동료인 친구와 함께 평양으로 향하며, 평양에 도착해서는 건설현장의 관리자(중대장 동지)에게, 예술축전을 준비하면서는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마지막 공중 4회전을 선보이면서는 가족을 포함한 모든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습니다. 공중 4회전을 연습하는 과정에 박장필의 어머니가 준비해준 떡을 먹으면서, 곡예단장은 김영미의 날개는 주위 동료들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합니다. 너무 직접적이라서, 오히려 은유적 효과가 반감될 정도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날개의 의미는 단순히 김영미의 동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모든 노동자를 포함합니다. <김동무>는 영화 내내 비상하는 김영미를 통해 노동자로서의 자긍심을 한껏 고취시킵니다. 가령 영화 중반부 공장 노동자는 김영미에게 “우리 노동계급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시다!”고 외치는데, 이것이 날개의 진짜 의미입니다. 날개는 ‘우리 노동계급’인 것입니다.


생판 모르는 김영미를 도와주는 공장 노동자들이나, 뜬금없이 닥친 노동자예술축전 참가를 함께 완수해내는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당면한 과제를 앞에 두고 뜨거운 동지애로 똘똘 뭉치는 노동계급의 이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노동계급은 물러서는 법을 몰라”고 말하는 김영미 아버지의 대사 속에는, 노동자 계급으로서의 뿌리깊은 자부심을 자극하고자 하는 당국의 의지와, 하면 된다는 북한적 군인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인공 영미를 지원하는 '중대장' 동지


끈끈한 동지애가 강조되는 이 지점에서 북한의 군사주의도 간략하게나마 짚어볼 수 있습니다. “공격나팔은 울렸소. 앞으로!”라는 중대장 동지의 말은 거의 완전히 군사적입니다. 심지어 그의 직책도 돌격대 중대장입니다. “혁명적 군인 정신으로 하면 된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응원도 다분히 군사주의적이며, “실패하면 안된다. 힘들어도 계속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되뇌는 김영미의 정신도 임무를 전투적으로 완수해내고야 마는 군인정신과 무척이나 닮아있습니다. 날개가 인민 노동계급이라면, 군인정신은 날개가 퍼덕거리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중 4회전


<김동무>는 작품 전체적으로 ‘공중 4회전’이라는 단일 동작을 위해 모든 것이 집중됩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단일 동작의 완수를 위한 과정을 그려냅니다. 영화 속에는 공중 곡예사로서의 성장이라는 꿈을 실현시키는 김영미의 이야기, 딸이 잘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이야기, 교예 파트너를 찾고자 하는 박장필의 이야기, 김영미에게 기대를 거는 동료 노동자들의 이야기, 심지어는 아들 박장필의 배필을 찾고자 하는 박장필 어머니의 이야기 등 다양한 플롯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들은 ‘공중 4회전 성공’이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뭉쳐지고, 그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작중 공중 4회전은 작중 인물들이 품고 있는 복잡하고 내면적인 이야기들을 녹여내는 하나의 총체입니다. 수많은 이들의 꿈들은, 공중 4회전 성공이라는 단순하고 명확하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꿈으로 수렴됩니다. 실제로 교예를 하는 교예단원들에게 공중 4회전이 상당히 의미있는 동작임은 분명할 것이나, 영화에서 표현된 것만큼 지대한 중요성을 띠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매일매일 지속되는 훈련이나 다른 동작들, 단원들 간의 동료애 등도 공중 4회전만큼 중요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공중 4회전을 완성시킨다는 사실에 극도로 집중된 목적의식은 거의 편집증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공중4회전' 동작을 완성시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주인공 영미


그런데 하나의 단순한 동작에 이처럼 강박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서사 구조는 북한에서 낯설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핵개발’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국제사회에서 핵개발의 목적은 단순합니다. 적대국을 위협하는 비대칭 전력으로서의 위용, 대내적 결집효과를 창출하는 도구이자 에너지원으로의 사용이 그것입니다. 실제로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이유로도 앞선 근거들이 주로 제시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핵이 갖는 지위는 단순히 앞선 근거들에서 머무르지 않습니다. 핵은 모든 북한적 꿈들―주체국가, 사상대국, 강성대국 등―을 실현시키는 만능열쇠로 받아들여집니다. 미제의 공화국 압살 책동을 깨부수고, 남조선 괴뢰패당에게 본때를 보여주며, 위대한 김일성 민족으로서의 자존심을 한껏 치켜세우고, 강성대국으로서의 위용을 세계 만방에 떨친다는 복잡다단한 북한적 꿈들은 핵개발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수렴되어 거의 신화적으로 발전합니다.


북한적 꿈들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효율적 정치 시스템, 국민들의 애국심이나 사회적 창의성, 원활한 대외관계 등 수많은 변수들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핵을 개발한다고 해서 북한적 꿈들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허상입니다. 그러나 통치체제부터 사회 전반에까지 고답성이 뿌리깊은 북한으로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변수들을 조작할 수 없으므로, 핵이라는 하나의 단순한 신화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유체계는 영화에서도 공중 4회전으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북한 영화 비평 -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2)"로 이어집니다)


추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