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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새터민과 함께 남산 걷기

 

가을비 나리는 남산에서의 따뜻한 산보.’

 

  아침부터 날이 많이 흐리더니, 결국엔 가을비가 내린다. 그래서인지 조금 스산하다. 첫 취재인데 날씨가 이래서 행사가 잘 치러질지 걱정부터 앞선다. 이런 뜻 깊은 행사가 차마 날개가 다 펴기 전에 꺾일까하는 두려움. 일단 뚜껑은 열어봐야 하는 법. 잠시 비관적 상상은 거두기로 하자.

  백범 김구광장에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도 내 예상은 반만 맞았다. 예고 없는 비와 추위로 인해 참가자는 적었으나, 행사는 예정대로 활발히 진행됐다. 오히려 악조건 속에서도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만 있어서 그런지, 행사장의 분위기가 매우 들떠있었다. 성에가 낀 유리창을 닦아내듯이 그제야 내 불안감도 깨끗이 닦여졌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쭉 둘러보니, 행사에 참여한 각기각색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잘 모르겠지만, 호탕하게 껄껄 웃고 있는 한 아저씨. 남매인지 연인인지 구분이 잘 안가는 젊은 남녀들. 주최 측에서 나눠준 보라색 풍선을 들고 할머니 손을 이끌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꼬마 아이들. 저기 저 멀리서 정겹게 한담을 나누고 있는 노부부까지. 나로서는 도저히 누가 새터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전혀 우리와 다르지 않은데- 왜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향해 편견의 벽을 키워만 왔는지...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  

 

‘자! 오래 기다리셨죠. 이제부터 행사가 진행되겠습니다.’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추워서 그런지 사람들이 금방 단상 앞으로 모여든다. 이렇게 모이고 보니 꽤나 사람들이 많았다. 광장 곳곳에 사람들이 흩어져 있어서 내가 착각한 듯하다. 이른 아침에 가졌던 불안감이 한 시름 놓인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틈 사이에서 행사의 시작을 맞았다.

 

 <개회사를 듣고 있는 참가자들>

 

  행사 식순 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장면은 개회사였는데, 새터민 여성 한 분과 개그우먼 강유미씨가 함께 낭독했다. 비록 말하는 억양과 발음이 다를지라도, 그 속에 담긴 ‘위로’와 ‘치유’ 그리고 ‘소통’의 맘만큼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지금 내리는 이 촉촉한 가을비가 새터민들의 지친 가슴을 따스히 적셔줬으면......

  개회사를 듣다보니, 갑자기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왜 주최 측에서는 ‘소통’을 위한 방법으로 ‘함께 걷기’를 선택했을까. 도대체 함께 걷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 것일까.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외로이 홀로 걸어 나가는 길’로 자주 묘사한다. 여기서 ‘길'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이미 이전에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는 것’을 전제한다. 외로이 홀로 걸어 나가기보다는 이번 행사처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 나간다는 것. 이것이 바로 ‘소통’의 첫 걸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주최 측이 참 대회컨셉을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행사를 통해 서로가 함께 어우러져 통일의 사명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서로가 지속적인 연계를 가질 수 있는 관계로 발돋움할 수 있다면, 분명 통일의 길도 한 층 더 가까워지겠지. 그래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원래 목적은 취재만 하려고 했는데, 참여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만 같아서. 물론 취재는 해야 하기 때문에- 동료 기자 한 명이 함께 하기로 했다. 더욱 생생한 취재를 위해서는 우리 상생기자단, 뭐든 하고 어디든 간다!

  접수 신청을 하고, 남산 북측 순환로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참여자들을 위해 열심히 격려하고 환호해주는 스태프와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열심히 수고해준 사람들. 험한 날씨에도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이들 때문이리라.

 

 <이제. 출발해볼까?>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남산의 단풍은 장관이었다. 형형색색의 울긋불긋한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들이 남산에 흐드러지게 핀 모습은 숨이 탁! 하고 막혀올 정도였다. 그 색감은 잘 여문 홍시와도 같았고, 대구의 질 좋은 뽀얀 햇사과 빛깔을 띠며, 아주 새빨갛게 타오르는 석양을 연상케 했다. 단풍들의 향연이 바로 이런 것일까. 부스럭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구수하게 들려온다. 걷을수록 상쾌해진다는 말이 바로 이럴 때 사용되는 말일 거다. 그동안 일상에서 쌓였던 억한 기운이 쏴아~악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흥겨워 고개를 돌려보니, 참가자들 또한 나와 같은지 삼삼오오 무리지어 즐겁게 산보하고 있었다. 하하, 호호, 낄낄, 각종 의성어들의 하모니. 그래서인지 자꾸만 노래가 절로 나온다. 내가 부른 노래는 GOD의 길.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곳이 어딘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우리가 함께 걸어 나가면 언젠간 그토록 바라는 목적지, ‘통일’에 도달할 수 있겠지. 
 

 

 <우리의 희망이 저 멀리 북녘 땅까지 날아갈 수 있기를..>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걸었더니, 어느새 반환점을 돌아 목적지인 백범 김구광장에 도착해있었다. 3.5km의 산보가 마치 100m 단거리로 변한 것만 같았다. 주위를 둘려보니 기자만 그런 건 아닌지, 다들 고개를 갸우뚱 하더라. 아마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며 서로 소통할 수 있었던 시간이 이런 마법을 부린 것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이긴 하지만, 여하튼 난 그렇게 믿고 싶다. 촉촉한 가을비가 나리는 남산에서의 낭만적 산보와 함께 내 첫 취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상생기자단 류재영 기자

(heyclickma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