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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동국대 2차 통일포럼 - 토론회 ①


지난 2016년 12월,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학술동맹에서 주최한 제2회 학술회의가 열렸습니다. 북한학과 학생들이 1년 간 공부한 내용을 발표한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총 6명의 학생들이 발표했으며, 지난 제1회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학생들의 내용은 지난 기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동국대 1차 통일포)


2차 포럼에서는 박형기, 장은지, 이성엽 학우가 발표를 했습니다. 박형기 학우는 <'한반도 신뢰'의 탈을 쓴 제국주의>라는 제목으로 대북정책의 제국주의적 특성에 대한 비판을 했습니다. 장은지 학우는 <한반도 문제에서의 한국의 위상과 주도권 회복을 위한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으로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국의 현주소를 짚어보았습니다. 이성엽 학우는 <남한과 서독의 통일 전 학교통일교육 비교와 남한 학교통일교육에 대한 비판>이라는 제목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통일정책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본 기사에서는 박형기 학우의 발제 내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편의상 각주와 출처 등의 내용은 삭제하였습니다.


‘한반도 신뢰’의 탈을 쓴 제국주의

: 대북정책의 제국주의적 ‘번역’에 대한 비판 by 북한학과 박형기



1974년 7.4 남북공동선언 이래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반도의 민족공동체적 요소를 인식하고 이를 위해 남북이 상호 화해협력을 통한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정치통합의 기반을 조성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북한 비핵화 논거에 기초한 비핵개방 3000 정책,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책은 접근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이나 큰 틀에서의 상호 신뢰 구축의 기조는 큰 변함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은 큰 틀에서의 분단체제의 해체가 아닌 남한의 편익을 얻고, 북한 체제를 남한의 일부로 흡수하여 편익을 얻기 위한 ‘번역’의 시도가 엿보입니다. 이는 정치적 차원, 경제적 차원, 문화적 차원, 사회적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시대착오적 사회주의 세습독재를 청산하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실을 공유”한다는 정치적 차원, “우리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의 결합으로” “통일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경제적 차원, “사회적 자원과 시설, 역할이 공정하게 배분되는 복지정책과 분배제도의 정착”이라는 사회적 차원, “고양된 민족적 일체감과 자부심”이라는 문화적 차원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얻을 수 있는 편익들은 남한 중심의 민족적 통합으로 북한 사회의 고유성을 결여시키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남한의 대북정책에 내포되어 있는, ‘민족을 통한 제국주의적 흡수통일’에는 어떤 이면들이 숨겨져 있을까요? 이것은 무엇이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분단체제의 사회적 ‘번역’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한반도 분단체제 작동의 기제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분단체제의 작동에 따라 남북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구현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분단모순들은 분단체제론의 논의 하에 원활한 설명이 가능합니다. 분단체제론의 정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분단체제론에 대해 비판하는 연구도 적지 않으나 분단체제가 세계체제의 하위구조로서 작동하는지, 분단모순이 분단체제의 핵심개념인지, 분단체제가 어떤 역사적인 흐름에서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들이 존재합니다. 


분단체제가 의사(擬似)민족국가들로 이뤄진 한반도 체제에서 하나의 구조로 작동하여 남북한 사회현상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데에 부족함은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분단체제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한반도에 정착이 되었는지, 월러스타인(I. Wallerstein)의 세계체제론에 대입한 분단체제가 세계체제 하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분단체제 하에서 분단모순이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하는 것입니다.


분단체제 하의 분단모순은 분단체제의 상부구조와 사회 행위자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지속되어왔습니다. 미국, 소련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진영에 의해 이뤄진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초기에는 외부적, 국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남북 사회의 분단모순인 적대적 공생관계, 독재체제의 형성으로 인한 사회 내부적 변혁의 요소가 둔화되면서 남북 사회는 분단모순을 재생산해나갔습니다. 분단이라는 사회구조가 그의 구성원인 남북 사회에 의해 재생산되면서 분단체제가 견고해진 것입니다. 이는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Theory, ANT)에 의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ANT에서는 “모든 실재는 다양한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이 함께 구축한 이질적 연결망이며, 이 연결망이 다양한 질료로 이루어진 패턴화된 연결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사회현상이 자연과 인간, 행위자 뿐만 아니라 연결망 그 자체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연결망을 통한 사회현상의 촉발은 분단체제 하의 분단모순에도 대입해볼 수 있습니다. 분단체제 하에서 사회권력이 분단사회에 대한 담론의 번역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한반도 사회에서 분단체제를 구성하는 사회적 연결망과 사회구성원은 자신의 일상적인 행동과 사회적 행위로 분단체제를 재생산함으로써 사회권력의 번역의 여지를 다시 주는 것입니다. 사회적 현상은 현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고착화하고 해결의 여지를 남기지 않게 합니다.


여기서 분단체제의 작동기제인 담론의 번역을 고찰하면서 그에 대한 예로 박정희 시대의 개발주의를 들 것입니다. 분단체제가 단순히 한반도의 분단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남한 사회의 개발주의가 대북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데에 분단체제의 번역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투르에 의하면 번역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존재들 간의 혼합, 즉 자연과 문화의 혼종(hybrid)들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 존재들의 존재론인 문화와 비-인간 존재들의 존재론인 자연이 혼합이 되어 새로운 혼종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근대적으로 인간 존재(문화, 사회)와 비-인간 존재(자연)는 세계 안에서 따로 존재하는 실재로 보았으나, ANT에 의하면 이 둘은 각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실재는 다양한 인간과 비인간의 행위자들이 함께 구축한 이질적 연결망으로 봅니다.


따라서 근대적 입장에서는 자연과 문화의 혼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봤지만 ANT에 따르면 자연과 문화의 혼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는 번역이 사회적 담론이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입해볼 수 있다. 근대적 시각으로는 번역이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사회적 담론은 오직 인간 행위자들에 의해 생성되고 공유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ANT에 대입하면 사회적 담론은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 간 연결망에 의해 혼합되고 혼종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담론이 어느 하나의 범주에서 설명되는 것이 아닌 여러 범주에서 설명되고 연결망을 이룸으로써 혼종이 되는, 즉 번역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북정책에서 제국주의적 번역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요? 이는 박정희 시대 개발주의의 본격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박정희 시대의 개발주의와 그의 유산


전근대적 사회였던 구한말 한국 사회는 일제 식민지배 시기를 거치면서 ‘식민지 근대화’의 과정을 거쳤으나, 아직 근대적 사회로의 이행은 완벽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한반도에는 분단체제가 들어서고, 이승만 정권의 뒤를 이은 박정희 정권은 ‘선건설 후통일’, ‘조국근대화’로 대표되는 개발주의 논리를 앞세워 그들의 독재체제를 정당화하였습니다. 즉 반공주의 정책을 강화함으로써 분단체제에 대한 해체 가능성을 불식시켰고 경제발전을 명목으로 내부의 체제 도전적 요소를 탄압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조국근대화는 한국의 경제와 문화를 근대적인 것으로 바꿔놨으나, 박정희 체제 하의 근대화 요소를 가진 한국 사회를 “문명의 위험”에 취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건, 대연각호텔 화재사건, 광주대단지사건 등 개발논리를 앞세워 인권과 안전을 무시한  -문명이 인간을 위협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박정희 시대 개발주의의 단상을 보여줍니다. 


전근대적 한반도에 분단체제의 기반과 여기서 파생된 박정희의 개발주의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안전불감증 사고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등에서 비춰지는 자본의 행태들은 분단체제와 개발독재의 근대화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박정희 개발주의는 정치 등 각 분야를 제외한 경제 부분에 국한된 “압축적 근대화”, 물리적 폭력을 동원한 “폭력적 근대화”, 서양의 근대화를 모방한 “모방적 근대화”로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군사적 성장주의는 경제적 성장에만 정치적 생명을 의존하게 되어 정치적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었고, 한국사회에 물질과 인간사이의 가치전도적 현상을 야기시켰습니다.


현 한국사회에서도 이어지는 물질만능주의에 의한 가치전도적 현상 -경제만능주의, 폭력적 사회, 정체성 혼란- 은 세계적 선진국 반열에 오른 현 한국사회에서 제국주의적인 요소로 치환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젊은이들은 중동, 아프리카로 나가라”라는 발언, 이라크 파병의 모병제적 요소,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등이 그것입니다.


해외 약소국에 대해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회적인 담론들은 박정희 시대의 자본만능주의에서 발현한 고도화된 파괴적 자본주의의 현상들인 것입니다. 분단체제-개발독재-제국주의로 이어지는 일련의 파괴적 사회담론은 탈냉전 이후 한국사회에 일상적으로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본고에서의 제국주의 이론은 마르크스적 제국주의인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논의를 따르기로 합니다. 자본주의의 고도화에 따른 시장 개척을 위해 패권주의를 도입하는 행위, 타 국가에 대한 자본적 침탈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분단체제-개발독재-제국주의로 연결되는 물질만능주의 담론은 자연스레 대북정책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발3000 정책,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책으로 이어지는 남한의 대북정책은 북한을 일종의 개발을 통해 경제적 이윤을 취해야할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개발주의와 제국주의, 여기서 파생된 대북정책은 단지 독재국가의 계획경제, 자본주의의 고도화, 남북관계의 변화에서 온 담론이 아닙니다. 이는 분단체제에서 기인되고 각 범주와 대상들이 혼합된 분단체제의 번역인 것입니다. 이는 단지 모든 것이 분단체제가 원인이라는 환원론적인 입장이 아닌, 분단체제가 각 사회적 담론을 번역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다음 절에서 대북정책이 어떻게 제국주의적으로 번역되었는지 밝히면서 이를 살펴보겠습니다.


현 대북정책의 제국주의적 ‘번역’


남한의 대북정책은 국제정치상황, 남한의 경제적 위치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1974년 남북공동선언은 외부적으로 핑퐁외교로 대표되는 데탕트 상황에 맞물려 내부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독재권력의 고정과 개발독재의 가속화를 불러왔습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도 동구권 붕괴에 따른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으로 인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이후 세계화의 진행과 남한의 외환위기에 따른 신자유주의 담론의 확산으로 남한의 대북정책은 경제적 개발요소와 결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이후 북한의 핵개발이 가시화되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비핵화를 조건으로 한 북한의 개발원조 정책은 이의 연장선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외환위기라는 대변혁을 맞은 한국사회에서 김대중 정부는 대북정책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이를테면 “DJ 독트린”이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당시 세계 신자유주의적 추세에 따른 정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햇볕정책의 논지는 “한국은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지 않고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하여 남북간 화해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자”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잉여자본을 다른 국가에 투자하여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킬 필요성이 있었는데, 그 대상이 북한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 투자의 대상으로 북한을 지목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었고, 이는 햇볕정책이라는 현실성 있는 정책으로 귀결되었다. 따라서 햇볕정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남한 자본의 북한 투자”인 것입니다.


물론 햇볕정책을 단순히 북한에 대한 경제적인 투자로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경제 위기를 겪은 북한과 김영삼 정부 시절 경색된 남북관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었던 남한에게 햇볕정책은 평화통일에 대한 밑바탕으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은 서로의 통일정책에 대한 공통점을 확인하고 상호간 통일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합의하는 등 통일정책에 대해 상생적인 행보들이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평화통일을 위한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골자는 남북 간의 경제교류 증대에 의한 상호의존성의 확대입니다. 남북 간의 경제적 규모 차이를 생각했을 때, 북한의 대남 경제의존은 남한의 대북 경제의존보다 훨씬 증가합니다. 북한의 대남 경제적 예속은 남한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에 충족하는 것입니다. 이런 제국주의적인 햇볕정책의 결과가 평화통일이라는 담론으로 번역되는 것입니다.


남한의 자본, 기술과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한 남북 공동 발전은 간단히 말해 개발독재 시절부터 내려온 한국의 수출제일주의에서 비롯된 경제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식민지 개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가 심각해질대로 심각해진 한국 사회에서, 개발주의 논리를 적용시킬 수 있는 곳으로 북한은 동남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제국주의적 확장에 유리한 곳입니다. 따라서 햇볕정책의 경제 지원은 신자유주의 사회 하에서 분단체제-개발주의 논리가 지속된 한국 사회의 제국주의적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발 3000,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의 핵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라는 선결조건이 붙었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경제 교류지원을 하겠다는 햇볕정책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북한 핵개발이 가시화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됨에 따른 외교관계의 온도차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의 상징적 의미는 서독에 흡수통일된 동독의 경제발전을 은연중에 북한에게 전달하기 위한 메시지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북한의 남한으로의 제국주의적 포섭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최근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따른 개성공단 폐쇄, 자체 핵무장론 등에 따라 남한의 제국주의적 대북정책은 잠시 그 담론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으나, 남북 관계의 회복이 진전된다면 종전의 남한의 제국주의적 대북정책 기조는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남한의 수출제일주의와 개발주의 속성이 맞물려 작용할 수 있는 정책이 DJ독트린의 제국주의적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분단체제-개발주의-제국주의적 대북정책으로 이어진 남한 사회의 일련의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분단체제 하에 구축된 박정희 식 개발주의가 남한 사회의 자본만능주의로 귀결되었고 이는 대북정책에서 제국주의 기반 하에 ‘경제협력’으로 번역되는 과정이 남한 사회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한국사회에 무슨 문제를 야기하게 될까요? 다음에서 이를 크게 두 가지로, 즉 북한의 제국주의로의 포섭으로 인한 한반도 내부의 문제와 분단체제에 의한 대북정책의 번역, 고착화 문제로 다뤄보겠습니다.


제국주의와 개발주의의 문제점


제국주의적 대북정책의 문제점으로 우선 제국주의와 그 기반인 개발주의의 방식의 문제점을 들 수 있습니다. 사회적 동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수출만이 경제위기의 돌파구이며, 이는 박정희 시대의 개발주의에서부터 이어져온 한국사회의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외연 확대에 의해 움직여온 경제 시스템이 패권주의로 전환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남한은 외부로 뻗어나갈 외교적인 자산도 없고, 동북아 지역 내에서도 미국의 눈치를 봐야만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식민지를 경영한 적도 식민지를 만들 능력도 없는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한국이 눈을 돌릴 곳은 북한 밖에 없습니다. 북한에 대한 경제적인 패권을 만들어내고 북한을 남한의 경제 시스템에 포섭함으로써 경제 발전 동력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 지방에 대한 개발(새마을운동)을 끝낸 남한이 북한에 대해서도 개발 논리를 지속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가치전도적이고 파괴적인 개발주의 논리로 무장한 대북 제국주의는 북한의 ‘이용 가치’가 고갈될 시에 심각한 문제로 다가올 것입니다. 즉 북한의 제국주의적 개발이 끝나는 때에 자원고갈의 파멸적인 결과는 현재 남한 사회의 수도권-지방간의 양극화현상보다 더 심각하게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개발주의의 방식 역시 북한 사회와 한반도 사회에 심각한 문제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대북정책은 북한의 공간을 남한의 방식으로 ‘재개발’하는 논리를 취하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빙자한 자본주의적인 공간에 의한 재개발은 그들의 고유한 공간과 그에 따른 그들의 가치를 파괴하며, 그들의 사회적 공간을 남한의 사회적 공간의 주변부로 포섭하면서 남한과 북한의 사회적 공간을 위계화 시켜버립니다. 


부르디외(P. Bourdieu)는 “사회적 공간을 경시한 채 아무나와 한데 모아둘 수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사회적 공간은 물리적 공간에서 대체적으로, 그리고 다소 정확하고 완전한 방식으로 자신을 실현시키며 (...) 물리적 공간은 (...) 그것이 하나의 사회적 구성이고 사회적 공간의 투사이며, 객관화된 상황의 사회적 구조”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비단 물리적인 공간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공간에 대한 인식 없이 사회적인 통합은 어렵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남한의 일방적인 경제 지원과 개발은 북한 사회의 사회적 공간을 침탈하는 행위가 되며, 남한 내부에서 지방이 서울의 “내부식민지”로 전환되고 말았듯이 북한 또한 사회적으로 남한의 공간에 종속되고 마는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제국주의적 경제발전의 한계와 개발주의로 인한 사회적 공간의 침탈은 제국주의적 대북정책의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남북 사회의 갈등을 종식하고 궁극적인 평화통일 상태를 이루기 위해서 지양해야하는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배-피지배 구조를 재생산할 수밖에 없는 현 대북정책은 평화통일에 있어서 올바르지 않은 정책입니다.


분단체제 재생산의 문제점


제국주의적 대북정책의 또 다른 문제점은 대북정책 자체가 분단체제와 분단모순을 고착화시킨다는 점입니다. 대북정책의 제국주의적 담론의 원류는 분단체제입니다. 분단체제는 폭력적 개발정책, 비민주주적 독재체제, 남북 사회 내부의 불균형을 초래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분단체제는 남북 간의 불평등을 미리 상정하고 또 일방적인 불평등을 양성하는 제국주의적 대북정책을 초래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국주의적 대북정책은 다시 이 분단체제를 재생산하게 됩니다. 제국주의적 대북정책은 남북 갈등을 멈추는 평화적이고 상호 간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상생’의 통일정책으로 번역됩니다. 이런 분단체제의 혼종은 남북 사회 간 교류로 인한 연결망의 생성으로 한반도 사회 안에 정착하게 되고, 이는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다시 재생산되면서 분단체제의 고착화를 불러오게 됩니다. 


특히 대북정책의 분단체제의 재생산적 요소가 위험한 이유는 통일을 구체화하는 정책에서 남북 상호 간의 교류가 이어져 사회적 연결망의 다양화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상호 간 다른 사회의 다양한 부분으로 침투하는 분단체제의 이데올로기는 물리적인 통일 부분에서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물리적 통일 이후에도 궁극적인 통일인 남북 사회적 갈등과 이질성을 봉합하는 데에 실패할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단체제를 재생산하는 제국주의적 대북정책은 궁극적인 통일에 큰 장애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현 대북정책의 제국주의적 요소와 그 기원, 형태,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분단체제에서 발생한 한국의 개발주의적 자본주의, 자본주의 유지를 위한 촌놈들의 제국주의, 그리고 제국주의적 요소가 이식된 대북정책이 행위자-연결망을 통해 다시 분단체제의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한반도의 궁극적인 통일을 어렵게 할 것입니다. 남한 사회에 폭넓게 자리 잡은 개발주의 담론, 분단체제적 담론은 이러한 대북정책 등 통일담론에서도 작용을 할 것이기에, 우선 이 담론을 해체하고 새로운 담론으로 이행하는 논의가 선행되어야 현 대북정책에도 변화의 기조가 생길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선 개발주의 담론의 해체입니다. 사회적 공간에 대한 논의와 공동체적인 공간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체에 퍼지게 하는 담론이 필요합니다. 그 후에 개발주의 담론에서 벗어나 사회적 공간을 존중하게 된다면(생태주의로의 이행이 실현된다면) 맹목적인 개발로 귀결되어야 하는 현 한국의 경제 구조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분단체제의 해체입니다. 분단체제는 행위자-연결망에 의해 사회, 행위자 뿐만 아니라 그들 일상 속에 있는 연결망 그 자체를 통해서도 다시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체하기 위해 우리는 일상 속에서 분단체제를 연구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 사회 안에 다양한 문제들 - 군사, 사회, 경제, 젠더 등 - 속에 자리잡고 있는 분단체제의 번역들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들의 논의를 하는 것이 분단체제 해체의 기초적인 단계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평화통일 실현을 위한 진정한 대북정책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2016 제2회 동국대학교 북한.통일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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