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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열려라 금강산!' - 진기자의 금강산 관광지구 방문기!

 

열려라 금강산!

-진기자의 금강산 관광지구 방문기

지난 11월 26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진행되었던 남북당국회담 실무접촉에서

오는 12 11일 남북 차관급 회담을 가지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여러 관측에 따르면, 이날 금강산 관광의 재개'에 관한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하는데요.

북측에서는 수익성이 좋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싶어하지만,

남측에서는 2008년 관광객 피살에 관련한 북측의 사과 없이는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소떼를 몰고 가는 현대아산 고 정주영 명예회장>

<소를 실은 50대의 트럭이 북쪽으로 향하는 모습>

<1998년 출항한 금강호>

 

<2003년 시작된 육로관광>

 

금강산 관광은 1998년 현대아산의 () 정주영 명예회장

 501마리의 소떼를 판문점을 넘어 북측으로 몰고 간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1998 11 금강호가 출항하며 금강산 관광의 뱃길이 열렸고,

2003 DMZ를 통과하는 육로관광이 개시되었습니다.

이후 2008년까지 195만 명의 남측 관광객이 금강산을 다녀갔으며,

 ‘금강산 관광이라는 남북 경제 협력은 남과 북 모두에 많은 이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8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고,

남과 북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려왔으며 현재까지 7년간 금강산은 홀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금강통문을 지나 비무장지대(DMZ)로 들어서는 버스 행렬>

 

지난 10월 제 20차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지구에 다녀왔습니다.

남측 세관(CIQ)을 통과하고, 민간인 통제선(민통선)을 지나, 비무장지대(DMZ)를 건너,

우리나라의 북쪽 지역으로 들어섰습니다.

 

북측 세관(CIQ)를 통과하고 나서 조금 더 가니,

추수 작업이 한창인 논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 북측 주민들이 보였습니다.

북측 주민들과 그들이 사는 집들, 학교 그리고 공장 건물까지 저는 모든 시력을 동원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텅 비어있는 금강산 관광지구, 우뚝 솟아 있는 이산가족 상봉 면회소>


 

<낡은 외벽의 금강산 호텔>

 

 

<평양의 옥류관 따와 만든 금강산 관광지구 내의 옥류관>

 

몇 분간 더 달려오자 점점 금강산 관광지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이곳을 보고 든 생각은 촬영팀이 빠져나간 드라마 세트장 같다 것이었습니다.

몇 대 없긴 했지만 보이는 모든 차는 운행을 멈춘 상태였고,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덩그러니 서있는 이산가족 상봉 면회소와, 외금강 호텔, 금강산 호텔, 휴게소로 이용되던 온정각,

평양에 있는 옥류관의 체인점인 금강산 관광지구 옥류관까지 아주 조용했습니다.

 

 

 

<온정각 건물, 개천을 지나 북측 주민들이 사는 단지>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는 북측 주민들-참고 사진>

                

 

이곳에서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금강산 관광지구를 제외한 다른 곳을 촬영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버스가 다니는 길에는 몇 백 미터의 간격을 두고 북측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군인들 너머로, 금강산 관광지구의 밖에서

북측 주민들이 출근하는 모습, 농사를 짓는 모습,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분주함이 엿보였던 북측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대비되어 금강산 관광지구의 황량함은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상봉 행사 직전 음식을 준비하는 여성 봉사원들>

                       

<금강산 호텔 로비에 있는 상점>

 

 

20차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되었던 일주일 동안

금강산 지구는 반짝 활기를 띄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호텔에서는 화려한 색깔의 한복을 입은 여성 안내원들이 돌아다니고,

작은 상점에는 술이나 꿀, 나물 등 특산품을 사는 사람들이 보이고,

가족들이 상봉 중인 건물 내에서는 나의 살던 고향은~’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외금강 호텔 앞에서 북측 안내원들과 함께>

 

<상점에서 판매하는 북측의 과자류>

 

 

이런 틈에 저는 몇 명의 북측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눠보기도 하고,

금강산 호텔의 안내양 그리고 벨보이 아저씨들과 과자를 나눠먹으며 우스갯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상점을 구경하다가 할머니께 드리려고 '강냉이 단묵'(옥수수맛 젤리)을 하나 사왔더니,

벨보이 아저씨는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은 북측에서도 아주 우수한 공장이라서 제품의 질이 좋다"며,

 "하나가지고는 부족하니, 하나 더 사가라"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땐 웃으며 넘겼지만, 집에 와서 젤리를 먹어보고 정말 하나 더 사올 걸하고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작별상봉하는 이산가족들 모습>

 

이산가족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한번 만나 다행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었고,

차라리 모르고 살았으면하고 말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표현은 다양했지만 모두 하나같이 통일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이곳에서 경험한 북측 주민들과의 소소한 대화로 기뻐하기도 했고,

이산가족들의 안타까운 상봉과 이별의 모습에 슬퍼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이산가족 상봉의 장소로만 쓰이고 있는 이곳 금강산 관광지구.

어떤 분은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젯밤 아주 깜깜해 잘 잤다.

 

력이 부족하였던 탓인지,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꺼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상봉이 끝난 늦은 밤에 숙소로 돌아갈 때는 불빛이 하나도 없어서 버스 전조등으로 길을 밝혀 다녔습니다.

 

 

<천불산과 장전항>

 

<장전항에 있는 선상호텔인 해금강 호텔>

 

 

제 마음이 또 한 번 슬퍼졌던 건 아침 일찍 장전항을 둘러볼 때였습니다.

장전항은 금강산 관광의 뱃길이 열리고, 초기 남측 관광객들이 동해항에서 출발하여 도착한 곳입니다.

 

고고하게 우뚝 솟은 천불산에 둘러싸여, 바다라고 하기에는 너무 잔잔해 호수 같은 장전항.

그곳에 선상호텔인 해금강호텔이 있었습니다. 하얀 호텔의 외벽은 누런색으로 녹이 슬어 마치 폐허처럼 보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명승인 금강산이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남북 경협의 합작품은 제 빛을 잃은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1 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5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북한 정권과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1%가 '가능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북한의 무력 도발 가능성'에 대해서도 71%가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으며,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위협을 느끼는 응답자는 84%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남북 경제협력 재개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는 목소리가 컸는데,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6%가 금강산 관광 재개에 찬성했습니다.

(찬성은 지난해보다 6% 증가한 수치로, 반대는 14%에 그쳤습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어려운 점이 있지만,

 남북의 경제협력 사업인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많은 국민들이 찬성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과 다른 성공을 하려거든 남과 다른 노력을 하라’ 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과거의 문제는 제대로 해결이 되어야 하겠지만, 남북의 관계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성장을 하기 위해서

남과 북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금강산 관광지구를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금강산 호텔 로비에 생맥주를 파는 곳이 있는데, 여기서는 호텔에서 직접 만든 맥주를 먹을 수 있습니다.

남측, 북측 기자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는 테이블에 한 남측 기자가 맥주를 마시러 왔습니다.

그 기자가 자리에 앉으려는데 하필이면 그 자리의 테이블에 파리가 한 마리 붙어 있었습니다.

이 기자는 파리를 보고 나서, 항의하는 듯한 태도로 맥주를 파는 북측 여성 봉사원에게 따졌습니다.

 

여기 왜 파리가 있습니까? 혹시 위생에 문제 있는 것 아니에요?”

 

순간 주변의 모든 눈길이 그 기자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성 봉사원이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하다는 듯 사람들의 눈길은 여성 봉사원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때 이 북측 여성 봉사원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따라 온 겁네다

 

이 말을 듣고 항의를 했던 기자까지 포함해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중요한 것은 그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라는 말을 저는 좋아합니다.

 이 글귀처럼, 우리는 삭막한 분위기를 재치로서 바꿔버린 북측의 봉사원의 지혜를 배우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 남과 북에 발생했던 문제들 앞에서 우리가 함께 성숙한 태도를 취한다면,

한반도가 또 한번 성장할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열려라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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