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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아바이마을, 60여 년간 통일의 희망과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실향민 정착촌

 혹시 북한 출신의 실향민들이 마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향민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바로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에 위치한 '아바이마을'이 그것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월남한 실향민들이 마을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실향민들의 대부분의 고향은 함경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아바이마을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해보고 분단이 지속되면서 실향민들이 점차 세상을 떠나 줄어드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일대에 위치한 아바이마을

 

▲ 해안가에 설치된 아바이마을의 안내판(출처: 블로그 제주촌놈닷컴, 제주의 모든 것)

 

  아바이마을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는지 아시나요? '아바이'는 함경도 방언으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참전으로 압록강 유역까지 진격하였던 국군은 38선 이남으로 대대적인 남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건을 1.4후퇴라 부르는데 당시 남하하던 국군을 따라 함경도 일대의 피난민들도 함께 남하였고 분단된 상태로 전쟁이 끝나자 휴전선과 가까운 현재의 속초시 청호동 일대의 허허벌판에 집을 짓고 집단촌락을 형성하였습니다. 마을 구성원들인 실향민들의 대다수는 함경도 출신이었기 때문에 함경도 사투리인 '아바이'가 마을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현재도 주민들의 절반 이상은 함경도 출신입니다. 다만, 직접 남하한 실향민 1세대들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 세상을 떠나셨으며, 실향민 2세대들이 중심이 되어 마을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 이동수단 '갯배'

 

 

  아바이마을 앞바다는 어황이 풍부해 전통적으로 마을 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였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속초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증가와 더불어 아바이마을도 유명세를 타면서 횟집이나 낚싯배 영업 등 관광업 관련 종사자들도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현재 속초시 조양동과 도로로 연결되어 접근성이 상당히 우수하지만 아바이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은 이 지역의 전통 이동수단인 '갯배'를 주로 이용합니다. 갯배는 직사각형의 모양의 거룻배로 30여 명 정도가 탑승할 수 있으며  관광객들이 중앙동 갯배나루에서 아바이마을까지 건너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육로교통이 발달한 현재에도 갯배는 지역 특유의 교통수단으로써 종종 이용되고 있습니다.

 

 ▲ 속초의 명물 '아바이순대'

 

  아바이마을하면 도 하나 빼먹을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아바이순대'입니다. 이름에서부터 아바이마을과의 연관성이 느껴지는 이 음식은 원래 함경도 지방의 향토 음식으로, 돼지 대창 속에 선지와 찹쌀, 배춧잎, 숙주 등을 버무린 뒤 속을 채워 찜통에 쪄서 만드는 음식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남하하였으나 분단이 고착화되어 실향민이 된 함경도 주민들이 속초에 정착한 뒤부터는 구하기 어려운 돼지 대창 대신 오징어를 사용하여 현재의 오징어순대가 탄생하였습니다. 현재 아바이순대는 아바이마을과 속초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타지방 사람들에게도 각광받는 인기식품이기도 합니다.

 

▲ 과거 판자촌의 흔적이 남아있는 아바이마을 전경▲북녘을 향해 세배하는 실향민 가족(파주 임진각)

 

  지난 설날 아바이마을은 탄식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번 설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말 기준 전체 상봉 신청자 12만 9600여명 중 생존자는 6만 8200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이산가족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실정인데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바이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며 근심에 가득 차있습니다. 아바이마을의 만 65세 이상 실향민 수는 2003년 430명에서 12년이 흐른 현재 260명에 불과하며 이북 고향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70대 이상 실향민은 70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고향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실향민 1세대들을 찾기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고향에 빨리 돌아가기 위해 최전방에 자리 잡은 아바이마을의 실향민들은 60여 년의 세월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시간과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남하한 실향민들. 한반도에서 총성은 1953년에 멎었으나 실향민들의 가슴 속에 사무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60여 년이 지나도 아물 기미 없이 가슴을 더욱 저리게 합니다. 두고 온 이북 땅이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속초 아바이마을에서 실향민들은 매일 아침 북쪽을 보며 언젠가 통일이 되면 고향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속에서 하루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속한 세월의 흐름 속에 실향민 1세대들은 젊은 날에 밟았던 고향 땅에 다시는 돌아 가보지 못한 채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남아있는 분들은 백발이 성성한 채로 수십 년 동안 그래왔듯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깊이 묻고 살아가고 계십니다. 실향민마을인 아바이마을은 아픈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이 이루어져 남아계신 실향민분들만이라도 고향 땅을 밟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지금까지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7기 최대규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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