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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김정일과 김정은의 세습, 차이점은 무엇일까?

 

 권력세습에서 김정일과김정은의 차이점

(1. 김정일의 권력세습과정)

 

지난 9월 28일 북한의 당 대표자회의가 진행되면서 세계정치 역사상 유례없는 북한의 독재정권 ‘3대 권력세습’의 서막이 그동안의 베일을 벗고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냈다. 당 대표자회의에서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20대 중반밖에 안 되는 김정은에게 대장칭호와 함께 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추대함으로써 독재정권의 ‘3대 권력세습’을 대내에 공식적으로 천명하였다.

 

 

 

 

 

 

그러나 3대째로 이어지는 김일성 일가의 권력세습은 북한정권이 처해있는 현 상황과 권력지배의 성공조건으로 볼 때 아직까지 많은 허점과 불확실성이 내재되어있다. 그 중 김 일가의 '권력세습' 과정에 있어 김정일과 김정은은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김정은의 후계과정에 앞서 김정일의 후계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결정적 작용을 한 것은 어떤 것들인지, 그리고 그 특징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먼저 김정일의 후계과정은 크게 후계자 지위확보기, 후계자 내정 및 권력장악기, 후계자 권력 완성기의 총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후계자 지위확보기(1964년~1973년 9월, 9년간)

 

 

 김정일의 실질적인 후계자 지위 확보기 노력이 시작된 것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당에서 일을 시작한 때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은 지금도 이날을 각종 행사와 보고대회, 경축모임을 통하여 크게 기념하고 중시하고 있다.

 김정일은 중앙당 비서처 참사실, 내각 제1부수상 김일의 참사실, 중앙당 조직지도부 중앙기관 지도과 책임지도원, 선전선동부 과장, 조직지도부 부부장 겸 선전선동부 부부장의 자리를 거치면서 문화예술지도, 당 조직생활지도를 통하여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된다. 이때 권력승계를 위한 본격적인 경험축적, 자질향상, 권력기반구축, 업적축적을 하였다.

 김정일이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1964년부터 단 5년 사이에 중앙당 핵심부서인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부부장자리까지 초고속 승진을 하며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당시 김정일의 나이는 27살이었다.

 

 

 

2)후계자 내정 및 권력 장악기(1973년 9월~1980년 10월, 7년간)

 

 김정일이 공식후계자로 내정된 것은 1973년 9월 당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조직 및 선전담당 비서에 임명된 때 부터이다. 김정일은 다음해 2월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 정치위원회 위원에 선출되면서부터 공식적인 후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공식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일은 이때부터 자기의 지위에 도전할 수 있는 정적들을 몰아내는 '곁가지 숙청'을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김일성의 후처인 김성애와 그의 남동생들인 김성갑, 김성호를 직위해제, 연금, 공식활동을 중단시키고 자신의 후계구도에서 걸림돌인 삼촌 김영주를 1974년 2월 당 전원회의에서 부총리로 강등시켰다.

 자신의 측근들로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면서 김정일은 '속도전 운동', '3대 혁명 소조운동' 등 대중운동과 함께 북한의 사업 전반을 이끌어나갔으며 '70일 전투'와 '100일 전투' 등 사회적 캠페인을 주도하여 김일성에게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부각시켰다.

 

 

 

3)후계자 공식추대 및 완성기(1980년 10월~1994년 7월, 14년간)

 

 김정일은 오랜 기간의 후계자 수업과 실질적인 권력 장악을 거친 후 드디어 1980년 10월 당 제6차 대회에서 대내외적으로 김일성의 후계자임을 공식 선포하고 김정일의 후계체계에 맞게 정치위원회를 정치국으로 개편하고 그안에 김일성, 김일, 오진우, 김정일, 이종옥 등 5명으로 구성된 상무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못한 부주석 김일이 은퇴하고 이종옥을 경제를 전담한 총리로 내정되면서 정치국, 비서국, 군사위원회의 당내 3대 권력기구의 2인자로 모두 선출되어 김일성, 김정일 2인 공동통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켰으며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당 중앙 위원회 상무위원직을 혼자 독점하였다. 1998년에는 헌법개정을 통하여 자신을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만들어 사실상 국가 최고 통치자 자리에 등극하게 된다.

 

 

 

 

 

김정일은 30년이라는 오랜 기간의 후계자 수업과 실질적인 권력승계를 통해 김일성을 우상화, 신격화 하는데 가장 큰 업적을 세워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공고화하였다. 김정일의 후계자 수업과 권력승계는 김정일 자신의 처절한 노력과 혁명 1세(북한 정권 수립과 전후복구건설, 사회주의 건설 등 전 과정에서 김일성의 최측근 실세)들의 적극적인 지원의 산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김정일 권력세습의 특징과 결정적 요인은 바로 김정일의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일성에 대한 높은 충성심으로 김일성을 우상화, 신격화 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김정일은 그 결과 김일성과 혁명 1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후계자 지위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강적들을 숙청하고 유일 지배 체제, 독재 체제를 만들어 냈다.

 

 

 

 

김정일의 권력세습은 김정일 자신의 노력과 김일성의 선택, 혁명 1세들의 전폭적인 지지, 김일성주의 확립 및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 등 사상 이론을 만들어 후계자의 자질을 확보한 결과로 이루어졌다. 또한 혁명업적과 리더십 발휘, 무자비한 곁가지 숙청(당권, 인사권, 정보장악)도 뒤따랐다.

 

그럼 이런 과정을 거친 김정일의 권력세습과 김정은의 권력세습 과정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다음 시간에는 김정은의 권력세습 과정 및 그 과정에서 넘어야 할 4개의 큰 산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