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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이야기/정책 돋보기

전시납북자는 누구이며, 납북피해 신고방법은 어떻게 될까?

납북자 신고

'납북자'라는 말, 혹시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최근 버스나 지하철 광고란에 게시되어 있는 포스터 혹은 길가에 달려있는 현수막을 통해 '납북자'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되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광고물 인데혹시 보신 적 있으신가요?


납북자 신고


 보통 6.25전쟁을 생각할 땐, '수많은 인명피해, 난민 신세, 이념 대립' 등을 떠올리며 이로 인한 아픔들이 다가오게 됩니다. 이에 반해 납북자라는 단어는 조금 생소하고 와 닿지 않는 단어라고 여겨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 청소년, 청년 세대에게는 더욱 낯선 단어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세월 속에 잊혀져가는 이들의 아픔은 여전히 실재하기에 전시 납북자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전시납북자를 아시나요?

전시납북자란 남한에 거주하고 있던 대한민국 국민(군인은 제외)으로서 6·25 전쟁 중 (1950년 6월 25일 부터 1953년 7월 27일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전까지를 말한다.)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북한에 의하여 강제로 납북되어 북한에 억류 또는 거주하게 된 자를 말합니다.

 

625전쟁 납북자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 후 38선 이북을 차지한 북한은 신속하게 사회주의 체제를 확립하면서 사유재산 몰수 및 지주 계급, 종교인, 친일파 등을 숙청하였습니다. 이 결과 숙청대상에 속해 있던 지식인들을 비롯한 300여 만명의 북한 주민들이 남하하여 북한 내 인재와 인적자원의 부족을 초래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북한정권은 전쟁 전부터 남한에서 필요한 민간인들을 납북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6·25 전쟁 중 정치적 목적으로 상당수의 유력인사를 납치하는 한편, 부역동원 및 인민군 충원(의용군)을 위해 다수의 인원을 강제 동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쟁발생 직후부터 1963년까지 납치가족 및 정부차원에서 수차례에 걸쳐 납치자 명부를 작성했습니다. 기 발견된 명부를 기준으로 가족단체에서 추정하는 납북자는 96,013명에 달합니다. 아래는 6·25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자료에 따른 납북자 통계자료입니다. 


625전쟁 납북자


이들의 직업은 국회의원 및 정치인(169명), 법조인(190명), 경찰(1,613명), 행정 공무원(2,919명), 교수 및 교원(863명), 기술자(2,836명), 의료인(582명), 예술가(107명), 고등학생 이상(4,223명) 등 이며, 농업은 전체의 60.8% 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상의 통계에서 시기적으로 전쟁직후인 3개월간에 88.2%가 납치되었음은 사전계획에 의한 전쟁 목적이었음을, 나이가 16세부터 35세까지의 청장년층이 84.6%인 것과 98.1%가 남자였고 여자의 경우도 간호사와 같이 직업이 있는 것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대상을 선별했음을, 자택과 근처가 80.3%인 것은 조직적으로 행해졌음을 분명히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북한은 "우리 공화국에는 애당초 《랍북자》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라는 제목으로 2006년 9월 5일자 노동신문에 <용납할 수 없는 반공화국 모략소동>이라는 제하의 사설을 올려 극우 보수 세력의 날조라고 강력히 반박하였습니다. 그러나 납북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북한정권은 '자수, 관광, 모셔오기 작전, 전출, 소집 등의 명목'으로 혹은 북한군관들이 집에 와서 잠시 물어 볼 것이 있다며 데리고 간 후 납북을 하는 형태인 '위장납북'을 자행했으며, 숨어있는 대상자를 색출하여 납북하는 '색출 납북'이라는 방법을 통해서도 강제 납북을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삶에 이뤄져 고통스런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들. 뿐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이들이 사라져버린 현실을 맞이해야 했던 가족들과 지인들. 이들에겐 결코 그 시절의 아픔을 잊을 수 없으며, 잊혀 지지 않는 세월일 것입니다. 이들은 한 가정에 가장, 아빠 혹은 아들로서 귀하고 소중한 존재였을 텐데, 그들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을 겪게 되었던 그 가정에겐 정말 더 없이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 상황에 더하여 주위의 시선과 오해로 겪었을 가슴앓이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아픔의 시간을 보낸 납북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겐 여전히 그때의 상처가 남아있지만, 시대가 흐르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잊혀 져만 가던 사회 속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분명히 밝혀지고, 또한 정확한 기록이 남겨지며, 바로잡아야 할 부분들과 회복되어야 할 부분들이 하나하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납북피해신고방법

 한편, 피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의 신음소리가 사회 속에서 들려오고 드러남에 따라 20103,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가 설립이 되어 전시납북자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위원회 설립목적은 6·25전쟁 중 발생한 납북사건들의 진상과 납북자 및 납북자가족들의 피해를 규명 하고, 이들의 명예회복을 통하여 인권회복과 국민화합을 도모하는데 있습니다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납북 피해 신고' 접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납북피해 신고방법

납북피해 신고방법 살펴보기


 이 신고는 위의 정보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올해 20141231일 까지 접수가 진행되고, 접수 후 심사를 통해 납북자로 결정이 나면 이에 대한 지원을 받게 됩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생사를 알 수 없는 납북자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고 또한 가족들을 기다리는 납북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분들에게는 가족이 다 함께 다시 한 번 만나는 것이 소원일 텐데, 흘러간 세월 속에서 점점 마지막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버려서 이 소원을 이룰 수는 있을까 눈물짓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편에 아련함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6·25 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기구들의 노력을 통해 이 분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이 민족의 아픔이 그저 잊혀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청소년, 청년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우리나라에 대한 사랑이 마음 깊이 자라나, 윗세대를 이어가며 다음 세대를 세워가는 지혜롭고 건강한 미래를 이뤄가길 소망합니다. 그것이 전 세대가 함께 통일을 이뤄가며, 우리 민족의 연합을 이뤄가는 걸음이라 생각합니다건강한 대한민국, 소망 가득한 통일한국을 꿈꾸며 오늘도 한걸음 내딛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