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나는 평양의 모니카 입니다.

북한의 수도 평양. 그곳은 조금 특별한 여자아이가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평양생활이 담긴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를 소개합니다. 모니카 마시아스는 아프리카의 적도 기니 초대 대통령의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는 적도 기니가 아프리카 최초로 스페인 식민통치로 벗어났던 1968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라는 여전히 스페인의 영향권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프란시스코 대통령은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지만 스페인 정부와 우호적이었던 사촌이자 국방장관이던 테오도르 오비앙 응게마의 쿠데타로 실각을 하고 맙니다. 모니카의 아버지는 가족들의 생명이 위험해지는 것을 느끼고 친분이 돈독했던 김일성의 나라 북한으로 가족들을 긴급 피신시켰습니다.

북한 평양으로 떠났을 때 모니카의 나이는 일곱 살, 언니와 오빠의 손을 잡고 동양의 낯선 도시에 발을 내딛은 그녀는 불안함과 호기심에 어리둥절하고 있는 꼬마였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안전하게 있던 그녀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처형소식이 전해집니다. 모니카는 북한으로 왔을 당시에도 잠시만 여기에 있으면 다시 아버지와 만나 고국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니카의 평양생활은 16년간 계속 됩니다.


저는 참 이상한 인생을 살았어요. 저는 아버지가 둘입니다. 적도 기니의 프란시스코 대통령, 북한의 김일성 주석입니다.


북한에서 살며 조선말만 쓰다 보니 모니카는 오랜만에 북한에 온 어머니와 소통이 되지 않아서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입었던 일, 아버지를 죽인 삼촌을 미국이라는 타지에서 힘들게 용서했던 일 등 주어진 운명과 화해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적도 기니와 너무나 달랐던 평양의 첫 모습. 그리고 7살 때부터 평양에서 자라왔던 모니카는 평양이 자신의 고향과 같은 느낌을 받지만 조선말을 쓰고, 평양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도 느낄 수 있었던 이방인이라는 점에 대해 많은 혼란을 느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양에서의 삶이 대단히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모니카 삼남매가 훌륭히 성장할 수 있도록 최상의 교육과 대우로 친구와의 우정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북한 최고의 엘리트 양성 기관인 만경대교육학원의 여학생 과정은 순전히 모니카와 언니를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들이 교육을 마치고 나서 만경대교육학원의 여학생 과정은 바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대학 교육도 평양 최고의 대학에서 받았습니다. 오빠는 건축을, 언니는 의학을, 그리고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던 모니카는 의상을 공부했습니다. 대학교육을 마칠 때쯤 적도 기니의 정치도 안정되어 언니와 오빠는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모니카의 생각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인생을 공부하고 싶어했습니다. 그 생각엔 어렸을 때부터 자랐던 평양의 생활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녀는 호기심이 많았고 자유로운 감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북한의 폐쇄적인 생활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16년간의 평양생활은 그녀를 북한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그녀는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고 평양 생활을 마치면서 그녀는 폐쇄적인 평양이 아니라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느끼지 못하는 평양을 그녀의 평양생활을 통해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그녀가 느끼는 평양과 그녀의 삶을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로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6기 유은실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