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학생기자단/쫑알쫑알 수다방

간첩의 력사 (3) 미녀 간첩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3일 후인 1950629. 북한의 탱크가 파죽지세의 승세를 이어갈 때 한 여성이 간첩 혐의로 총살된다. 희대의 미녀 간첩으로 불린 마타 하리의 한국판으로 회자되기도 한 여성 간첩의 역사는 그녀의 비극적인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다.

 


▶ Play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속전속결로 사형이 집행된 여간첩 김수임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북한에서 외무성 부상을 맡고있던 이강국과 김수임은 사랑하는 사이였다. 이강국은 경성제국대학 법대를 졸업한 공산주의자이며, 월북하여 북한 정부의 핵심 인텔리로서 능력을 인정받는다. 이강국이 북한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무성 부상이라는 고위 관료 자리까지 오르는 사이 그의 반쪽 김수임은 남한에서 간첩으로 몰려 사형수가 된다.

월북한 이후 북한 외무성 부상 자리를 맡은 이강국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미국의 간첩이라는 혐의로 숙청되었다


김수임의 간첩혐의는 남한에서 수배를 받던 이강국의 월북을 돕고, 미군 차량을 동원하여 남로당 정치자금을 운반 하였으며, 군용 지프 및 미군철수계획과 같은 중요 기밀을 남로당이나 북측에 빼돌렸다는 것이었다. 월북한 이강국과 연인사이라는 자체만으로 그녀의 간첩혐의는 월북을 방조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자금을 운반하는 데 미군 차량을 동원하고, 군용 차량과 미군철수계획을 유출했다는 등의 간첩 혐의가 그녀 혼자서 모두 했다고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녀가 희대의 여자 간첩으로 불리며,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간첩 행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군 대령 베어드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8군 사령부 헌병감이었던 베어드 대령은 김수임의 또 다른 애인이었다고 한다. 광복 전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한 김수임은 영어회화에 능통했고, 이러한 능력을 활용하여 미국대사관의 통역을 맡았다. 통역관 활동을 하면서 뛰어난 미모를 가진 그녀는 쉽게 미군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고, 이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가며 고급 정보를 얻었다고 한다.



◀◀ Rewind


그녀의 자백과 함께 무덤으로 들어갔던 이 사건은 1996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비밀이 해제된 2백여 쪽에 이르는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조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보고서는 그녀의 혐의 대부분을 부정하고 있으며, 핵심 혐의 대부분이 입증할 수 없는 사실로 서술되어 있다. 다만 보고서는 베어드 대령과 김수임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미군에게 불명예를 안겼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간첩 이적 행위와 관련된 증거는 찾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이유로 2008816AP통신은 여간첩 김수임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베어드 대령은 미국 측에 중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도 없었던 지위에 있었으며, 김수임 또한 남한 경찰의 고문에 견디다 못해 허위 자백한 것으로 당시 미군 육군성이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녀의 간첩 행위 여부는 아직까지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일부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 간첩 혐의로 몰려 처형된 이강국이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오히려 북측 정보를 베어드 대령에게 전달했다는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김수임 간첩 사건은 남북 분단 이후 최초의 미녀간첩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그녀가 간첩 행위를 했든 하지 않았든 그녀는 국가와 민족의 분단으로 기구한 삶을 살았고, 사자(死者)가 되어서도 통일되지 않은 국가의 간첩으로 서러운 망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베어드 보고서 말미에는 김수임의 사진 두 장이 첨부되어 있고, 다음과 같은 논평이 달려 있다고 한다.


알려진 것과 실제의 외모는 차이가 있다


어쩌면 한국판 마타 하리’, ‘미모의 여간첩으로 회자되는 김수임 사건의 진실은 두 장의 사진이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To my sweet-heart feb. 24, ‘39 1939년 누군가에게 주었던 김수임 사진(왼쪽)과 세브란스병원 치과과장 부스 박사의 팔짱을 끼고 있는 김수임 사진(오른쪽)

김수임 사건은 1974년 이원세 감독의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바 있으며, 2007년 초 <낙랑클럽>이라는 제목으로 김주혁, 손예진이 캐스팅돼 영화제작 계획이 추진됐으나 투자 문제 등으로 제작이 무산된 바 있다.


사진출처

http://blog.daum.net/skxogkswhl/17956730

한국영화진흥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