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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쫑알쫑알 수다방

[포토에세이] 꽃이 건넨 이야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의 여신의 손길이 아직 한반도에는 닿지 않은 듯 하다. 우리는 요즘 연일 보도되는 긴장된 한반도에 관한 뉴스로 다소 쌀쌀한 봄을 보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잠시 벗어나, 봄을 더 가까이 느끼려고 양재동 꽃시장에 들렀다.

   2013330, 양재동 꽃시장에 들어섰다. 셰익스피어가 거닐던 아든 숲이 이랬을까? 수천 종의 꽃이 한 눈에 들어왔고, 저마다의 색채와 향기로 눈과 코를 자극했다.

  꽃시장에는 쌀쌀한 요즘 날씨를 비웃기라도 하듯, 봄이 한창이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꽃을 사러 온 손님들과 상인들로 꽃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어머, 우리 애들 결혼식에 쓰려고 하는데, 좀 깎아줘요.” “에효, 우리도 거의 안 남기고 파는건데...”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며 흥정하는 사람들 모습마저도 정겨워 보였다.

  꽃을 사러 온 손님들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듯이, 진열된 꽃들도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파아란 수국이 눈에 들어왔다. 전통적으로 파란색은 '신뢰와 통합'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특히 파란 꽃은 화합의 상징인 자리인 결혼식에 많이 쓰인다고 한다.

  이어서 장미꽃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한 매장을 찾았다. 형형색색의 장미들이 눈가에 들어왔다. '이런 색의 장미도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 만큼, 평소 보지 못한 장미들의 종류가 많았다. 

  장미는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사랑의 상징이다. 특히 붉은 장미는 '열렬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장미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흥미로운 꽃이다. 장미(Rose)라는 단어를 애너그램(anagram : 철자 순서를 바꾼 말)으로 생각해 보자. 장미는 그리스 로마 신화 중 '에로스(Eros)'란 신의 이름으로 사랑을 상징할 때도 있지만, 때론 '아픈 상처(Sore)'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미는 '사랑과 아픔' 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달콤씁쓸한 꽃이다.

  한쪽에는 빨간 장미와 하얀 장미가 한 데 어우러져 있다. 강렬한 상반된 색채의 대비가 나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영국 역사에서 이 장미들이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때가 있었다. 각각의 붉은 장미, 흰 장미는 영국 랭커스터가와 요크가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30년 동안 왕위를 놓고 치열한 전쟁을 벌인 장미전쟁을 의미하기도 했다. 오랜 전쟁 끝에, 마침내 현명한 헨리 튜더가 두 가문의 화합을 확고히 하기 위해 빨간 장미와 하얀 장미를 결합하여 가문의 새로 문장을 만든 일화가 떠오른다.

  백합은 대개 순수와 변함없는 사랑을 상징한다. 하지만 중국 전통에서는 '하나로의 결합'을 의미해서, 오래 지속되는 사랑을 약속하는 결혼식과, 우정을 표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많이 오고간다고 한다.

  "여기 꽃시장은 1년 365일이 봄이에요."라고 말하며, 랜디 한 다발을 들고 활짝 웃으시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시던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밖이 아무리 춥고, 경제가 어렵고,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해도, 여기는 그런 거 느낄 새가 없어요."라고 하며, 나에게 꽃 이야기를  쉼 없이 해주시던 그 아주머니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 중 "꽃도 쉽게 피지 않아요." 라고 한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흔들리며 피는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어떤 빛나는 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꽃은 각자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 '나를 잊지 말아요.' '바라 보기만 해도 행복이 넘치는...' 등등, 이런 꽃들의 언어는 나에게 시처럼 다가온다. 혹자는 말한다. "시가 어쩌면 가장 완벽한 언어일 수 있다." 라고, 그런 면에서 꽃들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장 완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모른다.

  "요것도 찍어 주세요. 참 예쁜 애들이에요." 한 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 주었다. "이 꽃은 이름이 뭔가요?" 나는 물었다. "아네모네예요."

  아네모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한 꽃이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자신의 아들 에로스의 화살에 맞아 사랑한 미소년 아도니스의 일화로 유명하다. 제우스의 분노를 산 아도니스는 죽음을 당해, 그 피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아네모네'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네모네는 '사랑의 고통'을 상징한다.

  아네모네는 시리아의 국화이기도 하다. 최근 아네모네는 시리아인들의 눈을 가리는 언론과 국민을 통제하는 국가에 저항해, '사랑의 고통'을 넘어서는 민주화의 상징으로도 언급되고 있다. 꽃이 본래 가진 단순한 미적인 아름다움을 너머, 많은 사람들의 뜻을 모으는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순간인 것이다.

  2013년 양재동 꽃시장에는 봄이 와 있었다. 힘들게 꽃시장 주변을 청소하는 어느 한 분의 리어카에도 봄이 와 있었고, 꽃씨와 묘목을 사들고 가는 어린 아이들의 손에도 봄은 와 있었다.

  비록 어느 때 보다도 쌀쌀한 한반도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들이다. 하지만 꽃이 우리에게 던지는 짧지만 의미있는, '화합과 사랑'의 메시지는 우리의 마음을 좀더 따뜻히 녹여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