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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28세 늦깍이 대학생이 최고의 공인회계사를 꿈꾸다!

 

28세 늦깍이 대학생이 최고의 공인회계사를 꿈꾸다!

 

 

저는 “자유의 땅에 가서 맘껏 나의 희망과 소원을 이루리라!”는 꿈을 가지고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경제발전상을 보면서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저보다 먼저 한국에 오신 어머님이 시장에 나가 포장마차 일을 하시는 것을 도와드리며 재래시장이 돌아가는 흐름에 대하여 파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매일 열심히 사는 저희 모자에 대하여 주변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주었고, 당의 간섭 없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기쁨이었습니다. 6개월 정도 부모님과 함께 일하고 나서 대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학 입학준비 공부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정말 많았습니다. 북한 학교들은 영어 교육 수준이 낮은 편이고,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한은 영어교육이 보편화되어 있고 대학입학에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정보가 부족하였던 저는 어디서, 어떻게, 누구를 만나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막막했습니다. 그러다가, 서울 명동에 탈북학생들을 위해 영어를 가르쳐주는 야학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 학교를 찾아가 면접을 보았습니다. 선생님들은 반갑게 맞아주셨고 대학생활에 대한 자신감,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게 해주셨습니다.

 

 

 

 

 

인천에서 살고 있는 저는 학교까지 왕복 4시간을 다녀야 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살면서 교통사고로 왼쪽다리를 다쳐서 전철을 갈아타는 일은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무릎이 쑤시고 어떤 날은 무릎이 퉁퉁 부어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힘든 날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한다면, 사랑하는 고향의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고, 이 좋은 환경도 극복 못한다면 사회의 낙오자가 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행히 2개 대학 입학 전형에 합격하여 드디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합격한 그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도 당당한 대한민국 지성인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하던지... 하지만 입학식이 가까워 올수록, 대학이라는 큰 문은 저를 조금씩 두려움과 자신감의 부족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28세의 늦깎이 대학생이 어린 학생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하는 문제와 공부를 열심히 해도 빨리 늘지 않는 영어도 문제였습니다.

입학 후 친구들과 잘 사귀기 위하여 여러가지 노력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7~8년의 나이 차이는 무척 걱정이 되었습니다. 학생회장을 비롯한 모든 선배님들이 저보다 나이가 어렸습니다. 그러나 선배님들은 ‘북한에서 온 형’이라고 항상 존중해 주었고 저 역시도 선배님들에 대해 존경하고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결과 선배님 그리고 친구들과 한발 한발씩 가까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친구들은 저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혹시라도 마음에 상처가 될까봐 조심스럽게 묻곤 하였습니다. 나는 항상 내가 보고 살아온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말해주었습니다.

 

교수님들도 공부에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극복하려고 애쓰는 저를 보시고 항상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한 교수님은 첫 학기에 원서로 된 과목을 가르쳐 주시면서 "내가 러시아에서 공부를 한다고 해도 군과 같을 것이다. 힘을 내어 탈북대학생의 모범이 되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스승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얼마나 마음이 뭉클하였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시험이고 선배님들도 몇 년을 힘들게 공부하다가 포기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토익점수 700점이 넘어야만 1차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어려운 시험이기도 합니다.

 

대학진학 정보를 얻으려고 복지관에 드나들면서 자원봉사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나눔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내가 받고 있는 혜택에 대하여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새터민들이 "혜택만 받을 뿐, 한국사회에 기여하는 게 없다.“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새터민자원봉사단"을 만들 어, 2008년 6월 12일 발대식을 가지고 제가 초대 대표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봉사단은 "사랑의 밥퍼나눔" "연탄배달" "김장김치 나눔"등 수많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학기를 마치고 저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주최하는 "탈북대학생 리더십교육"을 통하여 각계각층의 유명하신 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귀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고, 경영부문의 인사들을 모시고 "창업아이템"을 모색하는 프로그램 및 산업현장 견학 등에 참여하였습니다. 남북문제 관련 강의도 들으면서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도 해보았던 귀한 교육이었습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교내 탈북대학생들도 모임이 있어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통일리더십학술동아리’를 구성하였고, 현재 초대회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통일을 준비해 나가는 길에서 귀중한 인적자원인 청년들이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해야 함을 느끼며 모두가 하나가 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은 단일 민족으로서 하나의 혈통, 언어를 가지고 반만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일한 분단국가로 둘로 갈라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독일의 예를 보아도 통일은 예고 없이 한 순간에 찾아 왔습니다. 북한 역시 식량난을 겪은 90년대 중반 이후 주민들은 남한에 대한 정보에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은 하고 싶다고 하여 쉽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늦추고 싶다고 하여 늦춰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통일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꿈은 앞으로 남북의 경제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통일되면 둘을 하나로 잇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을 모두 체험한 저는 남북 주민들이 함께 잘사는 한반도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최성현(북한이탈주민, ´06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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