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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한국 전쟁, 그 아픔의 발자취를 찾아서 (1) 국제시장과 부평시장, 그리고 40계단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굳세어라 금순아 (2절)


 한국 가요계에 큰 획을 그은 현인 선생의 명곡 ‘굳세어라 금순아’!

 이 곡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슬픔 많은 삶을 아주 잘 나타내어 큰 인기를 구가했던 노래로 위의 가사는 그 노래의 2절입니다.

 그런데 일가친척 없는 몸이 되었다는 화자(話者)의 직업은 다름 아닌 ‘국제시장 장사치기’인데요. 도대체 국제시장은 어디에 있는 시장이며 또 어떠한 시장이기에 그는 왜 그냥 시장 장사치도 아닌 ‘국제시장 장사치기’가 된 것일까요?


1) 국제시장과 부평시장

 노래의 배경이 된 그 시장은 바로 부산광역시 중구에 자리한 ‘부산국제시장(이하 국제시장)’입니다. 


<국제시장> 국제시장은 부산지역 피난민들이 품었던 망향(望鄕)의 피눈물이 서린 곳이다.


 국제시장은 원래 광복 이후 돌아온 재일(在日)동포들이 모여 이룬 도떼기시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난민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었고 주로 의류나 잡화, 침구류 등을 파는 전문적이고 큰 규모의 재래시장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국제시장 거리 바로 맞은편에는 속칭 ‘깡통시장’이라 불리는 부평시장에서는 식료품을 많이들 팔고 있는데요. 매스컴을 통하여 입소문이 난 ‘비빔당면’을 비롯하여 각종 양주, 일제 과자 등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부평시장 역시 국제시장과 함께 한국전쟁의 소산(所産)으로, 힘들었던 당시 미군 부대에서 반출된 여러 물품이나 일본 등지에서 밀수입한 여러 상품 등을 팔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시장으로 바로 맞은편의 국제시장처럼 살아남고자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여야 했던 피난민들의 애처로운 역사가 느껴집니다.  이 두 시장과 함께 피난민들의 한이 어린 곳이 한 곳 더 있으니 바로 그 유명한 40 계단입니다.


2) 40 계단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말고 속시원히 말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러워 묻는구나
……

경상도 아가씨 (1절)


<40 계단> 40 계단은 단순한 계단이 아니라 역사의 피눈물이 서린 계단이다.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자리한 40계단은 이 계단의 층수가 40개라 '40계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광복 이후 귀환한 재일동포들과 한국전쟁 당시의 피난민들이 이 주위에 모여 살며 이 계단 일대에서 구호물자를 팔거나 불법으로 달러화(貨)를 매매하는 사람들로 장터를 이루기도 했던 곳입니다.

 현재는 40계단 중간에 신사의 조형물이 있으며, 노랫말에 40계단을 그린 가요 '경상도 아가씨'를 들을 수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동광동 주민센터가 있으며, 5~6층에 40계단 문화관과 기념관이 있어 40계단의 의미를 다시금 살려줍니다.

<40 계단 앞의 모자상> 동생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 옆에서 벌거벗은 채로 서있는 사내아이. 제 어머니의 낯만큼이나 고단한 낯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무심함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후 이곳은 피난을 온 사람들이 가족을 찾기 위해 모이던 ‘만남의 장소’로 쓰이기도 했는데요. 힘들고 슬펐을 그때의 아련함이 계단에서 묻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면서 웃는 낯으로 국제시장과 부평시장에서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았을 피난민 새댁은 어느새 아지매(아줌마)를 넘어 할매(할머니)가 되었고 혹여나 그리운 부모님이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괜시리 40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다녔을 청년은 어느새 아재(아저씨)를 넘어 할배(할아버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국제시장과 부평시장 그리고 40계단이 품은 역사의 피눈물! 통일이 되어야만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 국제시장 가는 길
 부산지하철 1호선 자갈치역 3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 40계단 가는 길
 부산지하철 1호선 중앙역 13번 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