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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한 탈북 대학생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이 글은 북한을 이탈해 지난 2002년 입국한 이기언 군이 힘들었던 북한 생활을 되돌아보고 남한 사회에 정착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한 수기 입니다. 이 군은 현재 서울시내 모 대학에 재학 중 입니다.



 

나의 훈련장

북한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 두 가지의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것은 바로 ‘고통’과 ‘희망’입니다. 저는 만성적인 북한의 식량난으로 1998년에 부모님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가신 뒤 소식이 끊겼고 이후 어머니마저 먹을 것을 구하러 친척집으로 가셨다가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4년이라는 시간을 길에서 거지 생활을 하며 보냈습니다. ‘싸움’, ‘소매치기’ 이 모든 것이 나쁜 것인 줄 알았지만, 그때 저에게는 이 모든 것이 살기 위한 정당한 도구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생활은 저에게 ‘육체적 고통’ 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것을 홀로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모든 고통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살아서 부모님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 희망이 없었다면 저는 북한에서 일찍이 삶을 포기했을 것이고 남한에서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북한에서의 삶은 제 인생에 있어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시기를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는 북한에서의 삶을 통해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의지와 사회 적응력도 갖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민족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비전도 품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북한에서의 삶은 제게 고통을 통해, 삶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하고, 인생의 비전을 갖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저는 2003년 2월 드디어 한국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의 생활은 저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주었습니다. 저에게는 경제적 박탈감이나 사회적 편견 보다는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생각의 싸움’, 저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고향은 북한, 국적은 한국’ 이라는 두 질문 속에서 저는 2년 동안 저 자신이 누구인지, 이것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는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만약 남한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라는 불평불만을 수없이 했습니다.

이러한 고민과 불평불만은 지구촌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조금씩 해결되어 갔습니다. 저는 지구촌고등학교의 교육을 통해 북한에서의 사상교육에 의해 잘못 가졌던 생각들을 새롭게 하고, 올바른 가치관과 비전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생각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나니, 저에게는 비전이 생기게 되었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꿈)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소학교(초등학교) 교육을 겨우 마치고 11살부터 18살까지 체계적인 공부를 하지 못했던, 그래서 기초가 부족했던 저에게 공부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포기하는 것은 저의 꿈과 비전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저는 악착스레 책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취침한 뒤에도 부족한 실력을 보충하기 위해 밤잠을 거르며 공부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저의 꿈을 더 분명하게 해주었고 노력한 것만큼 실력이 느는 것을 경험한 저는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있다는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머리로 승부하기 전까지는 엉덩이로 승부하자!”라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이 약속은 저를 항상 겸손하게 만들었고 공부하는 습관과 끈기를 선물하여 주었습니다. 지적 수준과 실력이 올라가면서 주위 친구들의 무시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지구촌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저는 제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찾았습니다. 자신을 분명히 알고 나니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 창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원래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남으로 오고 북으로 가는 다리가 끊겨 서로가 만나지 못할 뿐입니다. 같은 하나가 창피해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나의 꿈

다리가 끊겼으면 다시 잇는 것이 올바른 것이며, 또한 이것이 역사와 민족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이 시대의 ‘사명’입니다. 오래 동안 우리는 끊어진 다리를 너무 오래 방치해 두었습니다. 다리를 연결하자고 서로가 말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행동으로 옮길 때입니다.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를 피상적으로 알거나 또는 관심조차 가지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저의 꿈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처와 갈등의 통일이 아닌 우리 모두가 ‘원하는 통일’, 작은 둘이 합쳐서 ‘더 큰 하나가 되는 통일’을 이루는데 일조하는 것입니다. 저는 언론인이 되어 끊어진 우리 민족의 허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저의 꿈은 크게 ‘통일 전’과 ‘통일 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통일 전에는 북한의 현실을 한국 사회에 사실대로 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을 바로 알고 다가올 우리의 미래인 통일을 철저히 준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향에 다시 가고 싶어도 갈수 없고 그렇다고 대한민국에 쉽게 올 수도 없는 북한 난민들을 한국과 세계로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통일 후에는 남과 북의 허리에서 스펀지 역할을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해도 남과 북의 큰 파도가 부딪치면 그 사이에는 소용돌이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 소용돌이의 피해를 최소화 하고 남과 북을 더 큰 하나로 만드는데 언론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마찬 가지로 통일이 되면 초창기에는 적지 않은 사회적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 속에서 사회 문제를 올바로 진단하고 모두가 원하는 방향,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사회로 이끌어 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을 더 큰, 더 새로운 하나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은 것이 저의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