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동안 남과 북은 서로의 불신을 풀기위해 여러 노력이 있었고,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간에 과정으로 남과 북은 ‘관광’과 ‘교류·교류협력’을 통일의 첫걸음으로 삼았습니다.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위해 ‘관광’은 이질화 되가는 서로의 차이를 좁혀줄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위협을 가장 심하게 느꼈다고 때, 당시 관광정책과 관련된 북한의 변화 움직임은 통일을 위한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선 현대금강호를 띄우면서 금강산 관광을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변화’와 함께 성장한 대북 관광 사업은 다시 ‘변화’로 어렵게 되었습니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관광 사업도 성장하고,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는 관광 사업도 함께 굳어버리는구조가 관광을 어렵게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바라보는 입장도 통일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은 ‘관광’을 속히 재개되어야 할 과정으로 보는 반면, 안보가 우선인 사람들은 ‘관광’을 부질없는 것으로 바라 보는 차이도 관광 재개를 위한 국민적 합의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들간에 온도차이는 관광사업을 계속 진행하는데 혼란을 가져왔지만 ‘국민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서 관광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통일의 첫걸음을 걷는 것이 될 수 있기에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사건 보도화면
이러한 사실은 많은 전문가들이나 언론은 북한이 관광정책을 변화하더라도 큰 성과를 얻을 수 없을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시대를 역행하는 저자세를 취할지라도 외국인투자법 제정, 7·1경제 개선조치, 중앙은행법 제정, 상업은행법 제정과 같은 변화를 지속적으로 취한다는 점은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2006년 1월 제정된 ‘상업은행법’은 사회주의 국가의 특징인 중앙은행에 의한 단일금융시스템에서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했다는 사실은 관광정책 뿐만 아니라 북한 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과거 베트남의 탈사회주의 과정에서도 중앙은행 중심의 단일금융시스템을 은행제도 개혁을 통해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베트남의 은행제도 개혁은 외국인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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