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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우리의 역사, 고구려 유적을 찾아 남포로 떠나자

지난번에는 평양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에 대해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번에는 남포시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남포는 주황색으로 표시된 곳으로 평안남도 남서부의 대동강 하구에 있는 시입니다

남포 지도를 보시면 동쪽은 대동강을 경계로 평양직할시 낙랑구역·강남군과 황해북도 송림시, 서쪽은 평안남도 온천군, 남쪽은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황해남도 은천군, 북쪽은 평양직할시 만경대구역과 평안남도 대동군·증산군과 접하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 http://chang256.new21.net/)


남포시의 역사 유물적 특징으로는, 고분과 벽화와 같은 유적지와 유물들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지난번 평양시에서의 고구려의 유적이 성곽들을 찾아 봤다면, 남포시에서는 고분이나 벽화와 같은 유적지을들 찾아보겠습니다.!

現 남포시의 특징으로는 강서구역의 강선에는 북한 굴지의 제강·제철공장인 천리마제강소와 4·13제철소가 있으며, 항구구역에는 남포제련소가 있어 황산·과린산석회와 같은 화학제품까지 생산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계공업은 농기계·전기기계공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강서구역의 기양농기계공장에서는 연간 약 3만 대의 트랙터를 제작하고 있고, 대안구역의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는 북한 최대의 대상설비전문 생산공장으로 전동기·변압기·화력발전기·수력발전기·금속 및 건재공장설비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남포조선소에서는 3천 톤급 이상의 어선과 1만 톤급 이상의 항해선박을 건조하고 있고, 남포통신기계공장에서는 라디오·TV를 비롯한 각종 통신기계와 전기기구를 생산하고 있으며, 북한 최대의 남포유리공장에서는 판유리·화학유리·광학유리·압연유리 등의 각종 유리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현재 남포에 대한 소소한 배경 지식이었구요!
그러면 지금부터 남포시에 살아 숨쉬는 고구려 유적지를 찾아 떠나볼까요?


첫번째로 떠나볼 곳은 황룡산성 입니다.
(벽화나 묘만 있을줄 아셨겠지만, 산성도 있답니다!!)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sycjs/20006693888)


황룡산성은,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37호입니다. 남포와 용강 일대에서 가장 높고 험한 산인 오석산(566m)을 주봉우리로 하여 골짜기를 감싸고 8개의 봉우리와 능선을 연결하여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총 길이가 6620m입니다. 이곳에서는 황해와 온천평야 및 증산평야가 서북쪽으로 한눈에 보이고, 동쪽으로는 산지가 이어져서 황해에서 평양에 이르는 교통의 요충지를 제어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옛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고구려의 평양성을 방어하는 서쪽 방어망의 주요한 거점으로 축성되어서 고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숙종이 국방을 강화하기 위하여 개성의 대흥산성과 함께 황룡산성을 다시 쌓았을 만큼  지속적으로 중요시되었던 대표적인 산성 입니다.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sycjs/20006693888)


고지도를 보면 가공되지 않은 옛 물줄기와 산 줄기를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옛 선조들은 지금의 우리처럼 땅을 깍거나 산을 깍아서 집을 짓지 않고, 자연의 순리와 이치에 따라 그에 걸 맞는 건축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한국 건축과 자연을 지배하려는 서양 건축의 차이입니다.
 
황룡 산성에서도 자연에 순응하는 한국 건축에 대한 선조들의 지혜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성벽은 지반을 깍거나 가공한 것이 아닌 산의 능선에 따라 축조되었으며, 오석봉처럼 험한 봉우리나 절벽이 많은 곳에서는 절벽을 그대로 성벽으로 삼았습니다. 옥도벌판에 잇닿은 남쪽 계곡과 북쪽의 완만한 기슭은 내외협축(內外夾築 :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 등을 쌓는 것)하였는데, 고구려 성벽축조의 특징대로 굽도리기단을 두고 성돌을 조금씩 물려서 계단식으로 쌓거나 전반적으로 경사를 이루게 쌓았습니다.[성벽의 높이 10∼11m, 아랫너비 6∼8m, 윗너비 3.5∼4.5m이다.]
 
성문은 사방에 하나씩 마련하고, 남문 부근에는 성안의 계곡물이 배수되는 수구문이 있습니다. 사방의 봉우리마다 장대(將臺 : 城·堡·屯·戍 등의 동서에 쌓아올린 장수의 지휘대) 터가 있으며, 북장대인 오석봉에는 봉화대터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 황룡산성은 조선시대에도 사용된 산성인데요, 조선시대 후기에는 여장(女墻 : 성가퀴, 성위에 활 또는 조총을 쏘는 구멍이나 사이를 띄워 쌓은 작은 성벽) 2,887타(垛)와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친 성문을 방어하는 작은 성) 3곳, 곡성(曲城) 4곳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연못 3곳과 대창(大倉)·함종창(咸從倉)·삼화창(三和倉) 등의 창고가 있었습니다.
 
성안에는 안국사(安國寺)와 내원암(內院菴)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주장대(主將臺)에 황룡사가 있었고, 기자(箕子)의 초상을 봉안한 기성영전(箕聖影殿)이 새로 마련되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을 지키는 군비(軍備)는 별장을 비롯한 장교급 35인과 군인 2,000명 이상이 항시 근무하였다고 합니다.


두번째로 떠나볼 곳은 강서 약수리 벽화 고분 입니다.



북한에도 세계문화유네스코에 지정된 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맞습니다.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 29호 강서 약수리 벽화 고분이,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약수리 벽화 고분은 태성저수지 서북단의 구릉 위에 있고, 인물풍속 및 사신을 그린 감이 있는 무덤입니다. 무덤의 방향은 서쪽으로 치우친 남향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무덤칸은 언덕을 깎아내고 돌로 반지하에 축조하였는데 안길, 앞칸, 앞칸 동서의 감 (곁칸), 사잇길, 안칸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천장들의 형식은 궁륭삼각고임식입니다. 앞칸 서북벽과 잇닿은 바닥에는 제단이 있고, 안칸 서벽과 북벽의 일부와 잇닿은 바닥에는 관대가 있습니다. 무덤칸 안에는 모두 회미장을 하였고 안길 밖으로는 경사진 통로, 즉 바깥길을 내고 회바닥을 하였으며, 안길 입구와 앞칸과 사잇길 입구에는 각각 문을 달았습니다. [안길은 길이 1.4m, 안쪽 너비 1.1m, 안쪽 높이 1.48m이고, 앞칸은 남북 길이 2.66m, 동서 너비 2.84m, 높이 3.22m이며, 안칸은 남북 길이 3.42m, 동서 너비 3.12m, 높이 3.5m]


(사진출처 : http://chang256.new21.net/)


악수리 벽화 고분이 유명한 이유는, 이름에도 들어있듯 벽화 때문이겠죠? 약수리 벽화무덤의 다양하고 풍부한 벽화 내용과 무덤칸의 짜임새는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에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특히 위의 사냥그림은 이미 알려진 고구려 사냥그림들 가운데서 규모가 제일 클 뿐 아니라 해마다 삼월삼지날 평양 낙랑 언덕에서 진행한 국가적인 사냥경기의 한 장면을 그대로 보는 듯한 매우 의의 있는 역사기록화입니다. 
 
이와 같이 약수리 벽화무덤은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고구려 벽화무덤의 변천과정을 밝히는 데에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만나볼 곳은 수산리 벽화고분 입니다.


수산리 벽화고분은 수산리에서 서남방향으로 약 4㎞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고정산에서 남으로 길게 뻗어내린 산줄기가 끝나는 언덕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분의 외형은 방대형이며, 묘실의 구조는 네모난 널방과 널방 남벽 중앙에 달린 널길로 된 외방무덤입니다. 네 벽은 납작한 화강암 판석으로 2m 높이까지는 직선이지만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내경되었습니다. 천장가구는 3단의 평행 굄 위에 2단의 모줄임을 하고 가운데에 덮개돌을 덮었습니다.

(사진 출처 : http://enjoyjap.egloos.com/1726954)


널방의 남벽의 서쪽과 동쪽에는 주인공이 검은 모자를 쓰고 누런 겉옷을 입고 시종이 든 꽃양산을 받으며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네번째로 찾아볼 곳은 덕흥리 벽화무덤 입니다.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156호로 지정된 덕흥리 벽화무덤 또한 2004년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덕흥리 벽화 무덤은 고구려의 대신급 인물이었던 '진(鎭)'의 무덤으로, 무학산 서쪽 옥녀봉의 남단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408년(광개토대왕 17)에 축조되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무덤의 서측 투시도 입니다.
 
무덤은 묘도(무덤길), 전실(앞방), 현실(안방), 연도(무덤안길)로 이루어진 2칸 무덤입니다. 전실은 길이 2.97m, 너비 2.02m, 높이 2.85m이다. 현실은 길이 3.28m, 너비 3.28m, 높이 2.9m이고, 연도는 길이 1.54m, 너비 1.02m, 높이 1.43m이며, 관대는 길이 2.51m, 너비 2.0m, 높이 0.21m입니다. 전실과 현실의 천정은 궁륭평행고임식입니다.


안칸에는 진의 생활 모습을 그렸는데, 특히 서쪽 벽의 활쏘기 그림은 인물들의 표정과 동작이 생생하고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안칸 북벽에는 큰 집에 앉은 남자와 시종들이 그려져 있고, 또 다른 벽들에는 각종 말과 여물을 써는 아이들, 수레와 건물들, 연꽃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밖에 부부의 나들이 장면, 고구려 전통의상을 입은 두 여인의 모습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덕흥리 벽화무덤은, 무덤의 주인공과 축조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무덤으로, 많은 벽화와 그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고구려 문화와 풍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적입니다.

지금까지 남포시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와 유물에 대해 살펴 보았는데요.
 
우리의 역사를 지키는 일은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신라의 역사를 느끼기 위해 경주에 가듯, 백제의 역사를 느끼기 위해 부여와 공주에 가듯 고구려의 역사를 느끼기 위해 북쪽으로 다가갈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역사를 지키는 일은 소홀히 해서는 안되며, 우리가 지속적으로 신경 써야할 일 입니다.


<내용 참고>
네이버 백과사전

<이외의 사진출처>
대한민국과 세계문화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