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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20주년, 그 의미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20주년, 그 의미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2년 1월 20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체결되었습니다.

남과 북은 1991년 12월 31일 판문점에서 핵관련 제3차 대표접촉과, 6차례의 정회끝에 공동선언문 내용을 합의하였고, 이듬해인 1992년 1월 20일에 채택했습니다. 


이후 내부절차를 거쳐 1992년 2월 19일 회담합의서와 함께 발효됐습니다. 선언문에는 양측은 남측이 주장했던 "국제원자력기구 핵관련 절차 이행명시" 조항과 "북측의 핵공격 가상 군사훈련금지" 조항을 모두 제외시켰다고 합니다.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남과 북은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우리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

2.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3. 남과 북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4.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하여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한다.

5. 남과 북은 이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공동선언이 발효된 후 1개월 안에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

6. 이 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1992년 1월 20일

남북고위급회담 남측대표단 수석대표 대한민국 국무총리 정원식

북남고위급회담 북측대표단 단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 연형묵


모두 총 6개항으로 이루어진 이 선언은 개항으로 이뤄진 이 선언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사용 등에 대한 일체 금지(1항)를 명시하였고, 핵에너지의 평화적 사용(2항), 핵 재처리에 관한 시설을 비롯 우라늄농축 시설 보유 금지(3항)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를 통한 상호 사찰(4항)과 발효 후 1개월간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 운영(5항)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1년 후 북한은 한미 합동 팀스피리트 훈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강행에 강력히 반발하며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할 것을 선언함으로써 이 비핵화 공동선언은 그 의미를 사실상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북한 핵문제는 한반도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고, "서울 불바다" 발언 등이 기폭이 되어 곧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을 방불케 했습니다. 


1994년 10월 카터의 방북으로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가로 한국, 미국, 일본은 북한에 경수로 원전 2기를 제공할 것을 약속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핵문제 협력에 대한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북미 합의 또한 북한 핵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못했습니다. 이후에도 위기 국면은 지속되었는데요.

2002년 12월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하고 2003년 1월 10일에 다시 한 번 NPT 탈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북핵문제는 코리안 리스크를 키우는 최대 위험요소로 떠올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 참가하는 6자회담이 열립니다.

대한민국은 자국 영토 내에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1992년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핵무기를 접수 또는 배비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하였다. 

1992년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은 준수, 이행되어야 한다. 

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2005.9.19, 베이징) 2항 中


그 중에서도 2005년 9월의 9.19 공동성명에서는, 1992년 1월 20일 채택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대한 준수와 이행이 명시되어 이 선언에 대해 다시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중국 언론에서도 일제히 한반도 비핵화선언의 유효성을 재확인했다고 보도했고, 남쪽에서도 인정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시선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반복되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핵문제 해결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2005년 이후로 6자회담은 기약없이 중단되게 됩니다.


'한반도 비핵화'의 문제를 단순히 북한 핵문제로만 한정시켜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의 평화와 관련지어 폭넓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는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흐름의 첫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 이는 정전협정으로 맺어진 관계를 평화체제로 바꾸어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은 또한 남북을 비롯해 관련국의 협력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따라서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남북정상선언과 더불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같은 등 남북간 기존 합의를 존중해야 하고, 북미 공동꼬뮤니케, 북일정상선언, 9.19 공동성명, 2.13 합의, 10.3 합의 등 관련국과의 합의를 이행하는 것 또한 필수적입니다.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우리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선언한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서문, 1992년 1월 20일.


1992년 1월 20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오늘날의 한반도 비핵화 현실과 남북관계를 돌아보면 실망스러운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동안 이루어 온 각종 합의가 무색할 정도로 합의문에 대한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회담의 성과는 장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 비핵화 선언 20년 후, 우리에게 남겨진 교훈은 다음과 같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3불 현상'이란 우리가 남북 대화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타파해야 할 3가지 현상을 말합니다.


1不 불확실성

정권에 따라 남북대화는 단절되기도 하고,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대화의 지속성에 대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2不 불일치

합의문 사항의 불일치, 해석의 다름은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회담에서 합의를 하고 나면 합의문을 검토하고 나서 남과 북의 합의문은 서로 다른 형식으로 발표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남측에서 '~를 합의하였다'라고 발표하면, 북측에서는 '~을 군부에 건의하기로 하였다'라고 쓰는 등 상당한 차이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또한 2000년 남북정상회담 6.15공동성명 제2항에 대한 해석이 다분한 것도 불일치의 예로 볼 수 있습니다.


3不 불이행


장관급 회담을 통하여 상당히 많은 것을 합의해왔지만 매번 합의문 발표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합의한 사항만 다 지켰다면 지금쯤 남북 통일은 매우 앞당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회담의 성과를 논하고자 한다면, 합의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는 문제를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이상으로, 상생기자단의  최수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