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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쫑알쫑알 수다방

[북한 권력 집중탐구⑤]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자 김정은의 삼촌인 장성택, 그는 누구인가?

 

모두가 그를 주목했다. 김정일 사망이후 전 세계의 언론은 어린 김정은의 뒤에서 수렴청정을 펴갈 진짜 권력으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장성택을 꼽았다. 갑작스러운 김정일의 죽음으로 아직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어린 김정은이 고모부의 손아귀에 놀아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대장군복을 입은 장성택


김정일 장의기간을 거치면서 그런 추측들은 기정사실화 되어가는 듯했다. 김정일 장의기간 중 김정일의 시신을 참배하는 모습이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영되었는데 장성택이 대장군복(별 4개)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성택은 당 행정부장이자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군과 당의 행정만 담당하고 있고 군에서는 실질적인 계급이 없던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런 그가 대장계급을 단 군복을 입고 등장하자 전 세계의 언론들은 사후 권력 공백을 막으려고 내부적으로 장성택에게 대장칭호를 준 것이 아니냐며 앞으로 당과 군까지 장악한 장성택이야 말로 북한을 이끌어갈 진짜 권력자라고 말했다. 장성택의 ‘수양대군식’ 권력 장악 과정이란 것이다.

이와 관련 김연수 국방대 교수는 데일리NK와 통화에서 "장성택은 김정일 생전에는 철저하게 김정은 유일적 지도체계를 유지하는 보조적 위치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장성택이 자기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그런 위치로 부상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은이 고모부의 손아귀에 놀아날지 안놀아야할지는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장성택이 김정은과 북한의 미래를 가늠하는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하는데는 여지가 없다.

장성택은 북한에서 신(김정일)의 신(아버지)라 불리우는 김일성의 사위이자 신(김정일)의 매제이다. 김정일이 죽기직전 그가 맡았던 직책으로는 국방위에서는 김정일 다음가는 부위원장이었고 당에서는 당의 행정을 총괄하는 당행정부장이었다. 김정일이 죽기전에 김정은의 사후를 맡겼다면 장성택이었을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할 만한 혈연이자 직책이다.

장성택은 1946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장성택은 국가 엘리트 양성기관인 김일성종합대학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모스크바에서 유학을 했다. 장성택은 유학시절 김일성의 딸인 김경희를 만나 사랑에 뻐졌다. 군 출신 사위를 원했던 김일성은 이들의 교제를 처음엔 반대했으나 장성택과 친했던 김정일의 중재와 김경희의 변치 않는 고집으로 김일성은 마침내 이들의 결혼을 승낙했다고 한다.

▲장성택


이후 장성택은 당의 조직지도원으로 활동하면서 김정일의 3대 소조운동을 일선에서 지휘했고 당시 북한 외화벌이의 중요한 축이었던 마약밀수를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이를 토대로 정일의 신임을 얻으면서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오르는 등(2002년) 출세가도를 달렸다. 

장성택은 그의 개혁, 개방 성향으로 인해 남한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혹자는 그의 개혁, 개방 성향을 두고 "장성택이 권력을 잡으면 북한이 개방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통일이 앞당겨 질 것이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남한과 북한 사이 화해무드가 돌던 김대중 정부시절 북한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8박 9일간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남한의 경제발전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그가 신의주 행정특구와 관련해 우리 정부에 특구 책임자로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을 보내달라는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개혁개방 성향 덕분인지 승승장구 출세가도를 달렸던 그는 '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로 2004년 실각을 당한다. 이후, 그는 관영매체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정동영 의원은 “2005년 평양에 갔을 때 장성택의 안부를 묻자 김정일은 ‘남쪽에 가서 폭탄주도 배우고 해서, 아파서 쉬게 했다’며 웃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은, 김경희, 장성택


그러나 숙청됐다고 알려진 장성택이 2006년 갑자기 다시 북한 전면에 등장했다. 2년간 지방에 유배돼 이른바 ‘혁명화’ 과정을 거쳤다고 알려진 그는 2006년에 화려한 복귀를 하며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등의 요직을 꿰찼다. 2006년 그의 복권엔 김정일의 동생인 김경희와 좋지못한 김정일의 건강이 얽혀있었다. 자신이 죽은 뒤 그래도 자신의 아들을 돌봐줄 것은 혈육인 김경희밖에 없는데 그럴려면 장성택을 복권시켜 어린 아들의 후견인으로 삼고 싶었던 것이다.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김정일의 병상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인물도 아들들을 제외하면 김정일의 주치의와 김경희, 김옥 그리고 장성택 네 사람 정도였다고 한다. 


장성택이 김정은의 수양대군으로서 북한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미지수다. 과거의 보도와는 달리 현재는 김정은 영도체제가 성공적으로 완료 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의 러시아어 가정교사로서 장성택과 함께 일했던 적이 있다는 탈북교수 김현수 교수는 "집단지도체제? 북한 물정 모르고 하는 소리다. 김정은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하려고 할 거다. 뒤에서 다 의견 나누고 장성택이 마지막에 김정은한테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좋지요’ 하면서 올릴 거라는 말이다. 또 군부에서 어떻게 한다? 그것 역시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장성택이 김정은을 다 커버해줄 거다. 내가 1975년부터 장성택과 일했는데 통이 크고 미래지향적이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걸 김정은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면서 김정은이 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김정일이 죽었다고 해서 북한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다 모르고 하는 소리다.”고 말했다. 

그가 권력을 쥘 수 있든 없든 그것과 상관없이 변치 않는 사실은 장성택이 권력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는 태풍의 눈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에서는 보기 드문 개혁, 개방 성향을 가진 장성택으로 인해 굳게닫힌 평양성의 문이 열리게 되길 기원하며 이번 칼럼을 마친다. 


참고문헌 
연합뉴스
위키백과 '장성택' 항목
대장계급장 단 장성택 등장의 의미는, 연합뉴스
장성택 中방문 때 北개방 검토… 내부 규율붕괴 우려해 포기”, 서울신문
[北 김정은 시대]“北이 집단지도체제? 장성택이 김정은 다 커버해줄 거야”, 동아일보


 
상생기자단 4기 최영훈 기자
(justine127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