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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조국에 버려진 북한 벌목공의 사연

 

 

 

민족 대명절 추석을 맞이해 나에게는 어느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보게 된 2008년 tvN에서 방송된 탈북자 인권실태보고라는 5부작 다큐멘터리를 보게됐다. 지난번에 본 <유령이 된 아이들>편에 이어 <조국이 버린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느낀 소감을 말하고자 한다.

 

 

어째서 부제가 "조국이 버린 사람들"이었을까?

 

국민이 국가를 버리고 새로운 나라로 망명하는 경우는 있어왔지만, 나라가 먼저 국민을 버리는 일은 결코 없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이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국에게 버려진 이들은 다름아닌 러시아로 파견됐던 북한 벌목공이었다.

지금은 탈북자라고 불리고 있지만 말이다.

 

1967년, 러시아와 북한간에 체결된 "임업협정"으로  벌목공 3,500명을 파견하게 됐다. 이들 파견 벌목공들은 실적에 따라 북한 월평균 소득보다 높은 300~800원(한화 1500~4000원)을 돈표로 받으면서 일했다. 그 결과 러시아로 파견된 북한 벌목공들은 북한에서보다 100배 이상의 소득을 얻는 것으로 알려졌었다.90년대 들어서는 벌목공 파견으로 약 1억달러가 넘는 외화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실제 현실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탈북자 한만수(가명)씨를 통해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려왔다. 그는 15년 동안 러시아에서 '탈북자'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벌목공이었다. 한만수 씨는 러시아로 파견나오기 위해서 전 재산을 털어 간부에게 주고 겨우 파견 벌목공이 됐다. 돈을 더 많이 벌어 가족을 먹여살리겠다는 일념하에 러시아로 왔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는 벌목공으로 일한 임금을 받을수가 없었다. 돈을 달라고 했지만, 계속 돈을 주는 날짜를 미루면서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을 수 없게 된 한만수씨는 러시아 땅 북한 임업사업소를 도망쳐 나왔다.

 

 

그가 탈북했던 이유는 물론 임금을 받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죽어나가는 동료 벌목공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당한 노동의 댓가도 받을 수 없었을 뿐더러 안전환경까지 확보가 되있지 않아 한씨는 탈북을 감행했다고 고백했다.

 

 

한만수(가명)씨는 현재 그와 같이 북한 벌목공으로 일하다 탈북자가 된 동료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들 역시 한만수 씨와 같은 처지였다. 임금을 제 때 받을 수 없었고, 설령 받더라도 돈이 아닌 '돈표'를 받기 때문이었다.

 

돈과 돈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알고보니 돈표는 북한에 있는 상점에 가서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는 표였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그 돈표를 이용할 수 있는 상점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한 씨가 말했던 것 처럼 그도 임금을 받지 못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노동의 댓가를 기대하며 고향을 떠나왔지만, 북한 땅에서 일하는 것과 별반 다를것이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1인체제 아래에서 오로지 그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일 뿐이었다.

 

 

제작진은 현재 북한 벌목사업의 실태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한만수씨에게 직접 틴다지역에 있는 북한의 임업연합으로 안내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한 씨 또한 탈출한 지 약 10여년이 됐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만수(가명)씨가 잡히면 그는 다시 북송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만수씨는 용기있는 사람이었다.

현재 북한 벌목사업의 실상을 외부세계에 꼭 알리고 싶다고 했다.

 

틴다지역으로 향하는 길. 틴다지역으로 향할수록 한 씨는 점점 밀려오는 긴장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씨는 틴다지역이 아닌 그 전역인 스코보로지노 역에서 내리자고 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틴다지역은 북한 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보안원들이 항상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들어왔다는 것이 노출되면 안된다고 말했다. 알게 되면 소리가 울리며 틴다 지역 바깥을 나갈 수 있는 문이 봉쇄가 된다는 것이다. 제작진의 안전을 염려한 한 씨의 의견대로 제작진은 스코보로지노에서 내렸다.

 

 

스코보로지노를 거쳐 도착한 곳은 러시아 므르뜨낏 16사업소! 바로 북한 벌목공들이 일하고 있는 곳이다. 그 사업소는 북한의 축소판과 다름 없었다. 김일성 전 주석의 초상화가 걸려져 있었고, 북한 사람들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밤이 되어 러시아 므르뜨낏 16사업소로 들어갔다. 곳곳에선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등 북한의 전형적인 선전문구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북한 벌목공들이 거주한다는 주거환경은 생각했었던 것보다 훨씬 허름하고 환경도 좋지 않았다. 각각 한 칸당 8~9명이 숙박한고 있다는 그 공간은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자기에는 너무나 좁아보였다.

 

 

제작진은 더 나아가 간부들이 머무는 사업소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러시아인을 내세워 디지털카메라를 팔러온 인근 마을 사람으로 위장해서 들어갔다. 보이는 곳은 간부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거기에서도 역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은 쉽게 볼 수 있었다.

 

북한 노동자들에게 노동을 착취하고 외화를 빼앗아가도 그 상태 그대로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한 체제와 감시는 러시아 땅에서도 피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 이 체제아래에서 북한의 벌목공들은 서서히 지쳐갔고 결국 벌목공들의 탈북이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벌목공들이 탈북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은 바로 이 곳 여기에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북한을 떠나려던 것이 아니었다.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이 곳의 현실에 지쳐갔고, 나라가 무언가를 더 이상 해줄 수 없다는 상실감에 탈북을 감행했다. 어쩌면 그들은 그렇기에 스스로 버린 것이 아니라 조국으로부터 버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긴장감이 어렸던 북한 벌목사업소를 다녀온 후 몇 개월이 지나 다시 한만수씨를 만났다. 한만수 씨는 러시아에서 난민으로 인정돼 미국으로 망명을 신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비자신청이 이루어진 상태다. 그에게 미국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한국에 가서 같은 민족한테 눈에 나 살거면

차라리 다른 민족에게 천대받고 사는 게 낫죠."라고..

 

 

그의 말에서 나는 그가 같은 민족인 남한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꿈만 같았던 미국행 앞에서, 한 가지 사실이 또 그를 슬프게 했다. 북한에 있는 아내가 탈북을 하지 않고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한 씨는 우선 북한에 있는 아내를 구하고 나중에 아이들을 구해  함께 미국으로 망명을 가려고 준비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들이 걱정돼 이내 중국과 북한 사이에 흐르는 강물 앞에서 떠나기를 주저했다.

 

그는 슬픈 작별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향한다. 한 씨는 고향 땅 북녘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과 기약 없는 이별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한 씨에게 밝은 내일이 올 것임을 확신한다. 그는 절대로 아내와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의 새로운 미래에 험난함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출처>

북한 벌목공 사진 :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375&logId=4608896

tvN : http://www.chtv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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