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가는 세 번의 전환점 ① 7.4 남북 공동 성명 

차기 정부는 어떠한 방식으로 통일을 준비하려 할까요? 한국전쟁 이후 남북통일을 위한 정책은 정권과 시기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오늘은 지금까지의 남북 합의 중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여겨지는 세 가지 사건 「7.4 남북 공동 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 선언」 의 선례를 통해 통일로 가는 올바른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그중 첫 번째로 7.4 남북 공동 성명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배경>

1969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새로운 대아시아 외교정책을 천명합니다. 이른바 '닉슨 독트린'이라 불리는 이 선언은 아시아 지역에서 핵무기 사용을 제외한 전쟁 또는 내란이 발생할 경우 방위의 일차적인 책임은 당사국에 있다는 내용으로 이는 미국의 소극적 개입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정책 기조에 따라, 1970년대 초 테탕트(detente, 프랑스어로 '긴장 완화'라는 뜻) 분위기가 감돌고 이후 1972년에는 미국 대통령과 중공 수상이 상하이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한반도 긴장 완화, 교류증진의 노력을 지지하는 것과 중공의 북한에 대한 평화통일 8개항 방안을 주 내용으로 함을 선언합니다. 이에 따라 남북은 세계적인 추세를 무시할 수 없게 되고 남북 대화를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1972년 중공을 방문 마오쩌둥을 만난 닉슨 대통령http://m.blog.daum.net/pzkpfw3485/2242588?categoryId=315102

 

닉슨 독트린에 따른 주한 미군의 단계적인 축소로 인해 박정희 정부는 자주국방 강화 정책을 펼쳤고,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북한과 대등해진 상황이었습니다. 이 또한 남한의 대북 교섭 시도에 자신감을 가지는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내용>

1971년 대한적십자사는 북한에 대해 남북 이산가족 찾기 회담을 제의합니다. 북한적십자사도 이에 동의 하여 남북대화의 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러한 계기는 정치 회담의 성사로 이어져 1972년에는 남한의 중앙 정보부장 이후락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면담하고, 북한에서는 부주석 방성철이 남한을 방문하여 박정희 대통령과 비밀 회담을 가졌습니다. 비밀접촉 끝에 1972년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7.4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합니다.

쌍방은 다음과 같은 조국통일 원칙을 합의하였다.

  •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
  •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남북공동성명서. 직책이 표시되지 않은 채 이후락, 김영주라고 서명돼있다. << 연합뉴스 DB >> 2009.10.31 photo@yna.co.kr


이외에도 세부적으로 상호 비방 중단, 군사충돌 방지, 남북 교류 실시, 남북적십자회담 개최, 서울과 평양 상설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에도 합의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공동성명발표에 일부 야당은 반발했지만 국민들은 놀라워하는 한편 통일에 기대에 한껏 들떠있었습니다. 당장이라도 통일이 되어 남북을 오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달리 그해 10월 남한에서는 유신 헌법이 12월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헌법이 제정되어 남북한 모두 독재체제가 강화됩니다. 유신헌법의 핵심인 대통령 간접 선출을 담당하는 조직체의 이름을 통일 주체 국민 회의 라고 명명한 것을 보더라도 당시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명분으로 7.4남북공동성명이 악용된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후 남북한의 유엔 가입의 입장차를 두고 협상이 결렬, 대화가 중단되기에 이릅니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제로 당선되는 박정희 대통령

<한계와 의의>

대화의 계기가 남북의 순수한 통일의지 보다는 당시의 국제관계 속에 이루어 진점, 결과적으로 남북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하였다는 점에서 7.4남북공동성명은 분명한 한계를 지닙니다. 그러나 국가원수의 대리인들이 서로 공식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남북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였고 한국 전쟁 이후 사상 첫 남북합의를 이끌어 냈습니다. 또한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이라는 원칙은 이후 남북관계를 만들어가는 대원칙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한국사 통론/변태섭

-나의 한국현대사/유시민

-7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위키백과 7.4남북 공동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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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혜연 2017.05.16 12:47 신고 댓글주소 | 수정/삭제 | 댓글

    이걸 최순실 정유라모녀가 다 말아먹었지~!!!! 뭘더 바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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