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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핵무장의 북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핵무장의 북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전쟁지원이 아닌 중국의 선물-


'김일성(우측에서 두번째)과 마오쩌둥(최우측)', 출처: 구글, '김일성 마오쩌둥'


안녕하세요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노도희입니다! 요즘 한반도 정세가 매우 급격하게 흘러가고 있는데요, 그 정세의 중심에는 북한의 핵문제가 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정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든 나라들이 북한의 핵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문제는, 오늘날의 북한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물론 휴전상태인 상황에서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위일 수 있지만, 모든 행동에는 구체적인 그 원인과 동기가 있기마련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원인과 동기에 대한 의견이 각각의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70년대에 중국이 북한에게 준 선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미군들', 출처: 구글, '베트남 전쟁'


시간은 1975년으로 거슬러갑니다. 당시 인도차이나반도에서의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떠나 베트남이 적화통일되어가고 있었고, 그 주변국들의 정치적 상황도 급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냉전체제가 불식하던 도중에 다시 냉전체제의 긴장감이 고조되며 국제적인 정세의 변화 등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일성은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준다면 남조선을 밀어내버리겠다는 의지를 갖고 비밀리에 중국의 마오쩌둥과 접촉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마오쩌둥이 거절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일성은 왜 그 시기에 한반도를 다시 적화통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캄보디아의 공산화 과정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공산화는 중국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는데, 북한 역시 본인들도 중국의 지원을 받아 남조선을 적화통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두번째로 냉전체제의 재가열입니다.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에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냉전체제 완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에 미국과 소련의 반목이 재발하였고, 중국 역시 문화대혁명을 진행하면서 미국에 대해 끊임 없이 비판했습니다. . 이런 국제적인 정세의 변화를 북한의 김일성은 본인들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중국, 소련이 북한을 도와줄 수 있는 호기의 상황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캄보디아 내전에서 반군이 캄보디아 수도 프놈 펜을 점령한 모습', 출처: 구글, '캄보디아 내전'


하지만 중국은 김일성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캄보디아를 도운 중국의 이유는 단순히 공산화문제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이 지원하던 캄보디아 반군은 베트남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중국 역시 베트남과 국경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러한 베트남이 중국과 사이가 좋지않았던 소련과 친하게 지내자 중국 입장에서는 베트남이 여러모로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캄보디아 반군을 지원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국제 냉전분위기로 다시 회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더라도 중국은 미국과 전쟁을 할 생각이 전혀없었습니다. 당시의 마오쩌둥은 한국전쟁 당시 20년전의 마오쩌둥과는 달랐습니다. 2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건강 역시 그 시절만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굳이 캄보디아처럼 얽히고 섥힌 이익관계가 없는 북한, 즉 단순히 김일성만의 문제를 위해서 싸운다는 것은 마오쩌둥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얻어내지 못하고, 제 2차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중국은 북한에게 송유관건설을 선물해주었습니다. 마오는 김일성에게 '석유와 원자탄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든 큰 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하였고, 김일성은 마오의 말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은 이 사건으로 깨달았습니다. 다른 나라에게 의존하여 전쟁을 한다는 것은 이제 어림없는 일이고, 나 자신을 위한 '총'을 항상 갖고 있어야 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총'이 바로 핵인 것입니다. 당시 오일쇼크 등으로 원유가격이 불안정하 시기에 북한은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안정적인 핵실험 준비를 해올 수 있었습니다.


'김정은', 출처: 구글, '김정은'


그리고 2017년 오늘날 북한이 수차례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을 통해서 마오의 말대로 국제사회에서 '큰 소리'를 내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는 항상 북한이 있었습니다. 마오의 선물, 그리고 마오의 조언. 당시의 마오쩌둥은 이러한 미래를 예견하고 그 선물을 주었을까요? 아니면 이러한 미래를 바라면서 선물을 주었을까요?

지금까지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노도희였습니다.


 

자료 출처

1. 북한에 준 선물, ‘시진핑의 골칫거리’가 될 줄이야... [중앙일보, 국제], http://news.joins.com/article/21454726?cloc=joongang%7Csns%7Cf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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