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9기 통일부대학생기자단의 박근영입니다.

지난 3월, 저희 기자단원들 중 7명은 '느영나영제주'팀을 구성하여 제주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임기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떠난 터라, 모두가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제주도에 도착한 첫째 날, 저희는 섯알오름과 알뜨르비행장을 방문하였는데요.

그 곳들은 과연 어떤 곳인지 아래에서 사진들과 함께 확인해주세요.

 

 

 

'섯알오름 4.3유적지'라는 파란색 표지판이 선명하게 반기는 이 곳은

섯알오름과 알뜨르비행장이 위치한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입니다.

저희 기자단원들은 이 곳을 늦은 오후에 방문하였는데요.

일교차가 컸던 터라 약간의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름도 아름다운 섯알오름과 알뜨르비행장은 사실 제주의 비극적인 역사를 품고 있는 곳입니다.

알뜨르비행장을 자세히 둘러보기 전, 저희는 우선 섯알오름으로 향하였는데요.

섯알오름은 제주도의 송악산 북쪽의 알 오름 3개 중 서쪽에 있는 오름인데요.

동쪽에 있는 오름은 동알오름, 가운데 오름은 셋알 오름이라고 합니다.

서쪽에 있어 섯알오름이라는 점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섯알오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는 멀리서부터 한 비석이 눈에 띄였습니다.

바로 희생자추모비였습니다.

 

 

섯알오름 학살 터는 우리나라의 가장 슬픈 역사와 연관돼있는데요.

1950년에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정부는 전국에서 보도연맹원을 체포 구금하였습니다.

이 때, 이 곳 제주지구 계엄당국에서 약 820여 명의 주민들을,

 모슬포 경찰서 관내 등에서도 약 370여 명의 주민들을 검속하였다고 합니다.

이들 가운데 149명이 이 곳 상모리의 고구마 창고에 수감되었는데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20일 새벽 4시 경에는 이들이 집단적으로 학살되었고

 같은 날 새벽 2시 경에는 제주 한림지서에서 검속된 62명이 집단총살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총 211명이 이 학살터에서 사망한 것인데요.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분들을 기리는 이 추모비 앞에는 검정 고무신 네 켤레가 놓여 있었습니다.

가슴이 참으로 먹먹하였는데요.

희생자들 중에는 저보다 어린 분들도 여럿 계셨다고 하니 더 안타까웠습니다.

꽃을 피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저희 기자단원들은 비석 앞에 서서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희생자 추모비 뒤편에는 두 개의 학살터가 남아있습니다.

이 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의 무기 창고였던 곳을 해방 후 폭파한 곳에서 희생자를 학살한 터라고 합니다.

저희가 방문하였을 당시에는 인적이 드물었기 때문에 더 스산하고 정적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것은 철근이 뒤섞인 콘크리트 더미인데요.

이것들은 일제시대 무기고에 사용되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왼쪽에 보이는 백조일손묘역 유해발굴 터에선 1956년 5월 18일에 149구의 유해가 발굴되었으며

 오른쪽의 민뱅디묘역 유해발굴 터에선 1956년 3월 29일에 62구의 유해가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저희는 섯알오름 학살터에서 내려와 알뜨르비행장으로 향하였는데요.

가는 길목에서 찍은 사진은 석양과 함께 하여 더 아름답고 쓸쓸해 보입니다.

붉은 석양이 제주의 아픈 상처를 보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알뜨르 비행장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요?

 

 

저희가 방문한 이 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이 중국 대륙의 남경 폭격을 위해

 1926년부터 10년 간 건설한 알뜨르 비행장인데요.

알뜨르 비행장의 격납고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후반이던 1944년에 미군의 일본 진공에

대비한 방어계획 중 결7호 작전의 가미카제 전투기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저희 앞에 있는 격납고에는 2차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일본 전투기의 모형이 있었습니다.

이 모형은 일본의 태평양전쟁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전투기 제로센을 재현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지난 2010년, '경술국치 100년 기획 박경훈 개인전-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 출품작이라고 합니다.

 

이 모형이 들어있는 격납고 앞은 수많은 하루살이들로 인해 제대로 살펴보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제주도에는 저희가 잘 몰랐던 역사적 상처들이 참으로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과제일 것입니다.

느영나영 제주탐사 기사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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