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합에 대한 한국의 역할


아시아 연합,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문제제기 뿐만 아니라 국내적인 반성도 병행·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앞선 포스트에서 소개한 대로 동아시아의 갈등과 한반도의 분단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면, 국내적인 반성의 핵심은 국제적-국내적 분단모순의 해소, 즉 탈분단입니다. 연합 혹은 지역공동체는 단순히 국제적인 이슈가 아닙니다. 가령 동북아의 냉전적 갈등 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단체제는 국제문제인 동시에 국내문제이며, 복합국가론에서 요구되는 시민사회의 증대된 역할이란 국내적 민주화 수준에 크게 좌우됩니다.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 문제에 대해 한국에게 주어진 과제와, 한국이 이를 얼마나 잘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능력을 다음과 같이 몇 개의 분야로 파악해볼 수 있습니다.


⑴ 국가 간 냉전적 대립 해소


동아시아 지역이 냉전적 갈등 구도가 해소되지 않은 지역이라는 데엔 큰 이견이 없습니다. 동아시아의 정치·군사적 갈등은, 역내 개별 국가가 안보를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이 역내 타 국가의 더 높은 수준의 군사력 증강을 불러와 도리어 안보적 위협이 증가하는 냉전적 안보딜레마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군비경쟁이 다른 여느 지역에 비해 가장 급격하게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 군비경쟁은 지속적으로 진행됩니다. ⓒ서울신문


탈냉전 후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적 갈등은 미소 갈등에서 중미 갈등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한·미·일의 남방삼각과 북·중·러의 북방삼각이 대립하는 냉전적 질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패권주의적으로 대립하지만, 북한 문제, 대만 문제와 같이 서로의 핵심이익은 건드리지 않음으로써 아슬아슬한 경쟁적 협력 구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상당부분 냉전적 질서이며, 가령 냉전 시기 소련의 핵심 이익이었던 서유럽과의 국경문제 봉쇄와 과학기술 도입, 미국의 핵심 이익이었던 데탕트에 대해서 미소 양국은 서로에게 크게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하는 북한이 이를 심화시킵니다. 유럽은 국제냉전이 곧 유럽의 지역냉전이었으므로 탈냉전시기에 통합할 수 있었지만, 동아시아 지역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럽에는 통합 이전부터 NATO라는 안보협력체가 존재했지만, 동아시아에는 그러한 안보협력체가 없는 것도 유럽과 동아시아의 차이점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반도의 분단은 단순히 한반도적 현상이 아니며, 동아시아 냉전적 갈등 구도라는 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북한의 핵문제 또한 서구적 시각으로 정확히 분석될 수 없는 동아시아적 상황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냉전적 대립의 최전선에는 남북 분단이 있으며, 한반도 문제는 세계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최근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문제입니다. 2016년 7월 8일, 한미 양국은 종말단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한반도에 배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논란이 일단락된 것입니다. 이에 중국은 주중 한국대사와 미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한편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공언했으며, 북한은 이를 비웃듯 바로 다음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발사를 했습니다. 사드 논란은 사드가 정말로 효율적이며 필요한지를 따지기 전에, 한반도의 문제가 국제 문제와 얼마나 깊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확인시켜줍니다.


사드 배치 문제는, 사드가 필요하냐 없냐 논쟁을 차치하고서라도 동북아시아 국제관계가 얼마나 첨예한지를 증명합니다


아시아 연합을 논함에 있어 언젠가 이러한 갈등 구조가 해소되어야 함은 분명합니다. 그 과정에 분단의 당사자인 한국의 역할도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적대국가를 앞에 둔 한국은 미국 중심의 군사동맹에 의존하고자 하는 경향성을 크게 보이고 있으며, 한국에서 안보 문제는 다른 어떤 이슈보다 우선시됩니다. 40여 년에 걸친 군부독재와 남북의 무력 충돌은 이러한 경향성이 사회에 깊게 침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북한이라는 존재 자체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는 한국이 미국 중심의 군사동맹에서 쉽사리 탈퇴하는 것은 어려우며, 이는 한국의 역할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⑵ 국내적 국가주도성 해소


국내적 분단모순은 근원적으로 지나친 국가주도성에 기인합니다. 앞서 간략히 확인했듯 안보주의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사회정서는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치와 연결됩니다. 분단은 국내적으로 안보주의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제들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정서적 측면에서 안보주의를 넘어선 안보지상주의, 국민/국가주의, 레드컴플렉스, 북한에 대한 우월감, 혹은 북한에 대한 무지, 사회주의 담론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 등이 그것입니다.


제도적 측면에서의 분단모순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북한이나 통일과 관련된 담론과 정책은 전적으로 국가에 의해 기획되고 발현되며, 그 중에서도 행정부, 그 중에서도 대통령의 철학에 가장 크게 좌우됩니다. 가령 사회적 민주화를 보다 진전시키고자 노력했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조차도―남북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지를 따지기 이전에―일방적으로 대북정책을 진행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최근 개성공단 폐쇄와 관련하여 대통령의 권한이 법적 한계를 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합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대북·통일분야 뿐만 아니라 경제, 환경, 노동, 언론, 안보 등 다른 측면에서도 지적되는 문제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대북·통일 분야에서는 제왕성이 더욱 큽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법률 간 법리적 충돌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법률적 모순의 대표적 사례가 남북교류협력법, 남북관계발전법 등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한 법과 국가보안법의 충돌입니다. 그 가장 큰 사례가 국가보안법입니다. 예컨대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각주:1]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전자의 법률에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대북·통일정책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가기관에 의해 좌우되며, 다양한 대표성을 지닌 시민들은 대북·통일정책 결정 과정에서 제외됩니다. 복합국가론에서 지적하는 패권적 국가연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힘 혹은 시민단체의 힘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한국의 국가주도성은 여기에 전면적으로 배치됩니다. 이것은 한편 우리 사회에서 대북·통일문제를 둘러싼 심각한 남남갈등이 빚어지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진보와 보수로 구분되는 양 진영 중 어느쪽이 정권을 잡고 어떤 대북·통일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남남갈등은 더욱 극화됩니다. 그 과정에 다양한 의견들이 보혁의 양극으로 소환·수렴되며 소멸하는 것도 국가주도성을 강화하고 시민사회를 약화시키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의 성장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체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대답은 ‘예’입니다. 동아시아론 자체가 그 증거로, 동아시아론은 사회적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성장에 힘입어 탄생했습니다. 평화통일이라는 담론 자체도 한국 민주화의 산물이었으며,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통째로 뒤흔들었던 햇볕정책 역시 민주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한국 시민사회의 힘이란 시민사회의 성장을 꿈꾸는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강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성장, 통일, 탈분단, 아시아 연합을 자유로이 꿈꾸고 기획하고 작게나마 실천할 수 있는 이유가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성장입니다.


한국의 남남갈등은 매우 감정적이고 심각한 문제로 비화되어있습니다. 사실상 보혁의 양 극단이 서로를 포용하는 방법밖에는 해결책이 없지만, 양극을 아우르는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해보입니다. 정서적 측면의 분단모순은 넘어서기 힘든 벽이며, 북한의 존재는 보혁 양 극단을 끊임없이 벌려놓습니다.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이를 극복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⑶ 배타적 민족주의 극복


“한 마리의 요괴가 동북아시아를 배회하고 있다. 내셔널리즘이라는 요괴가.”[각주:2]


동아시아 지역의 내셔널리즘은 상당히 강고합니다. 내셔널리즘은 단편적으로 민족주의와 국민주의(내지는 국가주의)가 결합된 의식이라고 생각해본다면, 한·중·일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며, 북한 또한 한국과는 다른 차원의 북한식 민족주의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다문화사회라는 담론이 대두되고 민족·국가·인종적 배타성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는 것도 내셔널리즘의 공고성을 암암리에 시사합니다. 민족이 실재하는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전에, 상상의 공동체든 상상을 하는 공동체든, ‘XX인’이라는 자기정체성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중국대륙, 한반도, 일본열도라는 세 공간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서로 자기만의 문화를 향유하는 가운데 그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던 중 19세기 이후(일본의 경우 17세기 이후) 서구열강이 동아시아를 본격적으로 침범하면서, 이에 맞선 근대적 의미의 배타적 민족주의가 싹텄습니다. 민족주의는 동아시아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을 위한 투쟁에 효율적으로 사용되면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시켰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배타성이 극대화된 것은 일본제국의 한반도-중국대륙 침략입니다. 오늘날 EU 중심 국가들이 근대 후기에 대부분 강대국으로서 행위했던 것처럼 19세기부터 일본 제국주의가 팽창했으며, 한국과 중국은 여기에 대한 직접적 피해자였습니다. 오늘날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 있는 주민들의 민족정체성은 단순히 서구열강 혹은 일본이라는 타자적 집단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 아니라, 배타적이고 저항적인 항일(혹은 반일)의식과 뿌리부터 조응하고 있습니다.


이 때 확립된 민족주의가 지금까지 잔존하고 있으며, 점차 국민주의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의 20세기 민족주의와 21세기 민족주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한민족’이라는 민족정체성이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남한의 ‘한민족’과 북한의 ‘조선민족’은 한반도 주민을 공히 통틀어 일컫는 말이지만, 그 성격은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편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들은 스스로 조선족(혹은 한민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민족주의란 사실상 푸코가 지적한 ‘생명정치’처럼, 소위 혈통을 기준으로 한 전통적 민족의식(민족주의)이 국경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민족의식(국민주의)에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8월 15일을 둘러싼 건국절과 광복절 논란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가장 심각한 갈등 요인입니다


오늘날 민족주의적 갈등은 앞서 언급된 국제적 차원의 냉전적 갈등보다 우선되지는 않습니다. 가령 한국과 일본은 미국을 매개로 협조적인 군사·안보 관계를 맺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한류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나 역사적 문제 등 민족적 문제가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협력을 방해하는 커다란 장애물로 남아있습니다. 이것을 한미일 삼각동맹의 중심축인 미국이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간신히 봉합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내부의 사람들에게 공동체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냉전적 갈등 구조 속에서조차도 미국이 나서지 않는 부분에서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협력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부상하는 중국이 미국에 대해 패권주의적 도전을 거둘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패권이 상대적으로 약화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는 보통국가를 꿈꾸는 일본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냉전적 갈등 구조는 미중갈등이 해소된 이후에도 변태를 거듭하며 지속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적 대립은 심화될 확률이 높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냉전적 갈등 구조가 해소된 다음에, 곧장 이어서 지역 공동체를 위협할 것이 바로 어설프게 봉합된 민족주의 문제입니다.


내셔널리즘적 갈등은 역사에 대한 입장에서 극명하게 발생하는데, 공교롭게도 한중일 3국은 역사로 말미암아 내부적 공고성과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습니다. 한일 간의 위안부 문제가 가장 심각하며, 한중일을 둘러싼 역사 문제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가령 한중일 3국은 독도, 조어도(센가쿠 열도) 등의 문제에 대해 역사적인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한국이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서 이러한 문제를 조율할 수 있는 정치적·외교적 능력을 펼칠 수 있을까요? 한국 국민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남한 주민들이 북한 주민을 ‘북한사람’이라 일컫지 않고 ‘우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전망은 부정적입니다.


그럼에도 협력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한국, 중국, 일본은 동북아시아 3개국의 협력을 위해 2008년부터 한중일정상회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론은 비록 동아시아 지역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명확한 방법론을 아직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과 달리 동아시아 내부에 형성된 특수한 동학을 관찰하는 틀로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동아시아론이 동아시아를 내재적으로 분석해내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쇠퇴하고 만 것은 역설적으로 동아시아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다단한가를 시사하기도 합니다. 동아시아론은 아직까지 답을 찾아 나서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동아시아공동체 혹은 동아시아 연합이 만들어지기 힘든 상황을 스스로 밝혀내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냉전적 갈등 구조, 지역적 정체성의 부재, 위계적 상호관계가 분명한 현상이라면, 중견국으로서의 한국의 역할을 쉽사리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상적인 한국의 역할은 강대국의 경쟁 속에서 화합과 조화를 이끌어내는 연성변환자로서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제시된 것이 복합국가론, 혹은 본문에 제시되지는 않았으나 변혁적 중도주의, 시민단체 활성화론, 대안체제이론 등입니다.


동아시아론이 제시한 연성변환자로서의 한국의 역할은 본격적으로 실험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한국은 몇 차례 연성변환자적 역할을 해보고자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국민의 정부의 동북아 균형추론, 참여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 박근혜 정부의 균형외교론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모두 무수한 논란을 낳았을 뿐, 아쉽게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원인은 본 발제에서 살펴본 동아시아의 특수한 상황입니다. 국가 간 위계질서가 공고하다거나, 시민사회가 활성화되기 힘들다거나, 공동체 형성의 방법론이 모호하다거나 하는 한계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분단체제에 있습니다. 동아시아론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방법이 이미 언급된 문제에 가로막혀버리는 환원적(?) 구조에 갇혀 있습니다. 동아시아론은 스스로 지적한 동아시아적 특수성 앞에서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적 특수성은 실재합니다.


동아시아론이 제시한 공동체 형성의 방향성이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동아시아론이 포착해낸 동아시아의 특성은 최근에는 자주 언급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부정되고 있지도 않습니다. 동아시아의 특성을 해결할 방법이 학문적으로는 다루어지기 힘들 만큼 거대하고 복잡하므로, 그리고 이를 논의하기에는 학계에 던져진 다른 수많은 과제들이 있으므로 깊이 논의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반도, 중국대륙, 일본열도가 화합하는 평화적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동아시아 공동체는 지독히도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동아시아 각국은 나름의 목적을 갖고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 행위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자리 잡은 한국은 여러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적으로 자기 위치를 잡는 일, 또한 이와 긴밀하게 연관된 탈분단과 남북통일을 핵심적 해결 과제로 안고 있습니다. 비록 오늘날 동아시아가 평화적 지역공동체를 꿈꾸기에 적합하지 않더라도, 한국이 그 가운데서 나름의 해결책을 탐구하는 일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동아시아론:]

①동아시아란? (☞클릭!)

②동아시아론과 몇 가지 쟁점 (☞클릭!)

③동아시아와 한국 (현재페이지)


추재훈

  1. (국가보안법(시행 2012.7.1.) 제6조(잠입·탈출) 제1항) [본문으로]
  2. 강상중, 2002,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서울: 뿌리와이파이, p.4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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