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의 시대, 오늘날 동아시아의 상황은?


2016년 6월 23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영국 국민이 유럽연합을 탈퇴를 선택한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지역공동체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것은 단연 유럽연합이었습니다. 브렉시트(Brexit)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국가연합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찰할 필요성을 야기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90년대 이후 공산권이 해체되고 세계적 차원의 양극체제가 소멸한 뒤로 동아시아에서의 지역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초국가적 연합을 탄생시킨 유럽의 성과는 국제정치학적으로 큰 의의를 지니는데, 브렉시트로 말미암아 동아시아 지역의 지역공동체에 대해 어떤 함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까요? 동아시아란 무엇이며, 어떻게 통합해야 할까요?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면서, 지역협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다시금 등장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탈냉전 이후에도 동아시아에는 한반도 분단을 중심으로 냉전적인 긴장관계가 잔존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북한은 아직도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고 있으며, 일본의 보통국가화 경향에 반발하는 중·일 간의 군비경쟁과 동아시아적 민족주의 문제, 북한의 핵문제, 해양관할권문제, 경제협력문제, 환경문제 등 수많은 갈등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그러는 한편에서는 남북과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 4강의 대립과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국가 간 협력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상황 속에 내던져져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동아시아론은 아시아의 오늘을 파악하고 내일을 기획하는 하나의 유의미한 틀이 될 수 있습니다. 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야기된 동아시아론은 유럽연합과 같은 지역연합을 도달목표로 설정하지 않습니다.[각주:1] 오히려 유럽연합을 형성한 통합의 방법론은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에서 현실적용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동아시아론은 유럽과 동아시아가 냉전시기, 탈냉전시기를 통틀어 수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하며, 브렉시트와 같은 상황을 방지하고자 하는 논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론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해 동아시아 지역에 적합한 국가 협력 방법을 도출해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동아시아론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서 다양한 주장을 전개하지만, 원론적이거나 추상적인 차원에 머무르고 있어 현실적용성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특수성을 분석해내는 시각 자체는 적실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동아시아론의 시각을 빌려 동아시아의 상황을 분석해내고, 나아가 한국에게 던져진 과제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 자체가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한국의 역할 가능성을 미약하게나마 드러내기도 할 것입니다.


동아시아란?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개념 자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연합과 아시아 연합, 아시아와 동아시아 내지는 동북아시아 등에 관해서는 무수한 논란이 있습니다. 관찰 대상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개념적 논란은 물론이거니와,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적 논란, 나아가 논의의 대상에 대해 과학적 분석이 가능한가 하는 학술적 논란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몇 가지 개념의 의미를 단편적으로나마 구체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는 지리적으로 다양하게 구분됩니다. 이 그림에서 나타나는 구분이 유일한 것도 아닙니다.


먼저, 지역이란 무엇일까요? 지역이란 자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특정한 행위자에게 특정한 지리적·정치적 경계로 인식되는 담론적 개념입니다. 자연지리적으로 지역 자체는 하나의 땅이나 바다 등 물질적인 것으로서 관찰되지만, 그것이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땅과 땅을 가르는 등의 행위를 통해 인간에게 인식되어야 합니다. 하나의 땅이 국제관계에서 ‘지역’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시민과 같은 인식주체가 지역을 발견하고 구체화해야 합니다. 인식주체는 자신이 속한 대상으로써 지역을 창조하며, 지역은 인위적으로 구성됩니다.


그 결과 지역의 의미는 자연지리적 근접성을 기초로 한 지리학적 의미보다 확장됩니다. 지역을 관찰하는 인식주체는 지역 문제에 대해 어떤 행위자들이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확인함으로써, 어떤 행위자가 해당 지역에 속하는가를 파악합니다. 가령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의 동아시아는 자연지리학적으로만 파악되기보다 지리정치학적 혹은 지리경제학적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이 동북아시아 문제에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지역을 대략적으로 재구분하는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한국이 포함된 동북아시아를 이야기할 때에 미국이 포함되는 것은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세계의 수많은 지역들 중 아시아라는 지역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실상 아시아는 유럽의 관점에서 설정된, 지중해 동부부터 일본까지 포괄하는 커다란 지역입니다. 그러나 그 속의 문화는 무척이나 다양해서, 이처럼 광대한 아시아의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형태의 연합을 생각하거나, 아시아를 단일하게 표현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한국에서 지역 공동체의 논의가 동아시아론으로 수렴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동아시아에 대한 규정은 학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대개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몽골, 러시아, 대만, ASEAN 10개국에 미국까지 포괄합니다. 좁은 의미로는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의 6개국으로 설정되며, 이 때의 동아시아는 동북아시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ASEAN은 유럽연합과 마찬가지로 지역연합의 모범사례로 꼽히는데, ASEAN을 통한 동남아 통합 문제는 엄밀히 말해 동북아 통합 문제와 구분됩니다. 한국으로서는 ASEAN과는 별개로 동북아 지역 국가들 간의 협력이 당면한 핵심 과제인 것입니다.


ASEAN은 심각한 외교적 갈등이 지속되던 동남아시아에서 경제협력을 통해 정치협력을 도출해낸 지역협력의 긍정적 성과물입니다. 하지만 ASEAN에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이 참여하기 시작하고, 대립하는 미-중을 중심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협력체가 여럿 등장하면서, ASEAN의 기능이 외부로 유실되는 등 쇠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과는 다른 차원의 분열이 문제로 대두된 것입니다. ASEAN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상은 동북아 국가들이 넘어서야 할 국제정치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ASEAN이 맞이한 분열이라는 한계가 국제정치적 대립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이는 미-중 대립의 최전선인 동북아 지역에서 더욱 직접적인 반-통합 기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ASEAN과 한중일의 초기 협력이 ‘ASEAN+한·중·일’이 아니라, ‘ASEAN+한’, ‘ASEAN+중’, ‘ASEAN+일’이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동북아 국가들이 ASEAN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발전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제정치적 대립을 근본적인 해결하는 것과 한중일의 협력 자체가 핵심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포스트에서는 거칠게나마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규정 문제를 차치하고서, 동아시아를 좁은 의미에서 동북아시아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


지역과 아시아에 대해 생각해봤다면, 연합이란 무엇일까요? 국가 간 공동체는 결코 단일한 의미가 아닙니다. 지역공동체는 동맹, 연방, 연합 등 여러 개념들로 구분되어 정의되며, 각각의 개념들 내부에서도 수많은 차이점을 가진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존재합니다. 지역공동체 논의의 가장 심화된 담론이 연합인데, 연합과 관련해서는 주권의 이양과 공유 문제를 둘러싼 무수한 논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연합이 있습니다. 동아시아공동체 부분에 "공식적인 조직이 아님(Not an Official Organization)"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동아시아론은 기성의 지역공동체 이론에서 탈피해 자체적인 공동체론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물론 동아시아론은 아직까지 이론적으로 공동체 형성의 현실적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실현된 경험은 당연히 없으며, 초보적 수준의 실험마저도 충분히 무르익지 못한 채 좌초되었습니다. 그러나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해서 동아시아론이 무의미하다고 평할 수 없는 것은, 동아시아론이 지역공동체 담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동아시아의 특수성을 내재적으로 분석해낸 성과가 유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연합은 지금까지 발명(혹은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다른 형태의 지역공동체를 내포하는 열린 개념으로 설정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거칠게 말해 당장의 동아시아에서는 특정한 형태의 연합을 상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동아시아론:]

①동아시아란? (현재 페이지)

②동아시아론과 몇 가지 쟁점 (☞클릭!)

③동아시아와 한국 (☞클릭!)



추재훈

  1. 동아시아론을 촉발시킨 것은 1993년 발표된 최원식의 논문으로 평가됩니다. (최원식. 1993.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 《창작과비평》, 79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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