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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남북한의 역사 교과서는 어떻게 다를까? 교과서 전격 비교!

 안녕하세요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역사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역사라는 과목을 매우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책들을 끼고 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많은 분들이 역사가 따분하고 재미없다는 이유로 싫어하지만, 저에겐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혹시 남한과 북한의 역사가 크게 차이를 보인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똑같은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천차만별로 바뀌기 때문이랍니다. 따라서 현재 남북한의 학생들은 한 역사적 사건을 놓고 이야기를 할 때, 그 의견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럼 바로 지금, 남북한 학생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역사 교과서를 자세히 분석해보도록 하죠!


< 대한민국 검정 한국사 교과서와 북한의 조선력사>


 왼쪽은 현재 남한의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이며, 오른쪽은 북한 고등 중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입니다. 뭔가 새로운 느낌이 나죠? 이 조선력사 책은 남한 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책을 보려면 북한 자료 센터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볼 수 있답니다. 그럼 지금부터 남북한의 역사 교과서의 차이를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서술체계의 차이


<관점의 차이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먼저 ‘한국사’와 ‘조선력사’에서 나타나는 조선시대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은 이성계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한국사’에서는 이성계에 대해서 “고려 말의 사회모순을 극복하고 새왕조를 연 인물”로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조선력사’ 제 2권 32쪽에서는 “리조봉건국가는 리성계가 고려왕조를 뒤짚어 엎고 정권을 잡게 됨으로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고려 정부의 지시를 거역하고 반란을 일으켜 군사를 되돌려 세웠습니다.”라고 서술하고 있죠. 또한 『력사』 5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구실을 내세워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회군하였다. 

그리고 우왕과 최영을 몰아내고 정치, 군사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조선력사 5권, 128p)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을 놓고 봤을 때, 북한에서는 이성계를 매우 부정적인 인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밖에도 “놈은 자기가 왕이 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정부에서 내쫓거나 죽여 버리었습니다.”라고 서술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성계는 북한의 입장에서 대단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짐과 동시에 고려라는 국가를 멸망하게 한 인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죠. 이렇게 북한이 조선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북한이 ‘평양’중심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고려’를 자신들의 뿌리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한국‘에서는 개항 이전까지의 조선시대 서술 분량이 교과서 전체의 대략 3분의 1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조선력사』에서는 개항 이전까지의 조선시대 서술 분량이 상대적으로 극히 적습니다. 이 점 또한 조선왕조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려는 시각의 차이와 의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한반도 전체의 역사적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조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조선력사’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죠


 셋째, ‘한국사’에서는 서술할 때 완전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하는 반면, 북한의 ‘조선력사‘에서는 역사적 사실이 정확히 보증되어 있지 않은 사실을 혼합하여 서술함으로써 한 가지 사건 혹은 인물을 놓고 과장하여 그것을 더욱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당위성을 제공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에서는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교과서에 제시하여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비교적 혼란을 주는 경우가 적지만, ‘조선력사’의 경우에는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책에 과장하여 기술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예를 들면, ‘조선력사’ 제 2권 44쪽에서 “거북선은 속도가 빠르고~”라는 구절이 존재합니다. 물론 당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사용한 것은 맞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거북선의 속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사용에 제약이 따랐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당시, 고려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성계고기라고 이름 붙여 이성계를 저주했다는 구절은 북한 정권이 이성계를 격하시키기 위한 한 가지 도구일 뿐, 역사적 근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넷째, 교과서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역사 용어의 차이를 들 수 있습니다. 역사 용어 속에는 역사를 보는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 지에 따라 전체 내용의 성격 및 역사 인식에도 커다란 차이를 가져오므로, 역사 용어는 역사 이해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죠. 즉, ‘한국사’에 서술된 역사적 사건은 주로 ‘난’으로 표기된 사례가 많습니다. 특히 농민들의 저항 운동, 정치적인 정변, 외세의 침략 등에 모두 ‘난’의 개념으로 일관되게 사용하였는데요, 여기서 ‘난(亂)’은 집권세력에 반기를 드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이는 역사의 주체를 지배층 중심, 정치사 중심으로 설정한 점에 기인합니다. 

 반면에 ‘조선력사‘는 ‘난’ 대신 ‘투쟁’, ‘전쟁’, ‘폭동’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지배층에 대한 반란은 곧 농민들의 투쟁이며 인민들의 전쟁으로서 역사 발전의 필연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조선력사’ 제 2권 52쪽에서 “압박이 있는 곳에는 반항이 있는 법이다. 피압박인민들이 자신의 해방을 위하여 투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라고 한 김일성의 말에서 인민(프롤레타리아)의 역사를 강조하는 북한의 가치관을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조선력사’에서는 ‘한국사’에 ‘홍경래의 난’과 같이 개인 인명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평안도 농민 전쟁’이라고 표기하여 지역의 집단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의 역사관을 반영한 것으로서 역사의 주체는 인민 대중이라는 관점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 집니다. 

 

 대한 교과서 한국사

조선 력사

임진왜란

임진조국전쟁 

정묘호란 

후금(청)의 침략을 반대한 인민들의 투쟁 

병자호란 

청나라 침략을 반대한 인민들의 투쟁 

홍경래의 난

평안도 농민전쟁 

임술농민봉기

전국 농민 폭동 

< ‘한국사’와 ‘조선력사’의 조선시대 단원 체계에 나타난 주요 역사 용어 비교 1 >


조선력사 

한국사 

조선력사 

한국사 

 평양 농민군들의 투쟁

민란(1174~1179) 

1862년 농민폭동 

임술민란 

 공주 농민군의 투쟁

망이 망소이의 난 

프랑스 함대의 침입 

병인양요 

 경상도 농민군의 투쟁

김사미 효심의 난 

1874년 미제의 대규모 무력 침공 

신미양요 

 만적의 폭동계획

만적의 난 

1882 군인 폭동 

임오군란 

 1467년 함경도 농민전쟁 

이시애의 난 

1884년 부르주아 혁명 

갑신정변 

 1592년~1598년 임진 조국전쟁

임진왜란 

1894년 농민 전쟁 

동학 농민 운동 

 1811~1812년 평안도 농민 전쟁

홍경래의 난 

3.1 농민 봉기

3.1 운동 

< ‘한국사’와 ‘조선력사’의 조선시대 단원 체계에 나타난 주요 역사 용어 비교 2>

 위의 두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사’에서는 그 해의 간자를 넣어 간단명료하게 ‘~난’으로 표현을 하고 있으나, ‘조선력사‘에서는 ‘난’이라는 표현 대신 ‘투쟁’, ‘폭동’, 심지어 ‘전쟁’이라는 용어로 확대하여 표현함으로써, 용어 사용을 통해 인민들의 투쟁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사‘에서는 비교적 담담하고 객관적이며 완벽한 표준어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반면, 북한의 ’조선력사‘에서는 매우 감정적이고 격정적이며 마치 김일성 대원수가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같은 어조와 함께 비속어를 사용합니다. 특히 ’조선력사‘에서 비속어는 봉건통치기간에 지배층을 비판할 때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 주로 ‘놈’, ‘봉건 통치배들’, ‘족치다’ 등이며, 이는 ‘국사’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비속어들입니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소주제의 시작은 “김일성 대원수님께서는~ 교시를 내리셨습니다.”라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마치 김일성 대원수가 학생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아 북한이 중시하는 ‘김일성 우상화’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여집니다. 



b.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의 차이


 첫째, 남한의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남한 지역 중심의 역사 서술이 중심이 되는 반면, 북한의 ‘조선력사’에는 북한 지역에 중심을 둔 역사 서술이 이루어집니다. 북한 지역 중심의 역사 서술은 바로 각각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벌어진 ‘이시애의 난’과 ‘홍경래의 난’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조선력사’에서 이들의 난은 각자 하나의 소주제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큽니다. 이는 ‘조선력사‘ 제 5권의 차례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평안도와 함경도 농민 봉기가 비중이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죠. 이에 반해 남한의 ’한국사‘교과서는 ‘이시애의 난’에 대해서는 아주 짧게 언급이 될 뿐, 자세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홍경래의 난’도 마찬가지이죠. 이는 북한이 고수하는 ‘평양’ 역사중심의 서술방식을 통해 교과서가 구성되면서 발생한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문화사의 면에서도 ‘조선력사‘에서는 평양의 보통문, 개성의 남대문 등 북한에 소재하고 있는 건축물을 대부분 수록하고 있으며, 단지 남한의 남대문과 수원성 정도만이 언급되어있을 뿐입니다. 이에 반해 남한에서도 남한에 현재 존재하는 여러 건축물들만을 소개할 뿐, 북한에 있는 건축물에 대해서는 그 내용이 적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남한의  ‘한국사’는 분류사 서술체계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로 분류되어 있으며 각 분야별로 골고루 비슷하게 비중을 두어 많은 내용을 다루고자 하려는 노력이 엿보이지만, 여전히 정치사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조선력사’는 오로지 인민들의 투쟁에 초점이 맞추어 있으며, 그 밖의 한반도 역사의 정통성은 북한이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사례들을 위주로 제시합니다. 또한 ‘세계 최초’, ‘처음’이라는 단어를 반복 및 강조하여 북한 자국의 선조들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보여주기 위한 지표로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족의 자긍심을 가지고 공산주의 혁명에 몸 바쳐 일하는 투사를 양성하고자 하는 북한의 정치적 의도에 적극 부합하죠. 하지만 민족의 우월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당시 시대상과 배경에 대한 설명은 매우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력사’ 제 2권에서 측우기에 대한 설명이 서술되어 있는데요, 하지만 여기서 측우기가 세계 최초라는 말이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이 측우기가 어떻게 해서 발명이 되었는지, 발명가인 장영실의 생애는 어떠한지에 대한 설명이 매우 빈약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선력사‘에서는 남한의 ’한국사‘와 달리 인민과 지배층의 대립구도를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특징을 지닙니다. 이는 마치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지배층의 억압에서 자유롭지 않은 삶을 살았으나, 이와 비교했을 때, 현재 북한의 인민들은 훨씬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죠. 이러한 내용은 ’조선력사‘ 제 5권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이 책의 제 1장인 ’리조봉건국가의 발전’ 부분에서 거의 모든 소주제의 결론은 “’지배층들의 수탈로 인해 인민들의 삶이 매우 피폐했다.’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제 1장, 제 1절인 ‘수도 한양건설’이라는 부분에서 “한양은 인민들의 고된 노동과 많은 희생의 대가로 건설되었다.”, “국왕은 나라의 모든 권력을 한손에 틀어쥐고 인민들이야 어떻게 되든~”이라는 문장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조선시대 통치 기구인 6조에서 호조는 “인민들로부터 조세와 공물을 수탈하는 기구”라는 설명도 존재합니다. 이와 같이 ‘조선력사‘는 끊임없이 인민들과 지배층의 대결이라는 내용을 제시하면서 자연스레 투쟁의 역사관을 정당하게 만들고, 이와 더불어 북한정권의 정당성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남북한 역사 교과서의 차이를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쓰면서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남한의 자유주의와 북한의 사회주의라는 이념의 차이가 이토록 큰 역사 해석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점 때문이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려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과연 향후 통일이 이루어 졌을 때, 남북한 주민들의 확연한 역사 인식의 차이가 하나 된 민족을 이루는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을 북한 주민들은 오히려 나쁘게 인식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으신가요? 따라서 저는 이런 점 때문에라도 통일을 이루기 위해선 그 기반을 튼튼히 해야만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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