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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이산가족은 만나는 게 아니여” - 제 20차 이산가족상봉 현장에서

 

 지난 10월 19일부터 10월 26일까지 진행되었던 제 20차 이산가족상봉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이산가족들을 ‘안내’하는 일을 맡아 남측에서 출발하시는 이산가족들을 모시고, 민간인 통제구역과 비무장지대를 지나 두 번의 세관통과를 거친 후에 면회소가 있는 금강산 관광지구에 도착했습니다.

 

 

  금강산 관광지구는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는데,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진 그 곳은 참 조용했습니다. 상봉이 진행되었던 이산가족 상봉 면회소, 금강산 호텔과 외금강 호텔은 병풍 같은 금강산 자락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남측 가족과 북측 가족이 만나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으니, ‘피는 못 속인다’ 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전씨 아저씨는 북측에 계시는 작은 아버지를 만나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들어오는데 난 우리 아버지가 살아온 줄 알았지. 똑같더라구.”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로를 가슴에 묻어 두었던 가족들은 놀라울 정도로 많이 닮아있었습니다.

 

 

상봉 둘째 날, 열린 문틈으로 전씨 아저씨 형제들이 작은 아버지께 큰절을 올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가족들은 서로 선물을 주고받고, 다과도 나누어 먹으며 긴 세월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남측 가족들은 잔뜩 싸온 짐도 모자라 끼고 있던 반지를 삼촌께 끼워드리고,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아들에게 입혔습니다.

 

 

 마지막 날, 전씨 아저씨는 저에게 종이 한 장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전해드린 종이에는 ‘작은아버님전상서’라고 시작된 긴 글이 쓰였습니다. 북측에서 오신 작은 아버지는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으시고는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이날 많은 분들이 종이에 뭔가 쓰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 등 일가친척의 기일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있을 수는 없지만, 돌아가신 가족 분을 기리는 날에는 서로를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을까요.

 

 

 상봉시간이 모두 끝나고 헤어지던 순간 작은 아버지를 만나러 오셨던 윤히 할머니는 아이처럼 우셨습니다. 이산가족들과 가족들을 도우러 온 사람들, 취재하는 사람들까지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었습니다.

 살아서는 언제 다시 볼지 알 수 없는 가족들은 떠나는 버스 앞에서 ‘건강하라’, ‘통일 되면 만나자’, ‘사랑한다’ 는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피부로 느낀 이산가족의 상봉과 이별은 우리나라의 큰 비극이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비극은 이산가족 상봉이 ‘정례화’되지 못한 것이고, 아직 상봉을 기다리는 이산가족의 수가 훨씬 더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입니다.

 60여년 만에 단 한번 만나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후유증을 겪는 분들도 많다고 하는데, 아직 가족을 만나지도 못한 분들이 더 많다는 현실에 한숨부터 나옵니다.

 

 

 “이산가족은 만나는 게 아니여” 2차 상봉 때 오신 한 할아버지가 말씀이 기억납니다.

 할아버지의 한 마디 속에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 만난 가족들, 그나마도 보는 눈이 많아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시간들, 다시 헤어지면 안고 살아야 할 그리운 마음들 그 모든 의미가 들어있었습니다.

 

 

 이번 제 20차 이산가족상봉 전후로 남과 북의 축구대회, 종교인대회 등의 민간교류가 진행되었고, 만월대 복원사업도 박차를 가한다고 합니다. 부디 남북의 교류가 활성화되어 모든 이산가족들의 희망이 현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상 통일부 대학생 7기 진가록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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