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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9.19공동성명 10주년] 사필귀신(事必歸信)

지난 9월 19일은 6자회담 제4차 회담 2단계 회의에서 9·19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꼭 1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2005년 9월 19일 중국 북경의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한국의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일본의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중국의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 러시아의 알렌사드르 알렉세예프 외무부 차관, 그리고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 6개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고 수많은 취재진들 앞에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9.19공동성명은 성공적인 합의로 평가받았습니다. 당시에도 이런 저런 비판이 있기는 했지만 10년 이상 끌어온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9.19공동성명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함은 물론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 교역 및 투자 분야에서의 경제협력 및 지원을 약속하면서 서로 윈윈(win-win)하는 모양새를 취했습니다. 또 한반도비핵화 원칙을 확인하고 북한이 국제사회 규범과 원칙을 준수토록 하며 아울러 당사국 간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합의하면서 북핵문제가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는 관측이 쏟아졌습니다.

△2005년 9.19공동성명 주요 합의 사항(그래픽=조선일보)△2005년 9.19공동성명 주요 합의 사항(그래픽=조선일보)

 하지만 순항할 줄 알았던 6자회담이라는 배는 곧 거센 파도를 맞게 됩니다. 9.19공동성명 발표가 있은 뒤 얼마 후 미국 재무부에서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하면서부터 입니다. 위폐를 만드는 등 북한의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었지만 우연이라고 하기엔 시기적으로 너무나 절묘해 6자회담의 합의를 깨보려는 미국 우파의 술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불법행위에 대한 대응은 재무부대로, 6자회담에서의 대화와 합의는 국무부대로 한다는 일종의 투트랙(two-track)이었지만 북한은 즉각 반발하며 9.19공동성명을 무력화시켰죠.

 결국 이듬해인 2006년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에 이어 1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9.19공동성명은 사실상 폐기되었습니다. 2007년에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인 2.13합의, 2단계 조치인 10.3합의 등의 일부 성과는 있었으나 결국 6자회담은 거센 풍랑을 이기지 못하고 2008년 12월을 끝으로 좌초됩니다. 이후 6자회담을 재개하려는 노력이 이어졌지만 일말의 희망이었던 2012년의 북미간 2.29합의마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파기된 채 북한은 2013년 2월까지 세 차례의 핵실험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지루한 공방을 오늘날 2015년까지 약 7년 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2005년 9.19공동성명 발표 당시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6자회담 수석대표들. (왼쪽부터)크리스토퍼 힐, 사사에 겐이치로, 우다웨이, 송민순, 김계관, 알렌사드르 알렉세예프(국명과 직책 생략)△2005년 9.19공동성명 발표 당시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6자회담 수석대표들. (왼쪽부터)크리스토퍼 힐, 사사에 겐이치로, 우다웨이, 송민순, 김계관, 알렌사드르 알렉세예프(국명과 직책 생략)

 그러다보니 일각에서는 '6자회담 무용론'을 제기합니다. 쉽게 말하면 6개국이 모여서 아무리 얘기하고 합의를 해봤자 결국 실패로 귀결된다는 비관론입니다. 9.19공동성명의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이라는 기본적인 '신뢰'가 전제되지 못하면서 어렵사리 마련한 합의안이 물에 젖은 휴지조각처럼 너무 쉽게 찢어지고 만다는 겁니다. 또 약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국제정세는 많이 변했기 때문에 6자회담이 재개된들 소용이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2014년의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틀어졌고,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사이의 관계는 과거사 문제로 갈등 중입니다. 중국이 G2로 부상하며 미국과 중국의 관계도 1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죠. 이와 같이 6개국 간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키면서 6자회담이라는 틀이 더 이상 쓸모없게 되었다는 주장이죠.

 하지만 6자회담이 아직까지는 최선의 대화 틀이며 누가 뭐래도 2005년의 9.19공동성명은 가장 완벽한 합의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어떤 대화를 다시 한 들 9.19공동성명보다 더 나은 합의안을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비록 9.19공동성명의 내용이 '적절한 시기', '용의를 표명' 등의 표현으로 각국이 자의적인 해석을 할 여지를 남겼고 너무나 원론적인 내용으로 그 실효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의 '모범답안'임은 분명하다는 것이죠. 6자회담을 하루 빨리 재개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을 붙들어 두자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신뢰가 구현되기 위해선 서로가 지향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사진출처=브레인미디어)△신뢰가 구현되기 위해선 서로가 지향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사진출처=브레인미디어)

 이와 관련해 김용호 연세대(정치외교학) 교수는 9월 22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6자회담 이전의 4자회담으로 돌아가 한반도평화체제를 논의하자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다자회담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면 그 틀을 유지하되 불필요한 이해관계를 지닌 국가(러시아, 일본)를 배제함으로써 보다 실속 있는 대화와 분명한 합의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또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는 이란 핵 협상 타결과 같은 방식으로 북한을 제외한 주변국들이 미리 포괄적인 합의를 하고 이를 가지고 북한과 협상(Deal)을 하는 이른바 'P7(호주와 EU포함)+1' 체제로 전환하자는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북한과 이란은 핵무기 개발의 진척 상황, 그리고 분단이라는 특수성 측면에서 많이 다르지만 이 같은 주장은 나름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필귀신(事必歸信). 그 어떤 비판과 대안을 제시한들 결국 문제는 한 곳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바로 '신뢰'입니다. 양자회담을 하든 4자회담을 하든 6자회담을 하든 8자회담을 하든 결국 합의한 사항을 모두가 준수해서 최선의 결과를 내겠다는 상호 간 믿음, 그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국가 간 합의라는 것은 언제든 물거품이 되어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뢰라는 것은 몇 번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참고 또 참고,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구현됩니다. 당장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관용의 정신으로 참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신뢰로 이어지죠. 그러기 위해선 서로가 지향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서로 조금씩만 참고 노력하면 저 고지를 넘을 수 있다'라는 일종의 '동지의식'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정신이 9.19공동성명 10주년을 맞는 지금 6자회담 참가국들 모두에게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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