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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쫑알쫑알 수다방

대륙과 대만의 양안관계, 그리고 한반도 ①

 안녕하세요! 통일부 8기 대학생기자단 이소영입니다. 저는 지금 대만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이곳에서 생활하며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와 남북한 관계가 조금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이번 시리즈를 준비해봤습니다. 21세기 탈냉전기가 동북아에 도래했음에도 남북한과 중국은 각각 1948, 1929년 이래로 분단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양안관계와 남북한의 관계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띠고 있는데요. 비슷한 시기에 분단되었지만 왜 이렇게 상이한 결과를 가지게 되었는지 되짚어 볼 필요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양안관계를 이해하고 각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양안관계(兩岸關係)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중국과 대만 위치

 

중국과 대만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표현을 바로 양안관계(兩岸關係, Cross-Strait relations)라고 합니다. 양안관계는 중국과 대만에 각각 다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인들이 제게 안부를 물을 때, “중국은 지금 어때?” 라고 물으시며 대만이 중국에 속해있는 한 도시라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대만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내면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국 공산당과의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은 1949127일 대만으로 중화민국정부를 이전하기로 결정하였으며, 1211일에 지금의 수도인 타이페이(臺北)로 국민당 중앙당부를 옮겼습니다. 한편, 본토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세운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각기 다른 두개의 정부가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양안관계가 성립되면서부터 대만은 삼불(三不)정책’(접촉하지 않고, 협상하지 않으며, 대화하지 않는다.)을 견지하는 반면에, 중국은 무력에 의한 대만통일, 즉 대만해방을 주장했습니다.

 한편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노선을 채택하면서 양안관계도 교류와 협력을 모색하는 시기로 접어드나 했지만 대만의 주인의식과 국가정체성을 강조하는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의 취임으로 양안관계는 또다시 악화되었습니다

 그렇지만 20085월 대만에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집권하면서 양안관계는 크게 개선되기 시작하는데요. 현재까지 양안관계는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계속 긴밀해지고 있으며, 군사분야나 안보분야에서도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만 학생들의 대대적인 시위나 중국과의 통일에 반대하는 국민여론이 높다는 점은 여전히 난관도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상 양안관계의 경과를 간단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중국 대륙과 대만의 통일 정책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정부의 기본인식과 통일정책

중국정부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1984년에 덩샤오핑은 대만에 ‘1국가 2체제(一國兩制)’의 통일방안을 공식적으로 제안하였습니다. 이는 곧 하나의 중국 내에 서로 다른 두 체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하지만 이 제안의 요체는 중국이 유일한 중앙정부이며, 대만은 자치권을 갖는 지방정부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중국정부가 추진해온 대만에 대한 통일정책은 시기에 따른 통일정책의 특징에 따라 무력을 통한 대만 흡수통일 정책 시기, 무력을 자제한 평화교류 정책으로의 전환 시기, 무력위협을 병행한 평화교류 정책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무력을 통한 대만 흡수통일 정책 시기(1949~1978)

이 시기는 중국이 무력을 통해 대만을 흡수통일 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정책을 추진하던 시기였습니다. 마오쩌둥은 이 시기에 우리는 기필코 대만을 해방시킨다.(一定要解放台灣)’라는 구호 아래 강력한 무력을 통한 대만의 해방을 추진해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무력정책은 대만과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맺게 만들어 서방의 강대국이 양안문제에 끼어들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2) 평화교류 정책으로의 전환 시기(19791994)

덩샤오핑은 ‘3(三通)’ 교류 방안이라고 하여 통상(通商), 통우(通邮),통항(通航)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1983년 최초의 대만기업이 중국에 진출하게 되었고, 198711월 대만동포의 중국방문을 개방하여 양안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입니다. 중국이 대만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기로 한 이유로는 대내적으로 정치적인 안정과 대외적으로 개방을 통해 서방국가들과의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무력위협을 병행한 평화교류 정책 시기(19952007)

1994년부터 대만에서 대만독립이 강하게 대두되어 양안관계는 급속히 악화되었습니다.  한편, 2000년 천수이볜(陳水扁) 취임 후 대만독립 움직임에 대한 중국의 무력해방 강경책에도 불구하고 양안의 경제교류는 계속 증가해왔습니다. 중국의 대만 무역액 총액은 1990~2000년까지 6배나 늘어났고, 20002013년에도 6배나 늘어나는 등 큰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1992~2000년까지 본토인의 대만방문도 약 9배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2000~2013년에는 무려 24배나 증가하는 놀라운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보아 2000년대에 들어선 양안은 경제교류뿐만 아니라 인적교류 역시 공고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83월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당선되면서 양안관계는 화해에서 협력분위기로 전환되었습니다.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마잉주 대만총통과 사회,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 대외업무까지 협의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안의 경제교류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중국 경제의 경우 양안의 경제교류 증가가 중국에게 실보다 득이 되었을 것입니다. 대만의 입장에서 볼 때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이념적 갈등을 떠나 경제적 실리를 따져본다면 중국과의 경제협력 확대가 필연적인 선택일 것이기 때문에 양안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습니다다음으로는 대만의 입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만정부의 기본인식과 통일정책

 대만정부의 기본인식과 통일정책은 집권하는 총통 및 정당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양상을 보입니다. 초기 중국 대만정책은 중국대륙과 불접촉(不接觸)불담판(不談判)불타협(不妥協) 원칙인 3불 정책을 고수했지만, 1979년 중국의 개혁개방 선언 이후 중국과의 무조건적인 대화거부는 중국의 평화적인 협력 제의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고, 국제적인 외교협력도 끌어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에 중국정책을 전환하였습니다.

 

1) 1949~1988 장제스(蔣介石), 장징궈(蔣經國), 국민당

이 시기에는 불접촉·불담판·불간섭의 '3불정책'을 고수하면서 중국과의 대화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87년, 38년 만에 친족방문을 허용 등을 계기로 경제적 실리와 외교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 교류를 확대하기 시작했습니다.

 

2) 1988~2000 리덩후이(李登輝), 국민당

한편 1980년대 중반이후 대만의 폐쇄적인 대륙정책이 현실적인 측면에서 한계를 보이고, 이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대만정부는 대륙정책을 포함한 대내외 정책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3) 2000~2008 천수이볜(陳水扁), 민진당

민진당은 대만의 정치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던 1980년대 대만의 정치적 독립을 주장하며 탄생한 토착정당으로써 대만 민진당의 양안관계 구상은 국민당과는 크게 차이를 보입니다. 민진당은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며, 중국대륙을 합법적인 정부임을 인정하면서 대만 역시 하나의 정치실체로 인정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대만의 이러한 태도는 양안의 가장 민감한 정치적 사안으로 자리 잡아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수용하기 힘든 제안이었습니다.

 

4) 2008~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다시 정권을 잡은 국민당은 통일하지 않고(不統), 독립하지 않으며(不獨),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不武)’의 신삼불정책(新三不政策)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하나의 중국'원칙을 주장했으며 중국 대륙과의 경제협력과 문화교류 강화를 원했습니다. 마잉주 정부는 중국과 정치관계 개선을 통해 양안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친 교류협력을 증대할 것을 시사했습니다.


 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대만의 통일정책은 결과적으로는 통일보다는 중국으로부터 독립에 치우쳐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양안은 표면적으로는 통일을 원하고 있지만 사실상 중국과 대만이 생각하는 통일은 이데올로기로 인해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점은 우리 남북한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으로 양안관계와 양안의 통일정책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기사를 통해 양안의 상황과 통일 정책이 남북한 관계에 가져다주는 정치적 함의에 대해 더 자세히 전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중국-대만 통일정책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네이버 지식백과] 중국-대만 대립1) (KIDA 세계분쟁 데이터 베이스, 한국국방연구원)

김관호,『양안관계의 특수성이 한반도 통일에 주는 정책적 함의』, 2014

이근순,『양안관계 변화와 한국안보의 대비방향』,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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