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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제45회 이산가족 합동경모제 현장르포


이산가족 합동경모제(옅은 안개가 드리워진 청량리역광장, 임진각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사진/남궁바다)

AM 8:10  임진각 망배단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이른 아침 청량리역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주야 할 것 없이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청량리역 광장이지만 연휴라 그런지 평소에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함과 적막함이 어려 있었습니다. 광장에 내려앉은 옅은 안개너머로 주최측에서 준비한 버스가 보입니다. 행사 관계자분들이 출입문 앞에서 어르신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해 보였습니다.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경모제에 참석하는 어르신들이 한분 두분 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시는 할아버지, 같이 가는 동료분한테 빨리 오라고 전화하는 할아버지, 손주의 손을 잡고 걸어오시는 할머니 등 다양한 분들이 고향의 문턱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셨습니다. 버스에 오른 어르신들 대부분 연세가 족히 80세 이상은 되어보였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매년 돌아오는 명절마다 어르신들이 임진각 망배단으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출발예정 시간이 되자 30여 명의 어르신들이 탑승한 버스는 고향과 맞닿은 가장 가까운 곳 임진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AM 9:45  도로상황이 좋았는지 생각보다 서울을 일찍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임진각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약 한 시간. 오랜 시간 앉아 계시면 심심하실 법도 한데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창밖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정면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추석과 관련된 다채로운 영상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지만 그 누구의 시선도 끌지 못했습니다. 어르신들의 마음은 이미 망배단에 도착한 듯 보였습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버스는 어느새 자유로에 접어들었습니다. 일산을 지나 파주 오두산전망대에 다다를 때쯤 창가 저 너머로 헐벗은 북한의 산자락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음에도 어르신들의 분산된 시선은 북한이 보이는 왼쪽 차창으로 조용히 모아졌습니다. 줄곧 눈을 감고 계시던 옆자리 할아버지도 언제 일어나셨는지 창밖으로 펼쳐진 북한 땅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볼 때에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닌 북한 땅에 그치겠지만 60여 년이란 긴 세월 동안 망향의 아픔을 간직해온 어르신들이 바라보는 이북 땅은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는 분단의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전혀 헤아릴 수 없을 듯 합니다. 어르신 뒤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바깥 풍경이 그간 할아버지께서 살아오신 세월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간직한 사연을 일일이 들을 수는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분단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임진각 전망대(망배단에서 바라본 임진각 전망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차례객들이 임진각을 찾았다. 사진/남궁바다)

AM 10:20  열시를 조금 넘어서야 북녁 땅과 맞닿은 임진각에 도착하였습니다. 합동경모제가 시작하기 전까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 임진각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임진각에는 엄마 손을 붙잡은 아이부터 백발이 무성한 할머니까지 굉장히 많은 차례 객들이 방문 하였습니다. 특히 휠체어를 타신 어르신, 장성한 자식들의 부축을 받으며 이동하는 어르신 등 나이가 지긋한 실향민분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손에 닿을 듯 한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는 분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실향민 한분 한분 마다 가슴속 깊이 품고 있는 분단의 상처는 언제쯤 치유 받을 수 있을까요. 철조망 옆 나무그늘에 앉아 하염없이 이북 땅을 바라보는 어르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어르신 등 저마다 슬픈 사연을 갖고 계신 분들을 먼 발치서 바라보면서 언제 극복될지 모르는 이 분단의 현실이 참 야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AM 10:40  주최 측에서 준비한 차례상이 마련된 망배단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고향에 절을 올리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임진각에도 가을바람이 제법 선선하게 불어왔지만 이날따라 내리쬐는 햇볕이 매우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이 부시게 강한 햇살에도 긴 줄을 묵묵히 기다리며 고향을 향해 절을 올릴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북 땅과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차례를 지내고자 하는 실향민들의 진심 어린 마음이 망향의 아픔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았던 숙연한 현장이었습니다.


이산가족 합동경모제

AM 11:00  시간이 되자 예정되었던 제45회 이산가족 합동경모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경모제에는 통일경모회장, 통일부 장관(류길재)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인사와 많은 실향민들이 참석하였으며 본 현장을 담으려는 방송사들의 취재열기도 뜨거웠습니다. 통일경모회장(남궁산)은 제문에서 "현재 대부분의 실향민 나이가 70~80세의 고령자이다. 해가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고 있어 나중에는 이런 행사도 열지 못하게 될 것 같다."며 "하루속히 통일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북 간의 왕래가 자유롭게 돼서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편지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습니다. 

통일부 장관(류길재) 역시 이산가족과 실향민들을 생각하면 장관으로서 마음이 참 무겁고 참담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며 남북이산가족 문제에 대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11일 정부는 남북이 고위급접촉을 갖고 오는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상봉문제를 포함해 남북 간 상호관심사항에 대해 논의하자고 북한당국에 제안을 했지만 북한은 현재까지 어떠한 답변도 놓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산가족을 비롯한 많은 실향민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보듬어 줄 수 있는 상황이 하루빨리 도래할 수 있도록 북한이 진정성있는 움직임을 보이기를 이곳 망배단에서 염원해봅니다.


AM 11:30  모든 축사가 끝난 뒤 다소 엄숙한 분위기에서 참석인사들의 헌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뒤이어 행사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던 일반인 헌화도 다시 재개되었습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북에 두고 온 조상에게 절을 올리며 망향의 슬픔을 달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정오에 가까워지면서 햇볕은 더욱 강하게 내리쬐었지만 이북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정성스럽게 술잔을 올리는 차례객들의 수는 줄어들 틈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올해로써 45회를 맞이한 이산가족 합동경모제, 말로 할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한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던 치유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실향민의 아픔이 경감될 수 있는 좋은 소식이 조속히 북쪽에서 전해지기를 간절하게 바라봅니다.


이산가족 합동경모제(더운 날씨에도 인터뷰를 흔쾌히 응해주신 김성주, 유상각, 김세연 할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사진/남궁바다)

PM 12:00  모든 행사가 끝나고 곳곳에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지만 묵묵히 자리에 앉아 계신 어르신들이 있었습니다. 황해도 수안군이 고향이신 김성주(92세) 할아버지는 한반도가 미-소 군정으로 갈라지던 1945년 남쪽으로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당시 할아버지는 5년 내에 통일이 될 줄 알고 잠시 남쪽으로 향하셨지만 이게 생이별이 될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남쪽에서 홀로 생활하신지 어느덧 70여 년, 김성주 할아버지는 매년 돌아오는 명절 때마다 이곳에서 이북에 계신 가족들을 생각하신다고 합니다. 가족의 생사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 오면 고향산천의 식구들이 한 곳에 모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평안남도 강동군이 고향인 유상각 할아버지(90세)는 6.25 한국전쟁 당시 친구들과 남쪽으로 오게 되면서 가족들과 헤어지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같이 내려온 친구들은 모두 별세하였으며 혼자만 남아계신다고 합니다. 

김세연 할아버지(82세, 평안북도 정주)도 고향생각에 해마다 이곳 임진각에 나와 이북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절을 올린다고 하십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땅을 바라보며 절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할아버지 눈가에는 어느새 한으로 응어리진 눈물이 맺혀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모든 이산가족과 실향민의 아픔을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고향땅을 밟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소원이 살아생전에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산가족 합동경모제

PM 2:00  합동차례 후 2부 행사로 가족놀이 한마당이 열렸습니다. 이산가족 합동경모대회는 지난 44년 간 이산가족 민간단체인 통일경모회가 주체해오던 행사였지만 올해부터 통일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전 세대가 함께 공감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연과 다양한 프로그램이 함께 준비되었습니다. 점심은 8도가 그려진 지도판위에서 하나로 어우러지는 '통일비빔밥'을 메인으로 다양한 추석 음식들이 제공되었으며 어르신들 세대에 맞는 흥겨운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이 날 공연의 사회는 이상벽씨가, 특별가수로는 가수 현미씨가 출연하여 어르신들의 흥을 돋구어 주셨습니다. 이 두 분 역시 이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으로서 어르신들의 아픔을 공감 할 줄 아셨고 어르신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수고해주시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았습니다. 시간가는 줄 몰랐던 공연은 점차 끝을 향했고 국악비보이 '플라잉코리언'의 신나는 공연을 마지막으로 제45회 이산가족 합동경모제는 점점 마무리를 지어 갔습니다.


이산가족 합동경모제(임진강역, 개찰구로 들어오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하나같이 무거워 보였다. 사진/남궁바다)

PM 2:50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임진강역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DMZ열차로 어르신들이 하나 둘씩 올라타십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과 가장 가까운 이곳 임진각에 나와 이북에 계신 부모님에게 차례를 드렸지만 수십 년간 쌓아온 망향의 아픔을 걷어내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나봅니다. 개찰구를 통과하는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차례를 드렸다는 기쁨보다는 또다시 재회의 그 날을 막연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슬픔이 더욱 크게 내비쳤습니다. 

내년이면 만날 수 있겠지, 내년이면 만날 수 있겠지 하며 지내온 세월이 어느덧 70년. 이제 만나는 것은 바라지 않고 그저 생사만이라도 알고 싶다는 어르신의 비탄 섞인 푸념이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출발시간이 되자 어르신들을 태운 기차는 임진각에서 점점 멀어져 갑니다. 망배단에서 참았던 고향생각 때문인지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 햇살 때문인지 어르신들의 눈가는 하나 같이 젖어있었습니다. 

황해도 황주가 고향이신 김기수 할아버지는 이산가족과 실향민을 위해 정부에서 합동경모제를 열어주어 홀로 적적한 추석을 보내지 않게 되었다며 고마움을 표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어느덧 기차는 서울역에 도착하였고 이로서 제45회 합동경모대회의 모든 일정이 끝마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임진각에서의 6시간은 분단의 아픔이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에게 있어 굉장히 기념비적인 날이었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분단에서 비롯된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이 무엇인지를 보다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던 오늘을 늘 상 기억하고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끊임없이 지속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년이면 분단 70주년입니다. 더 늦어지기 전에 이산가족과 실향민의 마음속에서 굳어버린 아픔이 모두 녹아내릴 수 있는 재회의 그날이 조속히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제7기 통일부 대학생기자 남궁바다, 최민정이었습니다.


남궁바다, 최민정 기자가 함께한 이산가족 합동경모제의 생생한 현장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