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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쫑알쫑알 수다방

대한항공(KAL) 여객기 공중납치 사건을 아시나요?

여러분! 2월 14일엔 어떻게 보내셨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하여 초콜릿을 주고받았을 것 같은데요. 그날 연인들의 달콤한 발렌타인데이와 반대로 과거의 아픔을 회상하며 아파하던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번 2월 14일은 KAL기 납북자 50명 중 39명만 부분송환된 날로, 1969년 KAL기 미귀환 납북자 11명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지 꼬박 43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대한항공(KAL) 여객기 공중납치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비극은 1969년 12월 11일에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강릉을 떠나 김포를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 YS-11에는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 등 총 51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항공기는 이륙 25분만인 낮 12시 25분에 대관령 상공에서 고정간첩이었던 조창희(당시 42세)에 의해 김포와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됩니다. 당시 조창희는 권총을 들고 갑자기 조종실에 뛰어들면서 기장에게 북쪽으로 가라고 협박을 했는데요. 결국 여객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휴전선을 통과하게 되었고 북한으로 납치되었습니다.


여객기는 원산과 함흥 사이에 위치한 북한의 선덕비행장에 강제 착륙했는데요. 이를 보고 북한은 사건 발생 다음날인 12일에 착륙 지점을 밝히지 않은 채 ‘두 조종사에 의한 자진 입북’이라는 간단한 보도를 했을 뿐 일체 침묵을 지켰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1958년 2월 16일 민간항공 KNA 소속 창랑호를 납치한 데 이어 두 번째 사건이었고, 한반도의 긴장을 극도로 고조시켰습니다.

북한의 함흥에 도착한 46명의 승객들과 4명의 승무원들은 모두 눈이 가려진 채 흩어져 조사를 받았는데요. 북한은 이들에게 강제 사상교육을 시켰고 이 사상교육을 거부했던 납북자들은 약물주입을 당했고 악랄한 고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 KAL기 납북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1969년 봄, 납북자 황원 씨(가운데)가 아들 황인철(왼쪽) 씨와 조카를 안고 나섰던 봄나들이. 아들 황인철 씨가 희미하게나마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사진이라고 한다.

 

이때 북한에 남은 탑승자들의 가족들은 ‘납북 KAL 미귀환자 가족회’를 만들어 송환촉구 활동을 벌였는데요. 당시 납치범에 대해 치안국은 “북괴의 고정간첩이며 강릉에서 자혜병원을 경영하던 승객 채헌덕이 주범으로서, 다른 승객 조창희와 부기장인 최석만을 포섭해 비행기를 납북해 갔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한항공 측은 그해 12월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최석만의 가정과 생활태도로 보아 간첩행위를 할 만한 결정적 단서가 없다.”면서 “따라서 경찰의 발표는 단순한 추정일 뿐.”이라고 말해 사건의 정확한 진상은 지금까지도 베일에 가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2월 22일. 그 당시 판문점에서는 유엔군 측의 요청으로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회의가 열려 승객과 승무원 및 기체의 조속 송환을 요구하였는데요. 그러나 북한 측은 “유엔군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딴전을 피웠고 인질 외교의 저의를 드러냈습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미국, 인도, 파키스탄, 멕시코 등 15개국 적십자사를 통하여 중재 교섭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안타깝게도 묵살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국제적 여론이 거세지자 북한은 1970년 2월 5일에 민간인들을 송환시키기로 국제적십자사와 약속했는데요. 북한은 송환 예정일에 그 약속을 마음대로 뒤집었고 열흘 뒤인 14일에 입장을 바꾸어 탑승자 중 39명만 남한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나머지 7명의 승객들과 4명의 승무원(기장 2명, 여성 승무원 2명)들은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납북자 가족들이 생이별을 한지도 벌써 43년이 지났고, 납북자 가족들은 대부분 이미 고령이 되었는데요. 피해자 가족들은 남과 북의 양국 관계 속에서 자국 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금까지 소용이 없었습니다. 몇 개월 전에는 이들을 돕기 위해 국내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는데요. 아직까지 이 사건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납북자 가족들은 물론이고 여러 국민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지난 12년 간 ‘납북 KAL 미귀환자 가족회’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실무반(WGEID)은 KAL기 납북자의 생사와 소지재 확인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접수하고, 북한에 답변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2012년 5월 9일에 ‘날조된 음모’라는 답변을 안겨줄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기사를 통해 많은 국민들이 43년 전에 일어났던 KAL기 납북사건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십 년 동안 미해결인 이 사건을 우리가 잊지 않고 있으며, 북한의 인권유린이 계속 된다면 그에 따른 대가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북한 정부가 납북자들에 대해 침묵하더라도, 우리들이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였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http://www.abductions625.go.kr/)
-북한인권시민연합(https://nkhumanrights.or.kr)

<사진>
-시사교양 통일전망대 방송일부(신문 사진)
-1969년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납북자 황원 씨 사진)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207100014&ctcd=C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