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


North Korea is a nation notorious for its isolation.  Perhaps it is for this reason that an air of mystery surrounds both the country and her inhabitants.  Growing up as a Korean-American, I found it absurd whenever I was asked whether I'm from the North or South.  Movement both within and outside of the country is strictly monitored by the state.  It might even be easier for a citizen living in the provinces to defect from the country, than to visit the glorious capital city of Pyongyang.  Generally speaking, if you’re a North Korean living outside of North Korea it means one of two things 1. you defected, or 2. you were sent.  Although seemingly unlikely, North Korea boasts a significant population of expats living outside the impermeable walls of the hermit kingdom.  I've even met a few.


Over this past year I've spent time listening to the tales of North Korean refugees secretly hiding in China as they tearfully shared their stories of escape, I've delivered presents to orphaned stateless children who were abandoned by their Chinese families after their mothers were caught and forcibly repatriated to North Korea, and while in South Korea this past summer I spent a great deal of time getting beat-up by my female North Korean high school students who liked to translate their affection into pokes, slaps and punches.  However, there is a stark difference between those North Koreans who left their country by choice, and those who were sent; between those for whom ideological indoctrination is less a survival tool than a profound allegiance.


From the expat North Korean waitresses adorned in hanboks performing North Korean songs on the gayageum, to the elite university students studying abroad in prestigious institutions overseas, their calculated, uniform response to routine questions such as "what is your favorite song?" or, "who is your hero?" indicates that there is something uncomfortably unfamiliar about them (Arirang and Kim Il-Sung are the typical replies, in case you're wondering).  The North Korean exchange students studying in my department are no different.


With their Kim Il-Sung badges neatly pinned to their shirts over the heart on the left-side of their chest, these North Koreans never travel alone, always accompanied by at least one other peer.  The theory behind their “camaraderie” is that they are required to monitor and report each other’s suspicious actions and movements.  Although they are from the elite class, these North Koreans are much shorter in stature than their South Korean counterparts (food is reportedly scarce even in the affluent neighborhoods of Pyongyang).  Since encountering these students for the first time I made it my aim to befriend one of them.


Ryu Jung Chul; you can pick him out as a northerner just by the sound of his name.  Many Korean surnames are pronounced differently in the North than they are in the South.  For example, one of the most common Korean surnames이, pronouncedYi,is pronounced Ri in North Korea.  Although his accent is another dead giveaway, Jung Chul’s soft face and cheery demeanor separates him from the crowd of emotionless expressions.  


The first time we talked I had caught him while he was riding his bike to his next class.  The ride created enough distance for me to have a private conversation with Jung Chul as his other North Korean peers rode on ahead.If I was a South Korean, Jung Chul would have stopped talking to me on the spot, as North Koreans are forbidden to speak to or communicate with South Koreans.  So we conversed in Chinese and English, until I eventually revealed that I was an American of Korean descent who couldn’t speak Korean very well (which wasn’t too far from the truth –although a bit of acting on my part was required).  The revelation was noticeably a bit unnerving to him, but he must have been as intrigued by our contact as I was, as he calculated that technically he was not breaking any rules by communicating with me.  


Our conversation continued and over the course of the next few weeks I bumped into Jung Chul quite a few times.  With each encounter I bowed my head in respect and greeted him formally, as is customary between Koreans.  Sometimes words were exchanged, other times we passed each other by in silence.  But after a few weeks of random encounters, as I was lost in thought staring at an announcement board waiting for the elevator, Jung Chul nudged me to acknowledge his presence with thefaintest grin spread across his face.  His companion on the other hand remained emotionless, evento my gestures of friendship, and kept his eyes off me the entire time, even when giving a curt reply to my questions.It struck me at that moment, the “forbidden” aspect ofthese exchanges.  


With a foreign student population of 3,500, nearly half of all the international students at my university come from South Korea. With so many Korean students you would never think twice hearing people converse in Korean, nor would you ever feel the urge to approach one of them.  But the same doesn’t seem to apply to those North Korean exchange students... maybe it’s that air of mystery which shadows their very existence.  The fact that North and South Korea have been separated for so long, coupled with the North’s extreme isolation, only seem to fuel this intrigue.  I begin to wonder, will reunification eventually leave us indifferent and indiscriminate to North or South Korean; orwill the immense pain from generations of separation result in an even greater joy, leaving us with a stronger sense of unity and brotherhood?  Only reunification will tell; in the meantime, I can only wait and pray.


*names in this article have been altered

 


은둔자가 왕국을 떠날 때

북한은 고립으로 악명 높은 나라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그 나라와 주민들에 대한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라면서 필자는 남한 출신인지 북한 출신인지를 질문 받을 때마다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 내부나 외부에서의 활동은 당국에 의해 엄격히 감시됩니다. 지방에 사는 사람은 영광스러운 수도 평양을 방문하는 것보다 다른 나라로 탈출하는 게 훨씬 더 쉬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당신이 북한 땅 밖에서 살고 있는 북한 사람이라면 첫째 탈북했거나 둘째 보내졌거나의 두 가지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외견상 그럴 것 같지 않지만, 북한은 운둔왕국의 철옹성 바깥에 상당한 숫자의 국외거주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들 몇몇을 직접 만난 적 있습니다. 

 한 해, 필자는 모두 눈물겨운 탈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중국에 은신중인 북한이탈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냈습니다. 필자는 한편으로 어머니가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뒤 중국인 가족들로부터 버려져 고아가 된 무국적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고, 여름에는 한국에서 손가락으로 찌르거나 때리고 주먹질하는 방식의 애정 표현을 좋아하는 탈북 여고생들과 부대끼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의해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과 보내진 사람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적 주입은 열성적인 충성만큼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한복을 차려 입고 가야금 반주에 맞춰 북한 노래를 부르는 국외거주 북한 여종업원에서 해외 유수의 대학에 유학중인 엘리트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가?” “당신의 영웅은 누구인가?”와 같은 통상적인 질문에 대한 그들의 계산된 한결 같은 대답은 자신들에겐 불편할 정도로 친숙하지 않은 것들입니다(아리랑과 김일성이 전형적인 대답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궁금해 할 것 같아서). 우리 과에 있는 북한 교환학생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셔츠의 왼쪽 가슴 부위 위쪽에 김일성 배지를 단정히 착용한 이들 북한 사람들은 절대로 혼자 다니지 않습니다.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다른 동료와 항상 붙어 다닙니다. 그들의 이 같은 “우애”의 이면에는 상대의 미심쩍은 행동과 움직임을 감시하고 보고할 것을 요구 받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들 북한 사람들은 엘리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남한 사람들보다 키가 훨씬 작습니다 (평양 같은 부유한 지역에서조차도 식량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필자는 이 학생들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구가 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류정철; 독자 여러분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봐도 이내 북한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상당수 성이 북한과 남한에서 다르게 발음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한국인들 중에서 가장 많은 성씨 가운데 하나인 이씨의 경우 북한에서는 리씨로 불립니다. 사투리 억양 또한 정철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시키는 특징이지만, 그의 부드러운 얼굴과 활기찬 태도는 무표정한 얼굴의 사람들 속에서 그를 돋보이게 합니다.

우리가 처음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가 자전거를 타고 다음 수업 장소로 이동하는 도중이었습니다. 그의 동료가 저 만치 앞서가는 상황이어서 필자가 정철에게 말을 걸기에 충분한 거리였습니다. 필자가 남한 사람이었다면, 정철은 그 자리에서 입을 닫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북한 사람들에겐 남한 사람들과의 대화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어와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고 이내 필자는 한국어를 그다지 잘 하지 못하는 한국계 미국인이란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이것은 사실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비록 어느 정도의 연기가 당시 필자 입장에서는 필요했지만 말입니다.) 이로 인해 그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필자와 마찬가지로 우리 둘의 접촉에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필자와의 대화가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고 내심 판단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계속 되었고 이후 몇 주일 동안 필자는 정철과 여러 차례 마주쳤습니다. 그 때마다 필자는 정철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했는데 이것은 한국인들 사이의 일반적인 인사입니다. 어떤 때는 간단한 이야기를 나눴고 어떤 때는 아무런 말 없이 서로를 그냥 지나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주 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알림판을 쳐다보며 멍하니 있던 필자를 정철이 툭 쳤습니다.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자신의 출현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그의 동료는 필자의 아는 체에도 무심한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필자의 질문에 간략히 대답할 때조차도시선을 딴 데 두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필자에게는 이런 교류의 “금지된” 측면이 떠올랐습니다.

3,500명의 외국 학생들이 재학중인 필자의 학교에서 외국인 학생들의 절반 가량은 남한 출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한국어로 대화하는 소리를 듣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다가가고픈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 교환학생들에게는 그렇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 존재를 둘러싼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일 것입니다. 북한의 극단적인 고립과 아울러 남북한이 오래 동안 분단되어왔다는 사실은 분명 그들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기는 요인일 것입니다. 필자는 통일이 되면 결국 우리가 북한이나 남한 국적인지 여부에 개의치 않고 차별 없이 대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분단 세대의 엄청난 고통이 그보다 훨씬 큰 기쁨으로 이어져 보다 큰 단결심과 동포애를 갖게 만들 것인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통일만이 그 해답을 알 것입니다. 그 때까지 필자는 기다리며 기도해야겠습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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