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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쫑알쫑알 수다방

3.1 운동을 바라보는 남북한의 다른 시각

우리가 역사를 인식한다고 할 때 대개의 경우 그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재구성된 역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상은 다양하며 계속 변화합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역사관의 차이에서 기인하기 때문인데요. 같은 역사자료를 놓고 여러 역사가들이 달리 해석해왔던 것에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남북 분단 60여 년 동안, 남북은 각기 다른 환경과 체제 속에서 역사관을 형성하며 역사상을 그려왔습니다. 남북은 분단 이전에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과거의 사실에 대해, 구석기 시대부터 8.15 광복까지, 동일한 대상을 놓고 다른 태도와 다른 역사상을 그려왔습니다. 그것은 역사상을 그리는 역사가 역시 특정 시기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그 시기의 시대적인 흐름에서 오는 사상을 갖고 현실과 역사를 인식하기 때문인데요. 더욱이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체제로 남북은 정치적으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분단의 이데올로기 아래 각 체제의 정체성을 이룩하는데 역사는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었습니다. 분단 이후, 남한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 남한 중심의 역사를, 북한은 계급투쟁의 유물사관과 김일성 부자 권력 공고화를 위한 주체사관 아래서 북한 중심의 역사를 형성해왔습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 민족운동사는 분단정권의 정통성을 세우는 기초를 제공해 왔는데요. 민족 해방 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어느 세력이 담당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해석은 정권의 정통성에 상당한 근거를 부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3.1 운동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한국 근현대사에서 상반되는 역사상의 시작점에서 3.1 운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제정한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기미 3.1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라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북한도 3.1 운동에 대해 전 민족적 투쟁을 전개한 날로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데요. 남북은 3.1 운동이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3.1 운동으로부터 현재 남북 현대사까지에 대한 역사상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3.1 운동을 시발점으로 분단체제의 각 정권의 정통성에 맞추어 역사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1 운동에 대한 역사상은 이후 독립운동의 방향에 대한 연결로 이어지는데, 남한의 경우, 3.1 운동은 대한민국(상해) 임시 정부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은 남한의 인식을 민족개량주의로 해석하며, 사회주의 운동과 김일성 등장 이후의 독립 운동을 구심점으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정통성으로 연결 짓고 있습니다. 즉, 3.1 운동에 대한 역사인식과 서술은 독립운동사의 밑그림을 제공하며, 분단정권의 정통성을 밑받침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남북 모두 근대 민족운동의 시작으로 중요하게 인식하는 3.1 운동을 중심으로 남북 국사 교과서를 비교 분석하려고 하는데요. 민족해방운동사에서 시발점으로 배치되는 3.1 운동을 남북한이 각기 어떠한 역사인식 아래 교과서에 반영하고 있으며, 내용 서술은 어떠한 차이점과 공통점을 보이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앞으로 서술할 차이점과 공통점은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에 재학했던 염주희씨의 논문을 참고하여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염주희씨가 이번 주제를 조사해본 결과, 남한의 중학교 ‘국사’와 북한의 고등중학교 6학년의 ‘조선력사’는 3.1 운동을 모두 역사교육의 내용으로 선정하여 다른 단원에 비해 양적으로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남북의 3.1 운동에 대한 역사 해석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았는데요. 이것은 역사 인식의 차이에서 기반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한은 실증적인 연구 방법을 지향하며 민주주의적 민족주의 입장에서 3.1 운동을 민주적, 민족적, 자주적인 부분을 주시했습니다. 즉, 3.1 운동이 비폭력 노선을 견지하며 제국주의 압제에 나선 전 국민적 독립운동이라는 측면에서 민주적인 성격을, 각 계층과 전국적 확산을 통해 독립이라는 민족적 대의에 결집된 응집력을 민족적인 부분으로, 일제의 제국주의에 맞서며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것을 자주적으로 인식하였습니다. 반면, 북한은 유물사관의 입장에서 계급투쟁과 민족적, 자주적, 반외세적인 내용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3.1 운동의 명칭에 대해서도, 남한은 민족해방사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으로 ‘3.1 운동’으로 표기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유물사관의 계급투쟁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3.1 운동의 명칭을 ‘3.1 인민봉기’로 변경하였습니다. 이러한 명칭은 위에서 언급한 3.1 운동의 성격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요. 남한 국어사전에서는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힘쓰는 일을 ‘운동’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운동’이라고 사건의 성격을 명명할 때는 건설적이고 민주적인 목적을 두고 일어났을 때 통상 부여하는 것입니다. ‘혁명’과 ‘봉기’와는 다른 의미인 것입니다. 반면에 북한에서는 ‘인민봉기’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가 지향하는 계급투쟁적 성격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3.1 운동의 주요 세력인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서술도 다릅니다. 남한은 3.1 운동의 초기 역할에 국한하여 이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북한은 민족대표 33인을 부르주아민족주의자로 명명하여 비판하고 계급적 잣대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3.1 운동 주요 세력을 김일성의 부친인 김형직과 김일성으로 대체하면서, 3.1 운동에서 이들 인물이 주도한 역할에 대한 객관적 평가 없이 제시되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3.1 운동의 독립이라는 목표 달성의 실패 요인도 조금씩 다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한은 일제의 무력 탄압으로 돌리고 있는 반면, 북한은 일본과 미국에게 3.1 운동의 실패 책임을 물으면서 반외세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3.1 운동은 남북 모두 민족적 의식을 학습하는 단원 목표를 가지고, 남북 교과서 모두 지향하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중요한 단원입니다. 그러나 남북이 지향하는 민족주의는 다름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남한은 민주주의적 민족주의를, 북한은 공산당의 혁명적 인재 양성을 위한 주체사관을 토대로 하는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향성은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 하나의 국가였던 시절의 역사까지 다르게 해석하며, 하나의 역사를 두 개의 역사로 나누었습니다. 특히 3.1 운동은 분단 이전에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하나 되어 민족적, 민중적 의식을 표출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3.1 운동에 대한 역사 인식은 남북 교과서에서 배경, 전개, 결과, 의의를 다르게 서술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남북 교과서에 나타난 3.1 운동에 대한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차이에서 발생한 것인데요. 남한이 가지고 있는, 3.1 운동이 민족적인 민족해방운동의 시발점을 가진다는 의의와 민중사관의 입각해서 3.1 운동이 근대적 민중의식의 발현이라는 해석은 북한이 3.1 운동을 근대의 종말로 보는 시대 구분 인식 차이와 대립이 됩니다. 즉, 3.1 운동의 역사인식은 근현대 시기 구분 인식차이에도 긴밀한 연관성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 인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국사’와 고등중학교 6학년 ‘조선력사’의 3.1 운동 내용을 비교했을 때 몇 가지 공통점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3.1 운동을 중요한 역사 학습 내용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술 비중과 단원 편성으로 확인하였을 때, 3.1 운동은 비중 있게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둘째, 3.1 운동의 배경으로 남북은 동일하게 내재적 요인을 일차적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었습니다. 일제의 탄압에 따른 저항의식이 고조되었고, 민족적 주체성 의식이 형성되었으며, 1910년대 독립운동이 지속되면서 독립에 대한 역량이 충분히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3.1 운동의 직접적 발단도 남북은 모두 고종 황제의 서거와 해외에서 이미 고조되고 실행된 독립 운동의 영향을 지목하였습니다.

셋째, 3.1 운동의 전국적 확산과 전 민족의 참여를 통한 독립에 대한 열망의 표출로써, 의의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3.1 운동의 운동사 적인 부분에 대한 평가로 남북은 3.1 운동이 독립운동사에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넷째, 3.1 운동이 세계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남북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3.1 운동이 제국주의에 대한 약소국들의 저항의식을 고무시키고 독립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3.1 운동은 각기 다른 정치 체제와 각기 다른 사관을 통해 남북이 다른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염주희씨는 이번 연구를 분석해본 결과, 공통점 보다는 차이점과 상이한 견해들이 더 많이 발견되었다는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그러나 3.1 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현재적으로 민족통일의 중요한 계기를 준다고 볼 수 있다는 의견도 표명했습니다. 여기서 3.1 운동은 다만 근대적 민족적, 자주적으로 독립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 되었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 과거가 아닌 것입니다. 남북 모두 3.1 운동의 정신을 현재적으로 계승해야 할 중요한 역사적 유산으로 인식함과 같이, 결국 3.1 운동의 정신은 분단된 한민족이 이루어야 할 통일의 예표인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3.1 운동 정신이 가지는 민족적, 통일적 의식은 분단 의식을 극복하고 일체감과 민족적 동질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통일 이후에 현재는 3.1 운동을 통해 서로 다른 정통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통일 이후, 3.1 운동의 정신은 현재적 의의를 가지며 민족적 동질성을 되찾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을 기대하며 오늘도 남북한의 통일 된 모습을 꿈꿔봅니다!

 

<정보>
-3.1운동에 대한 남북 역사교과서 서술 내용 비교 분석(2007): 염주희,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593&docId=794929&categoryId=1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