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opher Ju

The atmosphere in China’s capital city of Beijing is noticeably tense on this warm autumn day; the nearby 7-eleven  and the Uniqlo clothing store down the street from my apartment are closed for business on this Tuesday afternoon.  Toyota, Honda and Nissan brand cars fashion bumper stickers and slogans championing Chinese nationalism and decrying Japanese imperialism.  All of this follows protests, demonstrations and riots which continue in the wake of tensions arising from the purchase by the Japanese Government of three of five islands which make up a disputed island chain – known as the Diaoyu Islands in Chinese and Senkaku Islands in Japanese – located off the coast of China and claimed by both countries.

This incident (minus the mass demonstrating and rioting) bears uncanny resemblance to the heated South Korean-Japanese dispute over the Dokdo islands, and is just one of the many unresolved conflicts originating from the handover of territory from Imperial Japan to the Allied powers following the end of World War II.  During this proces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events occurred when a line drawn on a map indefinitely divided the nation of Korea in half along the 38th parallel north.

As a second generation Korean-American, I have lived the majority of my life disconnected from my roots and apathetic to the pains and sorrows of my motherland.  I visited South Korea for the first time four years ago and a year later came to China to study and attend graduate school, ready to take advantage of China’s rapid construction and development to fuel my career in Architecture.  

One day, however, my travels brought me to the far edge of one of China’s most outlying provinces where I was able to take one of my first glimpses into the reclusive North Korea.  Standing on the banks of the Tumen River – just a stone’s throw from the adjacent North Korean soil – the impacts of a divided nation became conscious to me for the first time.  As those realizations began to sink into my mind, I shifted my attention away from the all-too-familiar headlines of nuclear weapons and refugees, to focus on the deeper issue: a divided people.

I joined the Ministry of Unification’s internship program not as a method for bolstering my marketable competiveness, but rather to foster an ongoing academic and personal research in which I was already consumed.  The MOU internship was not your typical office internship, which suited me because I was not your typical International Relations or Politics major intern; and while at first glance (and probably second and third) issues in architecture and Korean Unification seem incompatible, the last year of my studies has been devoted to exploring and uncovering such issues.  And while I’m still digesting and internalizing all that I have learned and experienced through MOU’s internship program this summer, one noticeable difference in my attitude is clear: 

A few years ago I would have apathetically disregarded such incidents like the Dokdo and Diaoyu islands dispute as trivial bickering between nations.  However, I now see them in a different perspective, tracing them back to the roots from which they originate and understanding them as conflicts embedded in much deeper intense historical issues, and realizing that they, like Korean unification, will take more than simple political negotiations and discussions to resolve.


이 땅은 내 땅

중국의 수도 베이징. 분위기가 분명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 따뜻한 가을 날에. 화요일 오후인데도 필자의 아파트 부근 길가에 위치한 편의점 세븐일레븐 과 의류체인 유니클로가 문을 닫았습니다. 토요타, 혼다, 닛산 등의 자동차들이 범퍼 스티커와 각종 문구들로 치장했습니다. 중국의 민족주의를 찬양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이들 차량 뒤로 항의 시위와 폭동이 이어집니다. 동중국해에 위치한 중국명칭은 댜오위다오이며 일본명은 센카쿠인 다섯 개의 섬 가운데 세 개를 일본정부가 구입하면서 촉발된 긴장 탓입니다. 두 나라 모두 이 섬들을 자신의 영토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독도를 둘러싼 한일 두 나라간의 과열된 영토분쟁과 이상할 정도로 유사합니다(대규모 시위와 폭동은 제외). 이번 사건은 2차대전이 끝난 뒤 일본이 연합국에 영토를 반환하는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분쟁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과정에서 매우 중대한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지도상에 그어진 선 하나가 북위 38도선을 따라 한국이란 나라를 둘로 나눠버린 것입니다.

저는 이민 2세대로서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의 대부분을 내 뿌리인 모국과 단절된 채 살아왔고 모국의 고통과 슬픔에 무관심했습니다. 4년 전에야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고 그로부터 1년 뒤 저는 대학원 진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건축분야 경력을 쌓기 위해 중국의 건설 붐과 발전을 십분 활용할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중국의 가장 외곽에 위치한 성의 끝자락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은둔국 북한을 처음으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엎드리면 코 닿을 정도로 북한 땅이 인접한 두만강변에 서서 저는 처음으로 분단국이란 아픔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잡게 되면서 저의 관심은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핵무기나 탈북난민 같은 것에서 분단된 사람, 즉 이산가족이라는 좀더 인간적인 것으로 옮겨갔습니다.

저는 통일부 해외 상생기자단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시장가치를 높이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미 제가 몰두해 온 분야에서 지속적인 학업 및 개인적인 연구를 더 하려는 차원이었습니다.  통일부 인턴십은 일반적인 사무직 인턴십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국제관계나 정치학 전공의 전형적인 인턴은 아니었지만 통일부 인턴십과는 잘 어울렸습니다. 얼핏 보기엔, (아마도 두 번 아니 세 번을 생각한다 해도) 건축과 한반도 통일은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원의 마지막 한 해를 그 분야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아직도 지난 여름 통일부 인턴십에서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내면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필자 태도에 주목할만한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필자는 독도나 댜오위다오섬 분쟁 같은 문제들을 국가들간의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며 애써 무시해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차원에서 이 문제들을 바라봅니다. 그런 문제가 생기게 된 원인을 추적하고, 훨씬 더 큰 역사적 요인이 가미된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는 한편, 한반도 통일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정치적 협상이나 논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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