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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6자회담]#1. 북핵해결의 열쇠 6자회담의 배경

  

6자회담??

영어로는 The six-party talks 한자로는

 

매일 신문기사 속에서 보는 6자회담

 

 

6자 회담에 대해 1편은 6자회담의 배경, 그리고 2편을 6번의 6자회담의 내용과 현재 상황을 2차례 나눠서 자세히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기사는 6자회담의 배경에 대해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6자회담의 배경

북한 핵에 대한 역사는 1979년부터 시작됩니다. 북한은 소련의 기술을 받아서 영변에 핵 시설을 건설했습니다. 건설은 1986년에 완성되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북한의 핵시설에 언제나 주의했으며, 1990년대 초반부터 북핵에 대한 문제가 붉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1992년 1월 20일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하고"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를 요지로 하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합의하고, 1992년 4월 10일 IAEA와 '핵안전협정'을 발효시켜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1993년 북한은 NPT를 탈퇴하였습니다. 그 전까지의 행동은 북한이 전세계에 핵개발을 은폐하기 위한 모습을 보여준 것일 뿐이였습니다.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핵무기 보유국은 핵무기나 기폭장치 똑은 그에 대한 관리를 제3국에 양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비보유국은 핵무기나 기폭장치를 제조하거나 획득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며, 비보유국은 원자력을 핵무기나 기폭장치로 전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비롯한 안전 조치를 받아들이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한국은 1975년에 가입하였으며, 북한은 1985년도에 가입하였다가 1993년 3월에 탈퇴선언을 했으며, 그해 6월에 탈퇴 유보선언을 했고 2003년 1월에 또다시 NPT 탈퇴를 선언하였습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한은 핵 개발을 중단하고 핵 사찰을 받는대신에 미국은 북한에게 체제 안전 보장과 경수로 발전소를 지어준다는 조건으로 핵 문제에 대한 합의를 했습니다.

 

제네바 합의 

1992년 IAEA는 북한에 최초의 핵시찰을 실시하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 양과 조사한 양이 불일치하여 IAEA는 영변 핵단지의 미신고된 2개의 시설에 대해 특별사찰을 요구한다. 하지만 북한은 받아들이지 않고 NPT를 탈퇴하여 긴장상태를 조성하였습니다.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양국은 협상을 하였고 1993년에 시작된 협상은 1994년 9월23~10월 21일까지 제네바에서 열린 ‘전반적인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서 합의를 도출했다. 이 합의를 제네바 합의라고 합니다.

제네바 합의는 원래 비공개를 원칙으로 했지만 공개되었습니다.

주요 내용으로서는 북한이 핵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측은 경수형 원자로 발전소 2기를 건립하는 동시에 경제원조로 연간 50만 톤의 중유를 지원하고, 정치 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설립되었습니다.

 

 

                                       0클린턴과 부시/ 2009년 5월 28일 경향신문 기사

 

2001년 1월 클린턴 행정부에서 부시 행정부로 바뀌면서 부시 행정부는 기존의 클린턴 행정부가 가지고 있었던 대북정책을 재검토 하였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검증, 재래식 무시 감축 문제를 강조하는 등 이전의 클린턴 행정부와는 다르게 강경한 입장을 보여줬습니다.  

 

북한은 초기에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강력한 주장을 삼가고 경제 사절단을 파견하였으나, 점차 미국과의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결국 2001년 발생한 9ㆍ11 사태로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고, 이에 북한은 이에 ‘선전포고’로 비난하였습니다.

 

악의 축

악의 주축이라고도 하는 악의 축은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이2002년 1월 29일 반테러 전쟁의 일환으로 제2단계 표적인 이란, 이라크, 북한을 뜻하는 말입니다.

국제 테러 지원과 대량 파괴무기 개발, 억압적 체제 등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은 이들 국가에 대해서는 힘을 사용하여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특사의 방북 때 북한의 농축우라늄 핵개발 문제가 붉어지면서 미국은 핵포기가 대화의 전제 조건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대북 중유 지원이 끊겼으며 제네바 합의는 무효화 됐습니다.

 


여기서 잠깐!

 

계속해서 핵이 중요한 사항으로 나오고 있는데 핵에 대해 기본적인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Uranium Enrichment Program)

천연 우라늄에는 세 가지 동위원소가 존재하며 그 조성비는 U234가 0.0054%, U235가 0.71%, U238이 99.28%입니다.

농축(Enrichment)이란 U235의 함유량을 높이는 공정을 말합니다. 이는 천연에 존재하는 우라늄 동위원소 중 U235만이 핵분열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며, 지속적인 핵분열반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U235의 농축도가 3~5%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그림에서 보듯이 농축에는 핵무기 원료로 사용하기 위한 고농축우라늄(HEU : Highly Enriched Uranium)과 경수로 원료로 사용하기 위한 저농축우라늄(LEU : Low Enriched Uranium)이 있습니다.

우라늄 농축 기술은 가스확산법, 원심분리법, 노즐분리법, 화학교환법, 레이저법 등이 개발되었으나, 이 중 가스확산법과 원심분리법이 상업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북한은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농축 프로그램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 플루토늄(Plutonium)

플루토늄은 원자로에서 한번 사용한 우라늄 핵연료를 재처리해 만드는 것으로 우라늄보다 핵분열 반응이 더 활발히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재처리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이 필요합니다. 1990년대초 북한은 재처리 시설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 계획을 세웠으나, 1994년 제네바 기본협정(Agreed Framework)체결로 동 계획 폐기후 KEDO를 통한 경수로 발전소 설립 및 에너지(중유) 지원을 받아왔습니다.

 


미국측의 강경한 반응에 북한은 제네바 합의 이후 동결했던 핵시설을 해제하였으며, IAEA 사찰관을 추방하였고 2003년 1월 10일에는 NPT 탈퇴를 통해 미국과의 갈등이 심화됐습니다. 북미의 갈등상황이 지속되면서 주변국인 한국 중국이 경색되어 있는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미국 북한 중국이 참여하는 3자 회담이 2003년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렸습니다.

 

이 회의에서 미국은 북한의 ‘선(先)핵포기’를 주장하였고,

북한은 ‘선(先)미북 대화’, 후 ‘다자회담’을 주장했습니다.

 

미국은 주요 국가 정상회담과 G8 정상회담 속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방식으로 핵을 포기하도록 노력했습니다. 동시에 PSI(확산방지구상)를 통해 북합을 압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3자회담보다 핵문제는 국제사회의 문제라는 생각 속에서 다자회담 틀에서 논의·해결을 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PSI)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WMD)의 확산을 막기위해 2003년 5월에 발족한 국제 협력체제입니다. WMD 비확산을 위해 가입국간의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시 합동작전도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도에 가입했습니다. 

 

한편 북한은 핵 개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서 시작된 것이며, 미국만이 책임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자회담을 촉구하는 미국에 대해 핵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다고 말하면서 “핵 억지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미국과 북한의 팽팽한 신경전 속에서 주변국인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북한 핵문제에 있어서 주변국인만큼 핵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느껴서 6자회담이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참고자료 

북한 이해 2011

외교 백서 2005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0&no=644956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pinor&logNo=40130086592